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품절)

김하영 지음 2002-09-01 408쪽 13,000원 신국판 9788989056096 03300 책벌레

서해교전, 탈북자, 북한의 시장 개혁 조치, 북미 대화 재개 등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는 남북 문제를 접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지명한 ‘악의 축’ 중 하나인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한반도는 불안정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긴장 국면과 화해 국면을 오락가락한다. 예를 들면, 2002년 6월 말 서해교전이 터진 후 급격히 냉각된 남북 관계는 북한의 유감 표명을 계기로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다시 대화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북한 관련 문제만큼 중요한 쟁점도 드물 것이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한반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인 전쟁 위협 때문이다. 둘째, 지난 10년 넘게 지속돼 온 북한의 심각한 경제 붕괴 상황과 이로 인한 정치․사회 불안정 등의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남한 정치와의 관련이라는 측면에서도 북한 관련 쟁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반도의 평화와 위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본문 중에서

새로운 좌파

이 두 관점[북한을 악마로 만드는 관점과 북한을 대안 사회로 보는 관점]과 다른 새로운 관점이 옛 소련의 붕괴 이후 지금까지 좌파 내에서 꾸준히 자라 왔다. 우파와 옛 좌파 모두 남이냐 북이냐 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새로운 좌파는 남도 북도 대안이 못 됨을 알고 있다. 내 관점도 새로운 좌파와 출발점을 공유한다. 하지만 새 좌파의 일부는 계급의 핵심적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나의 관점은 남북한 모두에서 뚜렷이 형성된 계급 분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은 계급 분할도 갈등도 없는 획일체여서 내부 균열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시각은 북한 사회를 북한 관료가 보여 주는 방식으로만 피상적으로 보고 있다. 북한에 존재하는 여러 억압 기구들 ― 억압 법률, 감옥, 주민 통제 등 ― 자체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두 사회 집단의 존재를 반증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는, 똑같이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진 사회일 뿐이다.(7~8쪽)

국제주의 시각

많은 사람들은 정상회담의 성사와 그것이 거둘 성과가 남북 정상들의 손에 달려 있는 양 생각한다. 김대중 대북 정책의 성과라거나 북한 ‘자주 외교’의 성과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더 시야를 넓혀 북미 관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정상회담 국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미 관계도 미국과 북한 둘만의 관계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다.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정치․경제 상황과 열강들 사이의 세력 관계가 더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냉전 해체 이후 제국주의 세계 질서는 열강들 간의 다극화된 경제적․군사적 경쟁을 특징으로 한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최후의 승자처럼 보였지만, 다른 서방 국가들이 소련이라는 외적 때문에 미국의 지도를 따라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압력에서 벗어나자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전쟁 벌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90년대 이래 벌어진 전쟁들(걸프전, 발칸전쟁 등)은 대부분 ‘세계 깡패’인 미국이 자신의 지위를 일본, 독일, 다른 강대국들에 확인시키기 위해 ‘지역 깡패’를 손보는 방식을 취했다. 1991년의 걸프전은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해야 함을 다른 열강들에게 일깨운 전쟁이었고, 발칸전쟁(1999년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은 유럽 연합이 자기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문제조차 미국에 의존해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잠재적으로 동아시아판 이라크 또는 동아시아판 유고슬라비아다. 미국이 북한을 동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뜻이다. 1994년에 미국이 북한에 전쟁 위협을 가한 것도, 1998년에 금창리 핵시설과 미사일을 빌미로 압박을 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지위를 재천명하고자 했던 것이다.(168~169쪽)

새로운 역사적 해석

강정구 교수말고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소련이 미국과 달리 군정 통치를 하지 않았다고 칭송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소련이 형식상 25군 사령부와는 별도로 민정(Civil Administration)을 두긴 했지만, 내용상 그것은 군정과 다를 바 없었다. 민정은 소련 제25군 편제에 속한 군사회의의 산하기구였다. 소련 제25군 군사회의는 연해주 군관구 군사회의(슈티코프)의 지휘를 직접 받았다. 민정의 우두머리였던 로마넨코 자신이 소련 제25군의 부사령관이었던 것만 봐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민정 사령관 로마넨코의 지위는 25군 사령관 치스챠코프보다 낮았고, 슈티코프와 치스챠코프를 넘어 점령 정책을 좌우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더욱이 지방 차원에서는 인민위원회가 민정도 거치지 않고 25군 사령부 직속 위수사령부의 통제를 직접 따르도록 돼 있었다. 위수사령부는 북한 전역에 총 133개가 설치돼 있었는데 소련군은 총 89개의 군단위뿐 아니라 커다란 공장이 있는 도시나 산업 시설 등에도 독자적인 위수사령부를 두어 이를 통제했다.

5도 행정10국과 지방 인민위원회들은 인사권이나 명령권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 강원도 철원군 인민위원회가 국내 은행 조직을 개편하고 상업은행 행장을 경질하자, 소련군 사령관은 ‘명령 제10호’를 내려 인민위원회가 은행 인사와 은행 업무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인민위원회는 소련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결재 도장을 찍어 주는 행정 대리인으로 급락했다. 평남인민위원회 재정부장 김병연은 소련군 재정고문의 명령에 따라 “도내 은행의 총예금액 중 그 반분인 3천만 엔을 도재정의 파탄을 초래할 줄 뻔히 알면서도” 소련군 사령부 비용으로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군이 양곡 공출을 각도별로 할당했을 때도 각도 인민위원회는 “아무런 불평과 반대를 표명하지 못했다.” “지방인민위원회의 권력 기반이 인민대중”이었다는 일각의 평가와는 달리 실질적인 권력은 소련군에게 있었다.(20쪽)

북한 국가자본주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규정적 특징으로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노동력의 분리 그리고 노동자가 살기 위해서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품으로 노동력의 전화다. 다른 하나는 잉여가치의 축적, 즉 자본들 간의 경쟁적 투쟁이 자본에 강제하는 생산에 대한 잉여가치의 재투자다. 1946년부터 1950년 사이에 있었던 두 차례의 1개년계획과 한 차례의 2개년계획 동안 북한에서 위 두 가지는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자에 관해 말하자면, 북한 관료는 “전인민적 소유”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했고 생산의 계획과 분배에 아무 관여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의미한 바대로의 ‘자유’ 노동자들이었다. 첫째, 그들은 다른 어떤 개인이나 국가에 속박돼 있거나 소유돼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률적으로 자유로웠다. 둘째, 그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거나 또는 그것에 속박돼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노동자들이 국유기업에 고용돼 생산한 가치 가운데 일부(겨우 먹고 살 만큼)만이 임금으로 지불됐고 나머지는 국가가 전유했다. 노동자들은 집합적으로 국가에 의해 착취당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국가가 결정했지만, 노동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산업에 따라, 기능에 따라, 직장에 따라, 숙련 정도에 따라, 위험도에 따라 서로 달랐다. 인민위원회 내각결정 196호는 노동자의 임금을 질에 따라 8등급으로 나눈다고 결정했다. 또, 표준생산량을 돌파한 노동자들에게 누진적 비율로 상여금을 지불하는 도급제 임금을 실시했기 때문에 임금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성과급의 일종인 도급제는 노동자들을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몰아붙이고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노동자들을 원자화시키고 서로 분열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329~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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