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배경이 된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경쟁과 갈등(144~147쪽)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후에도 러시아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관계가 밀접했지만,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려 했다. 우크라이나가 2014년 친서방으로 기운 것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이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온 것과 맞물려 있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후 매우 약해진 상태여서 1990년대에는 서방 열강의 동진에 별 대응을 하지 못했지만 2000년대에 고유가와 푸틴 집권이 맞물리면서 상황이 변했다. 푸틴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군사 강국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러시아의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졌고, 2008년에는 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돼 위상이 전만 못하게 됐다. 미국의 위세가 장기간에 걸쳐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며 지역적 수준에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잡으려 한다.
러시아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러시아 국내 상황(244~250쪽)
저를 포함해 1만 8000명이 넘는 전쟁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구금되고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또, 많은 좌파 활동가들, 사회학자들, 정치학자들, 문화인들이 지금도 구금돼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온갖 억압적 법률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적 반전 시위가 더 벌어지는 것을 정권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미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일부 사람들은, 더는 전쟁 초기만큼 푸틴 정권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대중의 정서에 이미 내적 긴장이 불거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의 일반적 반정부 정서를 반전운동과 결합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러시아 제재 반대(75~76쪽)
바이든과 그 밖의 미국 지배층이 제재를 선호하는 이유는 절대적인 필요가 제기되지 않는 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에 나서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여러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했죠. 그래서 미국 지배층이 제재 운운하는 것은, 실제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봅니다. 제재는 지배층만을 타격하지 않습니다. 그 타격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쉽게 떠넘겨질 수 있습니다. 환율이 추락했고 사람들은 현금인출기 앞에 길게 줄을 섰죠. 러시아의 (아마 대개 전쟁에 반대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드는 것이 전쟁을 멈추는 데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요?
전쟁 지원으로 긴장 고조에 일조하는 한국 정부(312~314쪽)
이미 전쟁 초기부터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군용 헬멧, 방탄조끼, 군화 등 이른바 “비살상” 군수물자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한국의 군수 지원 규모가 설사 서방 강대국들보다 작더라도 우크라이나군을 통해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는 서방 제국주의를 적극 지원한다는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는 전쟁 초부터 러시아 경제제재에도 동참해 왔다. 한국 지배자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안전이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 초기부터 미국의 제재와 지원에 동참해 온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젤렌스키와 직접 통화해 양국의 “결실 있는 협력에 대한 확신을 표현”한 윤석열도 이 전쟁으로 친미 공조를 지속·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행보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동참은 시나브로 중국과의 긴장을 키울 것이고, 이는 한반도에도 부정적 효과를 낼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평화와 단결을 향한 오랜 열망(122~125쪽)
언어와 민족을 둘러싼 오래된 분열은 사실 약해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계든 러시아계든 대다수는 이중 언어 사용자다. 이들은 서로 결혼하기도 하고 두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1990년에 벌어진 독립 투쟁 당시 저항과 파업을 벌인 우크라이나인들은 단결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동부의 돈바스 지역에서 광원 파업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아성인 서부에서도 광업 중심지들이 파업에 합류했다. 당시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도 우크라이나 독립 지지 여론은 83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평화와 갈등 종식을 향한 열망은 침공 전까지 상당했다. 2021년 말에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도 우크라이나인 35퍼센트가 나토 가입에 반대했다. 따라서 침공 직전까지도 나토를 둘러싼 우크라이나인들의 여론은 엇갈려 있었던 것이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 아니다(214~216쪽)
이 전쟁에서 ‘권위주의’ 러시아에 맞서 ‘민주주의’ 서방을 지지해야 한다는 서방 측의 주장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애초에 서방은 푸틴의 통치 스타일을 그다지 문제 삼지 않았다. 예컨대, 푸틴이 체첸 독립운동을 분쇄한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성장이 서방에 득이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서유럽 자본주의의 연료 구실을 했고, 러시아 자본이 서유럽 금융시장에 들어가 서방 금융가들을 만족시켰다. 요컨대,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서방 주도의 정치·경제 질서 안에서 성장한 것이다. 근래에 서방이 푸틴의 권위주의를 문제 삼는 까닭은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옛 소련 소속이었던 국가들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군사력을 이용하고 있어서다. 푸틴이 2008년에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에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갑자기 서방은 그의 온갖 악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끝내는 바람직한 방법(324쪽)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당연히 러시아 제국주의와 그들이 벌인 무자비한 침공을 규탄해야 한다. 러시아군의 즉각 철군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미국 제국주의의 동맹인 나라에 사는 우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지금의 재앙을 낳는 데 일조했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러시아가 취약해졌을 때 러시아 국경 쪽으로 나토를 진출시키고 친서방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 서방에 합류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겨서 푸틴의 불만과 피해망상에 부채질을 했다. 많은 사람이 전쟁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할수록 제국주의 체제 자체에 맞선 운동을 더 크게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