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재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2쪽
19세기 초에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가능해졌고 20세기에 점점 더 널리 퍼진 생활 방식은 이제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사실상 우리를 사회적 붕괴로 몰아가고 있다.
13쪽
재난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고 있다.
18쪽
미국이나 호주처럼 부유한 나라들은 이런 재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팬데믹이 보여 주듯이, 수십 년간 시행된 민영화와 긴축정책 때문에 국가의 역량이 줄어들어서 정부가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18~19쪽
부자들은 감염 중심지를 피해 호화 요트에서 지내며 온라인으로 계속 사업을 하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노동자는 팬데믹 기간에도 날마다 목숨을 걸고 일하라는 가차 없는 압력을 받았다.
20쪽
너무 오래 머물러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 같은 자본주의는 이제 “상시적 재난”이 됐다.
23쪽
이 책의 일관된 주제는 이 새로운 세계적 위기 국면을 서로 구분되면서도 연관된 차원들 속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30쪽
벤야민은 구원을 (혁명으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혁명과 동일시하는데, 벤야민이 생각하는 혁명은 진보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저항하는 메시아가 자본주의적 정상 상태의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에 침입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이 재난 시대에 혁명을 생각하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33쪽
1차 재난 시대와 지금 시대를 연결하는 일관된 주제는 혁명과 반혁명의 상호작용이다.
46쪽
파시즘은 아래로부터 반혁명이었다.
54~55쪽
그람시는 제1차세계대전 때 폭발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유기적 위기”가 러시아 혁명과 이를 모방하려는 각국의 혁명운동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체제를 재건하려는 자본의 노력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74쪽
기후변화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부정적 외부 효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환경 파괴 과정은 자본주의가 자연을 상품화하는 경향, 즉 지구 자체와 지구의 소산인 자원을 시장성 있는 자산으로 변화시키는 경향 때문에 더 격렬해진다.
75쪽
모든 국가가 탄소 중립 경제로 전환하는 비용을 다른 국가들에 떠넘기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 기후 협상에서 국가 간 형식적 평등은 엄청난 힘의 불평등, 특히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불평등 때문에 효과가 없어진다.
83쪽
자본주의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해서만 사회적 생산과정의 결합도와 기술을 발전시킨다.
86쪽
자연환경이 인간의 사회구성체에 미치는 영향은 항상 그 사회구성체에서 지배적인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조들에 의해 매개된다. 노동과 자연의 물질대사라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쌍방향적이다.
109쪽
미래의 재난 대응은 국가의 억압적 권력을 강화하려는 또 다른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120~121쪽
신자유주의 정설이 “기술 관료적 케인스주의”로 바뀌었다.
141쪽
재난 시대가 시작된 가운데 기술 관료적 케인스주의의 출현은 신자유주의의 종말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를 의미하는가?
166쪽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세계 정치의 가장 유력한 특징이다.
177쪽
중국 국가와 중국 국경 내에 기반이 있는 자본가들은 사적 자본가든 (크리스 하먼이 말한) 정치적 자본가든 서방 경쟁자와 똑같이 경쟁적 축적 논리를 따른다. 사실 이 논리가 미국과 중국의 적대 관계 밑바탕에 놓여 있다.
180쪽
미국과 중국의 자본축적 패턴은 상호 의존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냉전 시기의 동서 대립보다는 1914년 이전 영국과 독일의 적대 관계와 더 비슷하다.
188쪽
원래 덩샤오핑이 창안한 ‘공동 부유’라는 구호가 중국에서 되살아난 것은 중국식 성장 모델이 가져온 환경 파괴와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구호는 경제의 방향을 기술혁신과 국내시장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200쪽
우크라이나 위기는 세계 수준과 유럽 수준에서 모두 고조돼 온 긴장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204쪽
미국과 중국의 적대 관계와, 러시아와 나토의 경쟁은 상호작용을 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더 단결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217쪽
지금의 [세계적] 양극화는 비록 아직은 또 다른 냉전적 세계 분할이라고 부를 만큼은 안 되지만, 꽤나 심대해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표현을 발견하고 있다.
219~220쪽
흔히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득세하고 있는 강력한 권위주의화 추세를 무시한다.
222쪽
중국과 러시아 모두 독재 정권이지만, 종류는 사뭇 다르다. 중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적으로 훨씬 더 큰 이데올로기적 호소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발전 모델이 특히 다른 탈식민지 세계에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227쪽
“민주주의에 대한 극우파의 위협은 다른 나라들보다 미국에서 더 첨예하고 심각하다.”
230쪽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들이 긴축정책에 저항하는 데 크게 실패한 것을 배경으로 해서, 이 “난민 위기”가 낳은 인종적 양극화는 극우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233쪽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적 현상 유지에 대한 모든 도전을 무시하고 뭉뚱그리는 데 사용되는 두루뭉술한 표현이자 포괄적 용어가 돼 버렸다.
236쪽
극우파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폐 때문에 생겨난 (적어도 특정 부문 사람들의) 분노가 한편으로는 범세계주의적 엘리트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민과 난민들로 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월든 벨로가 세계화에 대항해 일자리와 복지를 옹호하며 멋지게 표현했듯이 “우파가 좌파의 점심을 먹어 치웠다.”
265쪽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습격은 비록 트럼프의 대통령직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 공격에 참가한 극우파 집단들에게는 성공이었다는 것이다.
267쪽
미국 대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바이든의 취임은 정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므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기만은 금물이다. 트럼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거기서 만만찮은 전국적 파시즘 운동이 튀어나올 수 있었다.
270쪽
바이든 정부가 실패한다면 극우파 전체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역설이게도, (프랑스와 달리) 미국에서는 양당 체제가 온전히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극우파에게 정치권력에 바로 접근할 기회를 제공한다. 공화당 안에서 극우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85쪽
조직 노동계급은 역사적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 세력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공세의 절정기에 노동조합들이 겪은 패배를 내면화한 경향들이 조직 노동계급을 지배하고 있다.
293쪽
“반젠더 사상과 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이다.”
295쪽
새로운 페미니즘이 … 더 폭넓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적 혼란 때문에 생겨난 분노를 극우파가 이용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것이다.
296쪽
지금과 양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의 두드러진 차이는 극우파가 전진하는 가장 중요한 무대가 미국, 즉 여전히 패권을 휘두르는 자본주의 강대국이라는 점이다.
302쪽
인종차별 반대는 흑인 지역사회를 훨씬 넘어서, 사실은 미국을 훨씬 넘어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동원하는 힘이 됐다.
307쪽
21세기에 노동계급의 성격을 감안하면, 노동계급은 사람들을 짓누르는 다양한 차별, 특히 젠더, ‘인종’, 성적 지향, 장애로 인한 차별에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 이 필요성은 세계화한 생산 네트워크의 발전이 남반구 노동자들과 북반구 노동자들의 상호 의존을 만들어 내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311쪽
신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에 풀란차스가 경고한 ‘권위주의적 국가주의’가 신자유주의 시대 말기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313쪽
시장의 대안을 논의하기 위한 기술적·사회적 조건들은 플랫폼 자본주의의 출현 후 급격하게 바뀌었다. …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디지털 피드백 기반 시설에 민주적 계획의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316쪽
극우파의 성장에 가장 큰 자양분 구실을 한 것은 정치과정에서 배제됐다는 광범한 소외감이었다. 따라서 단지 원칙 때문만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 때문에라도 자본주의의 대안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해야 한다.
316쪽
마르크스의 원래 사회주의관, 즉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는 자력 해방 사상을 복원하는 것은 좌파가 자신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능력을 되찾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317쪽
내가 전략에 관해 주장하고 싶은 요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우리가 자유주의자들과 동맹해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시민 불복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며, 셋째는 폭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330쪽
비상 브레이크를 건다는 것은 정치권력 장악을 의미한다. 누가 권력을 장악할 것인가?
331쪽
재난의 시대는 반란의 시대이기도 하다. 바로 반란에 미래를 위한 우리의 희망이 있다. 실제로 재난은 반란을 부채질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최초의 봉쇄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한 것을 봤듯이 말이다.
332쪽
(흔히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필수 노동자들’이 봉쇄 기간에 갑자기 눈에 보이게 됐다는 사실은 임금노동이 여전히 지닌 구조적 힘을 분명히 보여 줬다.
337쪽
우리가 직면한 무서운 전망은 모든 사람이 인류를 구하는 투쟁의 일부가 될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