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레닌에 대한 오해가 상식이 된 지는 오래됐다. 오해의 핵심은 바로 레닌과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자체에서 스탈린주의가 비롯했다는 생각이다.
9쪽
러시아 혁명 이후 6년여 시간이 흘렀을 때 레닌이 사망했고,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스탈린 체제가 확립됐다. 그 중요한 특정 시기에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알려는 노력 없이, 그저 매스 미디어와 자본주의 대학의 영향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레닌과 러시아 혁명에 대해 재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게으른 행동이다.
62, 64쪽
서기장이 돼 있는 스탈린 동지는 자신의 손에 무제한의 권력을 집중시켜 놨습니다. 저는 그가 항상 충분히 신중하게 그 권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스탈린은 너무도 무례합니다. 그리고 이 결점은 우리 사이에서, 우리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용납될 수 있을지라도 서기장직을 맡는 데에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저는 동지들이 스탈린을 그 직위에서 해임하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대신 임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스탈린 동지와는 다른 사람, 즉 더 참을성 있고, 더 충직하고, 더 예의 바르고, 동지들을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덜 변덕스러운 등등의 장점이 단 하나라도 있는 사람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말입니다.
91~92쪽
레닌은 또한 시대는 변하며 그와 함께 우리도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은 지하활동을 하다 권력의 꼭대기로 단숨에 솟아올랐다. 이 때문에 옛 혁명가들은 개인적 상황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놀라울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됐다. 레닌은 이런 새로운 조건에 놓인 스탈린에게서 발견한 것을 신중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유언장에서 지적했다. 충직함이 부족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다. … 스탈린은 갈수록 더 광범하고 무차별적으로 혁명적 독재의 여러 가능성을 이용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서기장 자리에 있으면서 그는 혜택과 부(富)를 베푸는 권한을 갖게 됐다. 여기에 피할 수 없는 갈등의 기초가 놓였다. 레닌은 점점 스탈린에 대한 도덕적 신뢰를 잃어 갔다.
133쪽
모스크바에는 4700명의 공산주의자가 책임 있는 지위를 맡고 있고, 저 어마어마한 관료 기구, 산더미처럼 거대한 저 기구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저는 공산주의자들이 저 거대한 기구를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 참말인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공산주의자들은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받고 있습니다.
171쪽
우스꽝스럽게 점잔 빼거나 우스꽝스럽게 으스대는 태도를 벗어던지기를 바랍시다. 그런 태도는 오로지 우리 소비에트·당의 관료에게나 이로울 뿐입니다. 덧붙여 말하면 관료는 소비에트 사무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당의 사무실에도 있습니다.
176~177쪽
서구 자본주의 열강은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는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곤궁에 몰아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러시아의 내전을 부추겨 최대한 많은 곳을 폐허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 마침내 그들의 문제는 반쯤 해결됐습니다. 그들은 혁명이 창출한 새로운 체제를 전복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 새로운 체제가 즉각 첫걸음을 내딛는 것은 막아 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의 예측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며 사회주의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사회주의를 창출할 모든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해 줄 그 첫걸음을 말입니다.
186~187쪽
권력을 장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중을 재교육하고 새로운 노동 방식으로 훈련하고 그들에게 아주 사소한 일(사소하지만 사고 전체의 전환을 전제로 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사소한 일이란, 크고 천장이 높은 관청에 들어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책상 앞에서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어쩔 줄 모르는 늙고 글을 모르는 농촌 여성에게 소비에트의 관리가 정중하고 공손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관청에는 그녀에게 손가락 끝으로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우리의 관료주의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농촌 여성은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관리들 앞에서 어찌할지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사무실을 떠나고 맙니다. 만일 그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 7~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녀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관리들이 그 여성을 도와주려 하기는커녕 돌려보내기 위해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230쪽
저는 대러시아 국수주의를 끝장내기 위한 전쟁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빌어먹을 충치를 빼는 즉시 건강한 치아로 그것을 먹어 치울 것입니다.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그루지야인 등이 교대로 연방 중앙집행위원회의 의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강력히!
232~233쪽
우리 스스로 정당화한 “연방에서 탈퇴할 자유”라는 말은 단지 휴지 조각에 불과할 것이고, 전형적 러시아 관료만큼이나 실제로는 악당이며 폭군인 진짜 러시아인스러운 남자, 즉 그 대러시아 국수주의자[스탈린]의 맹공격에 맞서 비러시아인들을 방어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아주 당연합니다. … 우리가 진짜로 러시아인스러운 그 골목대장에 맞서 비러시아인들을 실제로 보호할 수 있는 조처를 취하는 데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습니까? … 스탈린의 성급하고 순수 행정에 심취하는 성향, 악명 높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여기서 치명적 구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치에서 악의를 품는 것만큼 야비한 구실을 하는 것은 없습니다.
235쪽
억압 민족의 민족주의와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를, 큰 민족의 민족주의와 작은 민족의 민족주의를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둘째 부류의 민족주의[피억압·약소 민족의 민족주의]와 관련해서 보면, 큰 민족의 국민인 우리는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무수한 폭력을 휘두른 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수도 없이 폭력을 사용하고 모욕을 줬습니다. … 이 때문에 억압 민족, 즉 이른바 ‘위대한’ 민족(오직 폭력에서만 위대하고 폭력배로서만 위대하지만)에게 국제주의는 민족 간의 형식적 평등을 준수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보상하기 위해 억압 민족, 위대한 민족 자신의 불평등을 감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민족문제를 대하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적 태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프티부르주아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부르주아적 관점으로 미끄러지고 말 것입니다.
236~237쪽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비난을 마구 남발하는 그 그루지야인[스탈린](사실 그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이고 심지어 저속한 대러시아주의 골목대장입니다)은 사실상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연대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연대가 발전하고 강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민족적 불공평이기 때문입니다. … 프롤레타리아의 연대,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근본적 이익을 위해서는 민족문제에 형식적 태도를 취해서는 결코 안 되며 억압 민족(또는 큰 민족)을 대하는 피억압 민족(또는 작은 민족) 프롤레타리아의 구체적 태도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