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44~45 제2차세계대전 시기 여성의 독립성 증대
제2차세계대전은 역설이게도 많은 여성의 삶이 고양된 시기 중 하나였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노동인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근본적인 격변이 일어났다. 여성이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로 여겨지던 군수산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여성 임금은 극적으로 상승했고, 여성들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남편들이 징집돼 외국에서 싸우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집을 떠나 살며 장시간 일을 하게 됐고, 제한적으로나마 집 밖에 나가서 독립성을 누릴 정도로 돈을 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성을 대하는 태도와 낡은 도덕을 무너뜨리는 데 영향을 끼쳤다.
p 129~132 이중, 삼중의 굴레
오늘날 여성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집 밖에서 일을 한다. 또,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뒤에도 전일제 일자리를 유지한다는 점이 큰 변화다. 여성들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박을 강하게, 자주 받지만 여성들이 일을 하는 조건은 훨씬 열악해졌다. 예를 들어, 공공 부문이 민영화되면서 노동조건이 악화됐다. 복지국가도 공격을 받으며 복지가 담당하던 부분은 점점 더 개별 가정에 부담으로 떠넘겨졌다. 이제 여성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라고, 그것이 여성의 책임이라고 요구받는다. 거기에 적합한 교육을 받고 기술을 익혀 노동시장에 진입할 능력을 갖추는 것도 각자의 책임이라고 한다. 이제 “이중의 굴레”라는 말도 여성들의 처지를 묘사하기에는 부족하다.
p 106~108 신자유주의와 가족 해체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국면의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과 국제적 통합을 고집하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 대규모 이주를 초래했고 이 모든 것이 분명 가족의 해체에 기여했다. 빈곤, 해외 이주, 야간 노동과 장거리 통근 등 일상의 온갖 압박, 이상적 가족 모델을 따르기 위해 거의 매일 지출한 결과 생겨나는 각종 청구서와 할부금,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끊임없는 고된 노동 등 가족의 복원을 저해하는 요인들은 압도적으로 많다. 더구나 지금까지 열악한 상황과 힘든 관계를 감내한 여성들 덕에 가족의 결속이 유지돼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가족 해체는 더 빨라질 것이다.
p 61~63 성 해방인가 성 상품화인가?
오늘날 광범하게 퍼져 있는 섹슈얼리티의 표현들은 도저히 성 해방이라고 할 수 없다. 성을 바라보는 지배적 시각은 평등이나 개방성과는 거리가 멀다. 포르노, 섹스 토이, 선정적 사진이 실린 남성 잡지 등의 상품과 서비스에 상당한 돈이 지불되지만, 성적 관계에서의 다정함이나 사랑이나 친밀함은 빠져 있다. 남성과 여성에게 즐거움을 줘야 할 인간관계가 고깃덩어리나 중고차처럼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변질된다. 성 해방의 핵심으로 성적 자유를 위해 운동하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읽고 시청할 권리를 요구했던 여성들로서는 여성의 성적 자유가 신장된 상황으로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p 166~173 남성의 위기?
1970년대에는 전후 호황기가 급속히 막을 내렸으며 ‘남성 일자리’가 매우 많이 사라졌고 여성의 역할 변화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또, 일련의 중대한 불황들로 제조업 분야에서 매우 광범한 구조조정이 벌어져 특히 남성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자신의 의사와 어긋나게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남성들이 당혹스러워하며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 많은 [여성] 가정주부들도 그런 감정을 느꼈고 지금도 느끼지만, 남성들이 그런 감정에 적응할 사회적 여건은 마련돼 있지 않고, 그래서 남성들은 ‘좋은 주부’가 되기도 힘들다. 실직 후 아이를 돌보며 사는 남성 대다수는 자신을 ‘실패한 가장’이라고 생각하지 아이를 잘 돌보는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 195~197 새로운 성 역할이 곤혹스럽게 느껴지는 이유
정말 중요한 변화는 남성과 여성이 일과 가정생활 면에서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그 일들을 해내려 분투하고 있다. 가족 모두가 먹고살 만한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제 남녀가 모두 일해야 한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녀 개인들은 과거의 역할을 크게 벗어난 남녀의 모습을 인정하며, 예전에는 다른 성별의 특성으로 여겨지던 역할을 최소한 일부라도 받아들일 것이다. 새로운 역할에 맞춰 간다는 것은 보람이 있을 수도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힘들다. 그래서 여성들은 동일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남성들은 무보수 육아에 참여하라고 요구받는다.
p 282~284 여성 참정권 운동과 계급 문제
에멀린 팽크허스트와 그녀의 딸 크리스타벨이 1903년 맨체스터에서 창립한 서프러제트는 조직의 규모가 크고, 여성 참정권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정부 각료와 정치인들을 집요하게 공격해서 급속하게 명성을 얻었다. 여기서도 계급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에멀린과 크리스타벨은 재산에 따른 기존의 기준에 따라 여성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점점 노동계급과 대립하게 됐다. 반면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둘째 딸 실비아는 이스트엔드에서 보육 문제 등의 쟁점으로 노동계급 여성들을 조직했다. 그녀는 1917년에는 러시아혁명을 지지했으며 제1차세계대전 이후 잠시 동안은 신생 공산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에멀린과 크리스타벨은 보편적 참정권에 반대했으며 제1차세계대전을 열렬히 지지했다.
p 237~240 여성해방운동의 기여와 한계
여성해방운동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여성들은 놀라울 만큼 대단한 세대에 속했다. 그 세대 남녀 학생들은 대개 미국 북부 출신이면서도 1960년대 초에 남부로 가서 공민권운동을 도왔다. 여성들은 이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힘든 상황에서도 운동에 헌신했고 용기를 발휘했으며 원칙을 지켰다. 그들은 정당하게도 이 운동을 관통하는 원리가 여성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확장되기를 원했다. 그 염원이 심각하게 묵살되면서 여성운동은 여성운동 자체에도 좌파에게도 때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즉, 원래라면 사회주의자들과 자연스럽게 연대를 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페미니스트 단체는 남성을 배제하고 조직했다. 이것은 또한 여성해방운동이 인간 해방의 실현이라는 전망에서 멀어져 결국 막다른 골목에 부딪힐 이론들을 받아들이거나 발전시키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p 277~279 여성해방에 기여한 사회주의자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만큼이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전통과 인간 해방을 위한 노력의 역사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이 역사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 최대 사회주의 운동의 근거지였던 독일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의 운동이기도 했지만 남성의 운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자 남성은 부르주아 여성보다 더 일관된 페미니스트였다.” 제1차세계대전 전까지 독일과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 문제를 국제적 정치 의제로 삼았다. 세계 여성의 날 제정에 영향을 준 뉴욕 파업은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투쟁 중 하나였다. 이 투쟁을 이끈 인물은 젊은 유대인 사회주의자인 클라라 렘릭이었다. 파업에 참여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폭력배들에게 구타당하고, 경찰에 체포되고, 성적 모욕을 당하고, 살을 에는 추위에 떠는 등 고통받았다. 이 모든 것에 맞서 싸우며 그들이 발휘한 용기는 오늘날에도 깊은 영감을 준다.
p 300~301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과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을 연결해야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우리는 목격해 왔다. 지난 세기에 이룩한 모든 성과는 사람들이 조직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큰 희생을 치렀기에 성취할 수 있었다. 여성이 교육을 받고, ‘남자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낙태와 피임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직장에서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이 모두 그렇게 이뤄진 것이다. 변혁을 이룰 열쇠는 여성과 남성이 참여하는 많은 운동과 대안적 전망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성해방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또한 여성은 역사의 관망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일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