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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불평등, 재앙 마르크스주의적 대안

장호종, 마틴 엠슨 외 지음 2021-10-29 624쪽 24,000원 신국판 9788979662153 책갈피

인류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중단할 수 있는 객관적 능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체제(자본주의)와 그 수호자들이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필요한 체제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고민하고 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내놓는 엉터리 해법과 눈속임을 들춰내고, 세계 진보 진영이 내놓는 그린뉴딜 등의 대책에 어떤 의의와 난점이 있는지 살펴보며, 기후 운동 내부의 쟁점들(탈성장, 채식, 과잉인구론)을 들여다본다. 특히, 이 책은 노동계급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동계급이 기후 위기로 가장 큰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데서도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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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첫 문장

2000년대의 어느 해에 인류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진입한 듯하다.

 

p 451~452 엉터리 해법들

빌 게이츠는 자신이 “집도 크고 심지어 개인 전용기까지 가지고 있[지만] … 2020년 나는 지속 가능한 제트연료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2021년 우리 가족이 비행을 하면서 내뿜는 탄소를 완전히 상쇄할 것”이라고 한다. 그 ‘상쇄’는 “공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업에 투자를 함으로써” 이뤄질 것이고 “대기권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에 나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기 중 탄소를 직접 제거하는 기술은 여전히 효율이 극도로 나빠서, 그 기계를 돌리는 데 사용되는 전기를 생산하느라 배출한 온실가스 양만큼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빌 게이츠가 투자한 일부 기업들이 있지만 정부 보조금 외에는 수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개발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하기 어렵다.

 

p 260 그린뉴딜의 의의와 난점

그린뉴딜은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한 빠르고 실질적인 대규모 조처들이 필요하고 동시에 평범한 노동계급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된 아이디어다. 단체나 사람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선도하는 그린뉴딜 아이디어는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에 대한 도전을 보여 주고 있다. 전시에 준하는 규모의 투자와 집중이 이뤄진다면 현존하는 기술로도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그런 과감한 그린뉴딜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는 점이다.

 

p 306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적잖은 환경 단체 활동가들은 세금 인상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유류세 인상을 기후변화를 막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보고 노동자들에게 이를 수용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2018년 말부터 이듬해 초 유류세 인상에 반대해 거리에 나선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을 노동자들이 환경 정책의 반대자로 나선 사례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이나 세금 인상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엉뚱한 책임 전가일 뿐이다. 당시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긴축(재정지출 삭감) 정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할인 제도 일부를 폐지하려 했다. 사실상 임금 보조금 일부를 삭감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을 고립시키려고 유류세 인상이 지구환경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다.

그러나 운동이 효과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이런 위선이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일부 노동자들과 좌파들, 사회주의자들은 노란조끼 운동과 기후 저항, 노동조합 운동을 연결하려고 애썼다. 노동자들에게 대가를 떠넘기지 말고 “부자들이 생태적 전환에 필요한 돈을 내게 하라”면서 말이다. 두 투쟁이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의 “같은 논리”, “같은 투쟁”이라는 구호가 시위대에서 인기를 끌었다.

 

p 411~412 성장과 탈성장

생태사회주의 정치의 주요 청중과 시금석은 전 세계와 특히 개발도상국에 사는 노동계급과 피차별 대중이어야 한다. 왜일까? 이들이, 오직 이들만이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진정한 체제 변화를 이끌어 낼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문제에서 탈성장이라는 개념과 구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든, 영국 리버풀에서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든, 남아공 소웨토에서든 애초에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탈성장을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실업과 빈곤, 더 극심한 대중의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로는 대중운동을 건설할 수 없다. 오히려 노동계급을 운동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 탈성장 주장은 ‘정의로운 전환’ 요구를 완전히 허물어뜨릴 것이다.

 

p 418~419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채식을 해야 할까?

우리가 채식을 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화석연료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채식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편함과 비용을 감내하는 일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는커녕 한 지역의 축산업에도 거의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지만 육류 소비량과 화석연료 소비량은 계속 늘고 있다. … 자본주의 체제와 그 체제의 논리에 맞선 대중 저항을 건설하는 것만이 기후 위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면 채식을 대안으로 삼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효과적 수단도 불가피한 선택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는 운동의 초점을, 진정한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와 그 지배자들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식생활로 향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면 바꿔야 할 것은 자본주의 체제와 권력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이 된다. 이는 저항의 힘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사회 변화에 필요한 잠재력을 가진 노동계급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p 157~158 자본주의와 생물 다양성, 인류세

인류는 생물권에 끼치는 고유한 영향력을 자신의 사회형태를 통해 결정한다. 즉 인류는 생물 다양성이 그에 맞춰 적응해야만 하는 조건들을 좋게든 나쁘게든 설정하는 위치에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찰나에 가까운 시간인 불과 50만 년 만에 인류는 서식지를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던 동물에서 주변의 생태를 의식적으로 변형하거나 자연에서 ‘확보’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전 자본주의 사회들도 그런 목적을 위해서 자연을 변형하고 사회 재생산을 수행했지만 (그 사회들 나름의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그런 활동이 자기 문화권 바깥의 생태계에 미칠 영향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자본주의는 자연과의 신진대사 균열을 초래한 동시에 생물권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사회형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자연을 전반적으로 해칠 것을 알면서도 그 방향으로 자연을 변형하는 최초의 사회형태이기도 하다. 이윤과 특권 유지라는 지배계급의 목표를 좇느라 말이다. 이 점이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특징이고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이제 명백하다. 자본주의는 인류세를 막다른 골목으로 맹렬하게 끌고 가고 있고 자본주의가 지속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 해악은, 꺼져 가는 희망 속에서 사회 재생산을 시도하게 될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삶을 악몽처럼 짓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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