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트로츠키의 정치를 연구하려면 연속혁명론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의 이름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 연속혁명론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첫 번째 독창적인 기여일 뿐 아니라 이후 그의 모든 정치적 발전의 토대였다. 트로츠키주의의 주된 특징, 즉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타협적인 반대와 세계 노동자 혁명에 대한 헌신, 이 둘 모두 연속혁명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오해와 왜곡의 대상이었던 연속혁명론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속혁명론의 가장 기초적인 핵심은 러시아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노동 계급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시기를 통과하지 않고도 서구 노동 계급보다 먼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사상이다.
연속혁명론이란 무엇인가
우선, 이것은 짜르 러시아에서 무르익은 혁명의 본질과 동학이라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멘셰비키는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일 것이며, 따라서 부르주아지가 주도할 것이고, 부르주아 정부 수립에서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역할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반면 멘셰비키와 같이 레닌도 자본주의 사회 관계를 뛰어넘거나 전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일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였지만, 부르주아지가 혁명을 이끌 것이라는 견해에는 반대했다. 레닌은 이 혁명이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동맹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게 혁명적 잠재력이 없다는 점에서는 레닌과 완전한 의견 일치를 이루었지만, 레닌이 농민의 독립적이고 혁명적인 대표성에 대한 전망을 과대 평가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트로츠키는 혁명 정부를 지배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세력은 프롤레타리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한번 권력을 잡는다면 그들은 사태의 논리 때문에 부르주아 소유 관계를 급격하게 침해할 것이고, 자신의 지배를 옹호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하고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착수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연속혁명’ 이론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의 이론을 역사에 등장시킨 바로 그 ‘제목’은 마르크스가 쓴 “공산주의 동맹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편지(1850년 3월)”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트로츠키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부르주아지와 달리 역사적 근거나 전통도 없는 나약한 러시아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뒤늦은 출발, 외국 투자에 대한 의존, 그리고 국가의 후원 때문에 가장 현대적인 기술과 가능한 가장 큰 규모에 바탕해서 공업이 발전함으로써 강력한 힘을 갖게 된 러시아 노동자 계급을 보면서 이러한 이론을 정립해 갔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러시아 역사와 계급 투쟁의 논리 때문에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나타날 것임을 아무리 강력히 보여 주었더라도, 러시아 혁명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한계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논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러시아의 20세기 공업이 17세기 농업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나 마찬가지였고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선행 조건이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전망을 공유했던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가 항상 트로츠키를 반대한 이유였고, 트로츠키는 결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트로츠키의 대답은, 혁명의 구원은 혁명의 국제화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했던 것처럼, 러시아 자체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데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 경제와 무엇보다 유럽 경제는 대부분 확실히 무르익었기 때문이었다. 혁명의 확산은 군사력을 통해 자본주의를 회복하려는 위협을 제거하고, 러시아를 세계적인 경제적 경쟁의 압력에서 구원하고, 러시아 생산력을 빨리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들을 만들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전체가 아니라 국제적인 사슬의 한 고리로서만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국제주의는 추상적인 원칙이나 선택 가능한 추가 사항이 아니라 핵심적인 필요였다.
연속혁명론은 트로츠키의 자신의 말로 잘 요약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 연속혁명이란 끊임없는 혁명, 중단 없는 혁명이다. 이러한 표현에 담겨 있는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혁명은 이러저러한 정치적 성취 후에, 이러저러한 사회 개혁을 획득한 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훨씬 더 발전하는 것이고 그 유일한 경계는 사회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번 시작한 혁명은, 우리가 그 안에 참여하고 특히 우리가 그것을 이끌 때, 어떠한 형식적인 단계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 의해 저지될 수 없다. 반대로 혁명이 운동의 모든 가능성과 모든 자원을 다 써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물론 상황에 일치해 혁명을 발전시킨다. 이것은 한 나라에서 혁명의 성공과 마찬가지로 국제적 영역으로 혁명을 확장시키는 데에도 적용된다.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이론이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예로운 부르주아 공화국도, 심지어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도 아니라, 농민에게 지지를 받고 국제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를 여는 노동자 정부다.”
연속혁명론의 의의
연속혁명론은 중요한 이론적 돌파구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많은 점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제2인터내셔널의 특징은 사회주의로 향한 진보를 고정된 시간표에 묶어놓으려 했던 기계적 경제결정론이었다. 이에 반대해서 트로츠키는 루카치가 레닌 사상의 뚜렷한 특징이라고 묘사한 것―혁명의 ‘현실성’―즉, 혁명을 멀리 있고 막연한 열망에서 현재 정치의 결정 요소로 바꾸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 연속혁명론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사회민주주의 유럽 중심주의, 즉 사회주의를 선진 공업국의 문제로만 여기고 나머지 세계를 역사의 객체로만 다루었던 생각에 파열구를 냈다. 만약 프롤레타리아가 서구의 노동 계급보다 먼저 반(半)산업화 국가이자 반(半)식민지인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는 것이 가능하다면 러시아보다 더 후진적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이런 일반화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트로츠키가 제시했듯이, 연속혁명은 전략일 뿐 아니라 예측이었다. 사실 이후의 역사는 트로츠키의 2차원 윤곽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트로츠키의 정치 사상을 다룰 때 “현실에서 사람들은 투쟁만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뿐이지 지속적인 운동 속에서 대립되는 세력들의 결과일 수밖에 없는 투쟁의 구체적 계기들을 예측할 수는 없다.”는 그람시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연속혁명론은 그 힘을 온전히 보유한다. 상이한 가능성들을 인정한다면, 이론이 예측으로서 실패했다 하더라도 목표로서 그 이론의 타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연속혁명론은 국가와 당에 대한 레닌의 이론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정치 분석에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중요한 기여의 하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