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하마스의 무장 저항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이스라엘의 폭력에 맞서는 기습 공격을 시작한 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맹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인종 청소, 추방, 살인을 통해 ‘국가’를 수립한 이래 인종 분리 정책을 펴고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해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영국∙프랑스 등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에 항공모함을 급파했고 신속한 무기 지원과 파병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저항에 대한 연대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주변국인 이집트와 요르단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고무된 사람들이 연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한국인·팔레스타인인·아랍인이 참가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서는 이번 팔레스타인 저항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이러저러한 질문이 생기고 고민이 드는 분이 있을 듯합니다. 그런 독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만한 4종의 책을 추천합니다.
01 이스라엘과 시온주의의 진실은?
유대인 사회주의자 존 로즈가 쓴 이 책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탈의 역사를 살펴보며 시온주의자들의 이스라엘 국가 옹호 주장들이 거짓임을 하나하나 속 시원히 밝혀냅니다. 예컨대,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당했으니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하는데요. 이 책에서 알려 주는 진실은 충격적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피해 고향을 떠난 유대인 난민들이 팔레스타인으로 향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려고 시온주의 지도자들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정부들에게 유대인 난민을 받아 주지 말도록 설득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미국 같은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편들고 지원하는 것을 단순히 유대인 세력의 로비 때문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책은 이런 시각이 상황을 거꾸로 보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동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통제하려고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도왔고 지금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 책의 원서 부제는 “미국의 중동 경비견”입니다).
02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스라엘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강탈하기 시작한 이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들에 맞선 위대한 투쟁을 거듭 벌였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적당히 영역을 나눠 서로의 국가와 영토를 존중하고 평화를 지키기로 약속하면 되는 것일까요? 강대국들을 설득해 이스라엘에 양보하라고 압력을 넣을 수는 없을까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만으로 해방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다른 아랍 국가(특히 이란 같은 나라)의 정부들과 손잡아야 할까요? 이 책은 팔레스타인 저항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이런 질문들에 답합니다.
이른바 ‘아랍 세계’가 계급적 차이와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때문에 하나의 동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뼈아픈 현실을 알려 주고, 오히려 아랍 지배자들과의 연대는 혼란과 배신만 낳을 뿐 아랍 노동계급과 연대하는 것이 더 현실적 방안임을 2011년 아랍 혁명의 경험을 들어 설득력 있게 주장합니다(2011년 아랍 혁명을 불러일으킨 요인 하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수수방관하고 협조하는 자국 지배자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03 이슬람주의=파시즘?
한국의 일부 자유주의 언론은 하마스가 네타냐후와 “적대적 공생 관계”에 있는 “극단 세력”이거나 심지어 “극우 파시즘”이라고 봅니다. 이는 이슬람주의의 성격에 대한 혼란을 보여 줍니다.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좌파가 이런 혼란을 겪어 왔습니다.
2009년 작고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이 책에서 이슬람주의가 정확히 무엇이고 전통주의와는 어떻게 다르며 그 핵심 계급 기반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또 이슬람주의의 강점과 약점(모순)이 무엇인지 탁월하게 분석합니다.
예컨대, “전통주의적 이슬람은 자본주의 발전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사회 질서의 영속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인 반면, 이슬람주의는 “낡은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말합니다. 이슬람주의를 파시즘으로 보는 좌파들은 “이슬람주의 운동들이 중동 전역에서 자본의 이해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좌파는 이슬람주의가 “심각한 사회 위기의 산물”임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자체의 모순 때문에 그 위기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04 민간인 공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억압과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지지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라는 오래된 물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내놓는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 모순이 없는 사회라면 당연히 속임수와 폭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회로 가는 다리를 놓으려면 혁명적 수단, 즉 폭력적 수단 말고는 방도가 없다. 혁명 자체가 계급사회의 산물이고 어쩔 수 없이 계급사회의 특징을 지닌다. ‘영원한 진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혁명은 당연히 ‘윤리와 대립’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주의적 윤리가 반혁명적이라는 사실, 즉 착취자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뜻할 뿐이다. … 역사는 미국의 내전인 남북전쟁에서 남부의 잔인성과 북부의 잔인성에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한편에는 교활함과 폭력으로 노예에게 사슬을 채우려는 노예주가 있고, 한편에는 교활함과 폭력으로 사슬을 깨뜨리려는 노예가 있다. 이 한심하고 무능력한 자들은 윤리의 법정에서는 둘 다 마찬가지라고 말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