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에 대한 오해가 상식이 된 지는 오래됐다. 오해의 핵심은 바로 레닌과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자체에서 스탈린주의가 비롯했다는 생각이다. 스탈린주의는 1920년대 말부터 1991년 몰락 때까지 존속한 소련의 사회체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그 사회체제를 합리화하고 지지하는 사상과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러시아 혁명 이후 6년여 시간이 흘렀을 때 레닌이 사망했고,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스탈린 체제가 확립됐다. 그 중요한 특정 시기에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 없이, 그저 매스 미디어와 자본주의 대학의 영향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해 재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게으른 행동이다.
이 정치적 나태가 스탈린주의를 소생시키는 것으로까지 나타나기는 쉽지 않았다. 소련 시대의 잔재를 표상하는 푸틴 자신이 소련과의 단절을 더할 나위 없이 분명히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그에 대응한 미국의 중국 중심 대외 정책은 ‘시장 스탈린주의’라고 할 만한 것의 부상을 초래했다. 특히, 시진핑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김정은은 한껏 냉전적 대남 정책을 선포했다. 물론 자기 부친과 구별되는 그의 노선은 서방(특히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와 남한 국가의 친서방 노선에 대응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와 맥을 같이해 북한 스탈린주의 체제의 기관지 <로동신문>은 2020년 1월 17일 ‘사회주의 운동의 더러운 배신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로츠키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사회주의 운동사에는 자기를 혁명의 길에 내세워 준 수령의 믿음을 저버리고 배신한 자들도 기록돼 있다. 러시아의 트로츠키도 그러한 자 중의 하나다. … 트로츠키는 레닌이 병상에 들 무렵 스탈린을 후계자로 지목하자 자기의 더러운 본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 그는 분별을 잃고 반(反)레닌, 반(反)스탈린, 반(反)혁명 책동을 광란적으로 벌였다. …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환상이라고 헐뜯었는가 하면, 사회주의 건설이 추진되자 초공업주의를 비롯한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 책은 이런 주장이 순전한 거짓임을 명명백백하게 보여 준다. 특히, “트로츠키는 레닌이 병상에 들 무렵 스탈린을 후계자로 지목하자 자기의 더러운 본색을 드러내고야 말았다”는 거짓말이나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건설 관련 거짓말이 두드러진다. 트로츠키는 (소련)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반대한 것은 사회주의 건설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 즉 계급 없는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가령 이 책 5장에서 다루는 문제, 즉 노동자 국가에 의한 대외무역 독점 같은 정책을 트로츠키가 지지했는데도 그를 사회주의 건설 반대론자로 모는 것은 명백한 왜곡 아니겠는가.
레닌과 트로츠키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자신처럼 사회주의를 계급 없는 사회로 이해했다. 그런 사회로 가려면 자본주의의 철폐가 필요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려면, 노동자 혁명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는 것과 아래로부터 노동자 국가(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불렀다)를 수립하는 것이 전제 조건으로 요구됐다. 이 두 가지 일을 말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특히 카우츠키주의)을 두고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모조품이라고 규탄했다.
10월 혁명은 두 가지 일 중 한 가지 일(기존 국가 분쇄)을 성취했음을 뜻했다. 그러나 다른 일, 즉 노동자 국가 수립은 진행형이었다. 그 과정은 지난했다. 처음에는 차르 잔당들(백군)과의 내전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백군을 물리친 후에는 서방의 경제적·외교적 압박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이 압박은 혁명 러시아 사회에 거대한 부담이 됐다. 레닌은 특히 관료주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당시 러시아 국가가 “관료적으로 일그러진 노동자 국가”라고 정의한다. 그가 그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정의하지 않았음에 유의하라.
관료화를 표현하는 핵심 국가 관리자가 바로 스탈린이었다. 레닌은 그를 직위(직책)에서 밀어내려 했다. <로동신문>이 주장하듯이 “스탈린을 후계자로 지목하”기는커녕 말이다. 리투아니아 태생 유대계 마르크스주의자 모셰 르빈(1921~2010)은 레닌의 이 노력을 “레닌의 마지막 투쟁”이라고 불렀다. 레닌의 투쟁은 그가 세 번째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고 언어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르빈은 그의 투쟁을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대안의 실종”을 얘기했다. 실제로 트로츠키는 “반(反)스탈린 책동을 광란적으로 벌”(<로동신문>)이기는커녕 투쟁을 회피한 측면이 있다. 역자는 이것이 트로츠키의 큰 잘못이었다고 보는데, 그가 레닌의 자리를 계승하기 위해 애쓴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 그랬다고 나중에 설명했음에도 그렇다. 역자는 트로츠키가 당시에 레닌주의 정당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가 충분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레닌 사후 스탈린 체제가 갈수록 굳어지고 있음을 깨달으면서였다고 본다. 레닌이라는 비빌 언덕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개척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하필 1923년 10월에는 그 갈망했던 독일 혁명도 실패했다. 러시아의 경제적·외교적 고립은 더 심화됐다. 그리고 1924년 1월 마침내 레닌이 사망했다. 그러자 몇 달 뒤 스탈린은 자신이 쓴 책의 국제주의적 주장 부분을 개악한 개정판을 내놓으면서까지 일국사회주의론(러시아 한 나라에서도 무계급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을 주장했다. 스탈린은 전혀 사상가 재목이 못 되었으므로 사실 일국사회주의론은 부하린이 주창한 것을 훔쳐 온 것이었다. 스탈린은 부하린의 주장이 독일 혁명 패배 후에 고립을 애국심에 호소해 극복해 보려던 신흥 러시아 관료의 처지를 합리화하기에 적합한 이데올로기라고 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이런 상황 전개를 예상할 수 없었던 레닌이 낙관론을 갖고, 또는 설사 불길한 예감이 들어도 애써 억누르며 쓴 것들이다. 아직 러시아 혁명의 성취가 완전히 무로 돌아가고 사회가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 되기 전에, 단지 퇴화했을 뿐인 노동자 국가하에서 개혁을 추구하며 의견 교환을 한 글들이다(레닌과 연대하며 의견을 주고받은 트로츠키의 글들도 포함돼 있다).
이런 과정을 진지하게 알아보려 하지 않고, 또 레닌 사후 전개된 당내 갈등을 개인들 간의 권력투쟁 정도로 축소해 이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나태한 일인지 이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중국과 북한 바깥에서 스탈린주의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경쟁하며 좌파적 개혁 운동 구실을 하고 있다. 가령 한국에서 민주당이 재기를 위해 애쓰는 노력의 일부를 진보당과 그 계열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담당하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극우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므로 이 노력들은 흔히 지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전략은 민중주의라는 한계가 설정돼 있다. 그래서 노동자 투쟁이 정치적 항의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특히, 이윤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계획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 책은 스탈린주의를 레닌주의의 적법한 상속자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 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비정통적인 스탈린주의 운동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이 책은 스탈린주의의 기원을 보여 주는 구실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