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1918년 1월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조차 아직 끝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도움 없이도 이행기를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 점에 관해 우리는 어떤 환상도 없었습니다. …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최종 승리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p 8 왜 국제주의가 사회주의의 근본 원칙인가?
국제주의는 사회주의의 근본 원칙이다. 단지 감상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세계경제는 오직 세계 수준에서만 변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주의를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공상일 뿐이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으로 생겨난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은 러시아 혁명의 추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러시아 혁명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일부였다. 러시아 혁명 자체가 국제적인 혁명적 대격변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p 77~79 코민테른은 여성해방 문제를 무시했다는데?
레닌이 살아 있을 때도 코민테른이 여성해방 문제를 무시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다. 여성해방 문제는 1차 대회와 2차 대회에서도 의제였다. 분명한 ‘테제들’은 3차 대회에서 채택됐지만, 이미 두 차례 국제공산주의여성대회가 열린 뒤였다. … [여성]해방은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여성들의 공동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착취받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 투쟁을 통해서 이뤄질 것이다. … 노동하는 여성과 부르주아 여성운동의 동맹은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약화시킨다.” … 이 모든 주장이 나온 때는 1920년대 초였다. 당시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이 허용돼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직 동의하지 못하던 때였고, 부르주아 여성운동이 제1차세계대전을 지지했을 때였다!
p 265 코민테른의 경험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을까?
코민테른의 결의안 문구를 상황과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기본적 원칙들이 담겨 있다. 예컨대, 계급 세력균형, 노동자 조직들의 상태, 개혁주의 정당들의 영향력을 자세히 검토해서 공동전선 활동을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명된다면, 그런 활동의 기본적 지침을 초기 코민테른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공동전선은 선전이 아니라 모종의 행동 통일을 위한 합의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독립적이고 정치적으로 명료한 혁명적 정당의 존재가 [공동전선 활동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 단결 압력에 떠밀려 본질적 문제들에 관한 차이를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p 265~266 코민테른은 언제부터 변질하기 시작했을까?
1923년은 전환점이었다. 1923년은 독일의 10월 [혁명]이 패배한 해였고, 소련 관료들이 자의식적 집단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해였고, 좌익반대파가 등장한 해였고, 관료들이 좌익반대파에게 폭력적으로 대응한 해였다. 1923년 말까지는 코민테른이 불가피한 약점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노동자 인터내셔널이었다. 코민테른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노동계급 투쟁이었다. 앞서 봤듯이, 당시 코민테른이 저지른 실수들은 그런 관심사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미숙하고 계급 세력균형을 잘못 판단한 탓이었다. 그러나 관료 집단이 성장하고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공식화하자 관심의 초점이 노동계급 투쟁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1924~1928년에 코민테른은 갈수록 왜곡되고 변질되면서도 여전히 혁명적 시기의 전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었다. 1928년 이후 그런 전통의 마지막 잔재들이 점차 청산됐다. 당시는 소련에서 노동자 권력의 마지막 잔재들이 청산된 바로 그때였다.
p 266 코민테른의 변질은 불가피했을까?
이런 결과는 불가피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1923년에 독일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했다면, 유럽·소련·세계의 미래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에 이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러자 소련에서 새로운 계급 지배가 확립되면서,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스탈린주의의 해악을 끼쳤고, 이에 대한 반발로 사회민주주의가 강화했다. 당시 좌익반대파가 영국·중국·독일 등에 관한 코민테른의 정책을 비판한 것은 여전히 적절하다. 트로츠키는 1929년 소련에서 추방당한 뒤에도 계속 비판했고, 그 내용은 이 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진정한 공산주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