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윤석열이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일으킨 친위 군사 쿠데타가 실패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7~8쪽, 74쪽 일시적 일탈일 뿐 사회적 평화가 재개될 것인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운좋게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알코올의존자의 즉흥적 도발(일탈)이 아니었다. … 윤석열은 미·중 갈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 지속되는 경제 침체 등 한국 지배계급이 처한 복합 위기의 책임을 정치적 반대파에 전가하려 했다. 그들을 “일거에 척결”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윤석열은 극우를 대표했다. …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군사 쿠데타 이전의 정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 앞으로의 한 시기는 위태로우면서도 (위기는 또한 기회이므로) 희망을 키울 수도 있는 한 시기가 될 것이다.
16쪽 대통령 집무실 국방부 이전의 의미
지난 수년간 미·중 갈등이 자아내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불안정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의 불안정, 세계적 공급망 혼란 등이 더해져 안보와 경제 위기가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실을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것은 심상치 않다.
27~28쪽 윤석열 쿠데타를 재촉한 국제적 요인
윤석열 외교에 대한 비판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윤석열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대학가에서 쏟아져 나온 퇴진 시국선언 중 상당수가 남북 긴장 고조, 대일 ‘굴욕’ 외교,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시도 등 윤석열의 “외교 참사”를 비판했다. 이를 알기에 윤석열 정부도 점점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왔다. “종북 반국가 세력”과의 일전을 수시로 언급하면서 말이다. 지정학적 불안정 심화를 배경으로 국내에서는 정치적 양극화가 커져 온 것이다.
35쪽 쿠데타 실패의 진짜 요인
쿠데타 세력은 군사적·기술적 측면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했을지 몰라도 정치적 측면, 특히 대중 저항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날 단호했고 대담했다. 그들의 행동이 그날 밤 계엄군을 “중과부적”(김용현이 한 말) 상태로 몰아넣은 것이다.
41쪽 위험천만했던 국지전 도발 기도
한국 지배자들의 다수는 미·중 패권 대결에서 (중국과 척질 수 없어 난처해 하면서도) 미국 편에 서는 것이 근본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중국에 더 강경한 정책을 예고하는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이런 인식이 더 커졌다. 윤석열은 바로 이런 흐름을 이용해 국지전을 도발할 기회를 찾으려 한 것이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미국·일본 등 동맹국들에게서 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구하기 수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국제적 대결 구도 때문에 국지전이 빠르게 통제를 벗어날 위험도 있었다. 실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벌이려 한 것이다.
122~126쪽 “내란 청산”과 “국민 통합”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개혁 염원 지지자들과 ‘중도층’(실은 보수 유권자) 모두를 잡고 싶어 한다. 2025년 2월 10일 국회 연설에서 이재명은 “내란 세력과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면서도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 그러나 실은 이런 행동은 지배계급을 설득하는 효과는 없고, 대신 서민 지지층에는 혼란을 조장하고 사기 저하를 낳는다. … 지배계급에 잘 보이려는 책략을 써서라도 집권을 해야만 개혁이 가능하다는 전략은 오히려 목적 달성을 위해 스스로 우경화한다. … 윤석열 반대 운동은 민주당으로부터 (함께 싸우더라도)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158, 160쪽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관인가?
1987년 개헌 때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헌재를 민주주의 친화적 기관이라 말할 수 없다. 애초 헌법재판 제도는, 삼권분립이라는 미명하에 선출된 의회의 입법권을 선출되지 않는 권력자들이 견제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 헌법재판소를 믿지 말아야 한다. 대중의 염원을 거슬렀을 때 더 큰 반격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을 줘야만 친민주주의 대중이 원하는 결정을 강요할 수 있다.
171~172쪽 맞불 집회의 필요성
극우는 각 대학에서 탄핵 반대 선언도 기도했다. 대학생들의 여론조차 반으로 갈라진 듯 여론을 호도하려는 술책이었다. 청년 세대와 학내 여론이 압도적으로 군사 쿠데타 미수와 윤석열에 부정적인 흐름 속에서 공개적 입장 발표를 조직해, 장차 대학에서 극우 학생 운동을 키울 초기 재료들을 발굴하고 훈련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맞불 집회를 열어 여론 조작을 막고 초기 극우 인자들의 자신감을 약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연세대, 서울대에서 시작한 맞불 집회는 전국의 대학에서 벌어졌고, 극우의 학내 진출에 대항하는 보편적 전술이 됐다. 만만찮은 반격에 직면하자 극우 유튜버들은 폭력적 본성을 드러냈다. 이를 들춰낸 것은 대학 맞불 집회 운동의 중요한 소득이었다.
204~206쪽 제21대 대선 결과가 보여 준 것
윤석열의 쿠데타 미수와 파면으로 인해 치러진 대선에서 “내란 세력 심판”을 앞세운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당선했다. 이재명 후보는 계엄 해제와 윤석열 탄핵 운동에 앞장섰다. 이재명이 많은 득표 차로 당선한 것은 이번 대선을 좌우한 핵심 쟁점이 쿠데타 응징 염원이었음을 반영한다. … 그럼에도 거리 극우와 윤석열, 국힘 사이에서 아교 같은 구실을 한 인물이 1400만 명이 넘는 지지를 받은 것은 불길한 일이다. 국힘이 극우를 끌어들이며 그 자신이 극우적이 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선거로 극우를 한두 차례 이길 수 있어도 그 세력을 약화시킬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번 대선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극우의 성장 가능성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266~267쪽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유럽에서도 일찍부터 자본가들은 왕, 귀족, 군 장성 등과 거래를 해서 민주주의를 기피하려고 애썼다. 거기서도 19세기 후반부에 선거권이 확대된 데에는 노동계급 조직들(대부분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 1864년부터 1870년대 초반까지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활약한 제1인터내셔널과 1871년 파리 노동자들이 건국한 파리코뮌이 민주주의의 돌파구를 열었다. 그리고 여성 전체가 선거권을 얻은 최초 나라는 1917년 노동자 혁명이 성공한 러시아였다.
293~294쪽 민중전선, 막다른 길
민중전선은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의 연립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IMF 공황 이후 민주당의 최신 역사를 보든 1960년대 이후 미국 민주당의 역사를 보든 또 2000년대 유럽의 사회적 자유주의 정당, 즉 신자유주의를 실행한 사회당과 노동당의 경험을 보든 좌파가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는 정책은 모조리 실패했다. 자유주의와 좌파는 마치 서로 반대로 나아가려는 말들과 같아서 그 말들이 이끄는 마차는 마비되거나 자유주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민중전선의 실패는 필연적이다.
313쪽 내란 세력을 어떻게 뿌리 뽑을 것인가?
이재명 정부는 자신이 표방한 제일 과업인 “내란 세력” 청산을 하지 못하고 대중의 증오를 한몸에 받는 몇몇 권력자들과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처벌하는 데에 그칠 것이다. 쿠데타 세력의 제대로 된 청산은 노동계급 투쟁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몫이다. … 민주적 권리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쟁취되고 보호된다. 결코 위에서 하사되는 선물이 아니다. 보통선거권, 결사의 자유, 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고도로 고양됐을 때 확보됐다. 투쟁이 후퇴하면 국가는 민주적 권리를 쉽게 약화시킨다.
336쪽 극우 부상의 요인들
극우 부상의 요인들로는 경제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결합돼 있다. 첫째, 2008년 세계경제 공황 이후 지속돼 온 저성장과 장기적인 경제 침체 상황에서 주류 정당들은 노동자 등 서민들의 생계, 임금, 복지를 공격해 왔다. 부자 과세가 아니라 서민 희생 정책을 편 것이다. 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불만이 쌓이게 됐고 극우는 이를 파고들었다. … 극우 부상의 둘째 요인은 “극우의 주류화”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극우의 주류화”는 주류 정치에 극우가 미치는 영향이 급속히 커졌다는 뜻이다. 지금 국힘은 극우의 요구와 주장을 공식 정치의 언어로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극우의 견해가 순식간에 주류 우파의 견해로 격상됐다.
375~376쪽 왜 극우는 혐중 부추기나?
미국 제국주의 지지가 혐중의 핵심 요소다. … 점증하는 경쟁 속에서 미·중 간의 충돌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 “한반도는 그런 충돌의 한 경로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흔히 한반도는 대만,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과 함께 이런 충돌의 방아쇠, 도화선, 인화점으로 불린다.” 극우는 미국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의 전통적 우파의 기본 입장을 이어받으면서도 트럼프의 영향을 받아 더 극단적으로 중국 반대를 선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