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환상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Bonfire of Illusions : The Twin Crises of the Liberal World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 천경록 옮김 2010-08-05 240쪽 13,000원 신국판 변형 9788979660760 03300 책갈피 예스24 선정 2010년 50개 출판사 편집장들이 뽑은 ‘기억할 만한 올해의 책’

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석학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2008년의 극적인 두 사건으로 드러난 세계의 변화를 다루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첫째는 8월의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이다. 이 사건으로 냉전 종식 후의 세계 질서가 갑자기 허물어졌다. 이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었는가, 신냉전의 시작을 알렸는가? 제국주의 강대국 간 전쟁 가능성은 현실화할 것인가? 중국과 미국의 복잡한 상호 의존과 갈등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둘째는 9월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다. 이 사건으로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입증되고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완전히 사라지고 케인스주의가 다시 경제학의 정설이 될 것인가? 국민국가와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고 세계화 추세는 후퇴할 것인가? 경제는 다시 성장하기 시작할 것인가, 더블딥에 빠질 것인가? 이번 경제 위기를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위기로 봐야 하는가,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로 봐야 하는가? 경제 위기의 대안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두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별개의 사건인가, 서로 연관된 사태 전개의 필연적 결과인가? 이 책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본문 중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의 분명한 약화, 심지어 종말은 첫째 에피소드만큼이나 둘째 에피소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폭락하자 유럽의 주요 정치인들은 재빨리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우위가 급격히 약화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자유방임은 끝났다. 시장은 전능하고 항상 옳다는 생각도 끝났다.” 독일 재무장관 페어 슈타인브뤼크는 독일 국회에서 훨씬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미국은 세계 금융계의 수퍼파워 지위를 상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경제 위기로 미국이 약해졌다는 생각(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처지에서는 두려움)은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퍼져 있었다. 예컨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부 차관을 지낸 로저 올트먼의 반응을 보자(물론 그는 총체적 파멸에서 [벗어나려고] 유럽연합과 제휴하려 한다).

2008년의 금융·경제 폭락은 75년 만에 닥친 최악의 위기이고 미국과 유럽에게는 중대한 지정학적 좌절이다. 앞으로 몇 달이나 몇 년 동안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는 국제적으로 이렇다 할 구실을 할 수 있는 수단이나 경제적 신뢰를 모두 잃을 것이다. 이런 약점은 언젠가는 극복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세계의 무게중심이 미국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증대할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금융 폭락 자체가 그 지정학적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실,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은 미국의 권력이 쇠퇴하는 훨씬 더 장기적인 지정학적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인 반면,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그 여파는 훨씬 더 두드러진 전환점이었다. 2006~2007년 미국 주택시장의 투기 거품 붕괴(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그 후의 신용 경색에서 시작된 사태가 전면적인 세계 경제·금융 위기로 발전해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세계 총생산량이 감소했다. 비록 1930년대 대공황만큼 심각하고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수 있지만, 현재의 위기를 보면 1930년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파국의 규모가 훨씬 더 두드러진 이유는 2000년대 중반의 신용 호황이 떠받친 자본주의 번영기 직후에 파국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었고 머지않아 총리가 되는 고든 브라운은 마지막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할 때 경제도 강력하고 정부 재정도 튼실하다고 자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과거의 호황-불황 순환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닥치고 나서 몇 달 후인 그해 10월에도 IMF는 2000년대 호황이 1950년대와 1960년대 장기 호황기의 전후 자본주의 황금시대보다 더 낫다고 평가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생산량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급속히 증가했다. 그러나 1960년대와 비교해도 현재의 성장 수준과 기간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다시 말해, 과거보다 더 많은 나라들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대다수 나라와 지역에서 생산의 변동성도 1960년대보다 상당히 완화됐다.

18개월이 채 안 돼 IMF의 논조는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의 세계 경제·금융 위기와 1930년대 대공황 사이의 “유사성을 걱정”했다. 사르코지와 슈타인브뤼크의 반응에서 드러나듯이, 위기의 책임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규제 완화, 자유 시장 일변도의 자유 자본주의 버전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위기의 원인이 어느 정도나 체제 탓인지,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 자체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살펴보게 된다.

금융화의 파급력

 

이 세 번째 의미의 금융화를 논하는 맥락에서, 현대 금융시장에서 대량으로 거래되는 신용 파생상품을 살펴보는 것도 적절할 듯하다. 파생상품은 그 화폐가치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다른 자산에서 파생한 금융상품이다. 즉, 원래는 가격 변동에 따른 잠재적 손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예컨대, 경제주체들이 미래의 어느 날짜에 특정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옵션을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렇다. 신용 파생상품은 크게 확장됐다. CDO가 한 사례다. 또 다른 사례인 CDS는 채무자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인데, 이 CDS도 금융 위기 심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조지 소로스는 2008년 9월 부시 정부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하기로 결정한 것이 “기존 시장 질서를 뒤흔드는 재앙적 결과를 낳은 사건”이 되고 만 이유 하나는 그 때문에 CDS 가격이 급등했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거대 보험회사인 AIG를 인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AIG는 CDS를 막을 돈이 부족했고 그래서 이미 CDS 시장에서 한 구실 때문에 입은 손실에 더해 막대한 추가 손실에 직면했고 결국 파산 위기로 몰렸다). 보험회사가 난해한 금융상품과 얽힌 것 때문에 자멸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금융화의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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