공지사항
책갈피 출판사는 세계여성의날 기념 강연을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책갈피 출판사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다른 진보적 출판사들과 함께 세계여성의날 기념 강연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3월 13일),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시는 분이 이 강연들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글이 SNS에서 퍼졌습니다. 이 글을 보고 놀란 독자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 책갈피 출판사의 생각을 말씀 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습니다. 다소 길더라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30여 년 동안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책을 꾸준히 발간해 온 출판사를 마치 성폭력 가해자인 듯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며 매도하고, 진보적 출판사들이 참여하는 세계여성의날 기념 강연을 ‘캔슬’하고, 여성 차별을 반대하는 책에 ‘별점 테러’를 가하는 것이 과연 페미니즘에 이로운 일일까요?

 

1.

그 글은 ‘제이’라는 성폭력 피해 호소인이 쓴 글입니다. 그분은 그 글을 지지자 여러 명에게 보내어 SNS에서 게시하도록 했습니다. 그 글은 “책갈피출판사와 저 책의 저자가 저지른 짓을 기억해주십시오” 하고 호소합니다. 마치 책갈피 출판사가 그분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책갈피 출판사가 어떤 위해를 가했는지 정황이든 증거든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희 책갈피 출판사에 대한 심각한 모독입니다. 책갈피 출판사는 그분에게 어떤 가해 행위도 한 적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1992년에 설립된 저희 책갈피 출판사는 초창기부터 차별을 반대하는 책을 선구적으로 냈습니다. 《동성애자 억압의 사회사》(1995), 《동성애자 해방 운동과 마르크스주의》(1995), 《성, 계급, 사회주의》(2003) 등이 그것들입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차별을 반대하는 책을 냈습니다. 차별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두고는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책갈피 출판사의 진정성은 지난 30여 년의 출판 활동을 보시면 의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이’라는 분은 저희 출판사의 명예를 아무 근거 제시도 없이 이렇게 쉽게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너무도 놀랍고 황망할 뿐입니다.

 

2.

‘제이’라는 분은 2017년에 저희 책갈피 출판사가 낸 책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이 마치 자신을 2차 가해한 책인 듯이 관련 글을 링크해 놓았지만, 이 책은 ‘제이’라는 분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시에 이 책에 실린 사례 분석 하나가 자신의 일을 다룬 것이라며 항의한 분이 있었지만, 그분은 ‘제이’라는 분이 아닙니다. 이 책의 특성상 실제 사건을 거론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희 책갈피 출판사는 변호사 분들의 자문을 받는 등 세심하게 노력했다는 점도 밝힙니다.

이 책에 대해 출판 중지와 수거를 요구하는 분들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이 책이 피해자를 인신공격하는 2차 가해 책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출판 중지 연서명을 주도한 사람이 당사자가 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그런 주장을 허위 사실로 판단했다고 합니다(이 소송은 책갈피 출판사가 제기하지도 않고 당사자이지도 않은 소송입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출판 중지를 강요하는 건 언론·출판·사상의 자유에 대한 부정이었기에, 저희 책갈피 출판사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https://chaekgalpi.com/archives/2538). 1980년부터 출판의 자유를 위해 싸워 온 단체인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는 저희 책갈피 출판사를 지지했습니다(https://cafe.daum.net/cultural/5Bl/1418). 그리고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 최성호 경희대학교 교수님, 양소영 변호사님 등은 이 책을 호평하셨습니다.

 

3.

‘제이’라는 분의 글이 SNS에서 확산되며, 저희 책갈피가 낸 책이고 이번 강연의 한 꼭지를 맡은 책인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에 대한 별점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제이’라는 분이 직접 밝히셨듯이, 그분이 “읽어보지 않”은 책인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그분이 제기하신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에 기반한 차별 반대 운동을 우파의 공격에 맞서 단호하게 방어하면서도 그 강점과 약점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입장에서 쓴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정진희 님은 수십 년 동안 여성 차별을 분석하고 그에 맞서 활동해 온 분입니다. 일찍이 2000년대 중반에 《낙태, 여성이 선택할 권리》를 공저하며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옹호해 오셨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콜론타이·체트킨·레닌·트로츠키 저작선》(2015)과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2018)을 엮었으며, 《여성해방과 혁명: 영국혁명부터 현대까지》(공역, 2008)를 번역하셨습니다.

이런 책을 두고, ‘제이’라는 분처럼 “’지구가 네모’라는 주장”이라고 혹평하셔도 괜찮습니다. ‘편향적’이라고 비판하셔도,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열악한 영세 출판사가 애써서 만든 책이니만큼, 정독해 보시고 비판하시는 게 어떨까요? 책을 읽어 보지도 않고,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별점 테러부터 가하고 보는 것이 여성해방에 도움이 될까요? 저희 책갈피 출판사는 자유로운 의견 교환 속에서 치열하고도 건설적인 논쟁이 이뤄지는 것이야말로 여성해방운동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4.

‘제이’라는 분은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정진희 저자에게 2차 가해를 겪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진희 저자는 ‘제이’라는 분의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며 관련 소송에서도 인정된 바 없다고 전해 주셨습니다(오히려 그 소송 1심에서 ‘제이’라는 분의 조력자이자 대리인인 전지윤 씨는 패소했다고 합니다).

저희 책갈피 출판사는, 이 일과 관련해 당사자들 간에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소송도 진행 중인 이런 복잡한 사건에 대해 섣불리 진상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5.

세계여성의날 강연에 많은 독자들께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파의 ‘안티 페미니즘’이 있음에도 차별적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한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해체하려 하고 ‘정상 가족’ 개념을 강요하고 긴축정책을 통해 평범한 여성의 삶을 더 옥죄려는 상황에서 이 강연이 성공적으로 열리는 것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강연이 취소되는 것은 오히려 강연에 관심을 보인 많은 독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중한 토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니까요.

‘제이’라는 분의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저희 책갈피 출판사와 저희의 책이 성폭력 가해범으로 낙인찍히고 매도당하는 것, 저희와 마찬가지로 ‘제이’라는 분의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출판사들이 기획한 소중한 강연들까지 그 여파로 ‘캔슬’돼 버린 것이 페미니즘에 이로운 일일까요?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무분별하고 부당한 ‘캔슬’ 사건의 하나가 돼, 여성해방운동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요? 저희는 이런 고민과 걱정 속에서 숙고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책갈피 출판사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연을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저희의 책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저자 초청 강연에 많은 관심을 부탁합니다.

 

2023년 3월 14일

도서출판 책갈피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https://chaekgalpi.com/archives/4191

 

세계여성의날 기념 강연

정체성 정치는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 무기일까?

연사: 정진희(《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저자)

일시: 3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9시

장소: 플랫폼P 2층 다목적실(서울 마포구 신촌로2길 19 2층)

참가비: 5000원

참가 신청: https://forms.gle/2dZaNQWw3G3di4LG9

문의: 02-2265-6354,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