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거리는 정말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축제의 장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누구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 사람들이 거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는 사이에도, 어떤 이는 내게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무바라크가 물러난 것은 기쁘고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말이었다. …
무바라크를 끝장낸 결정적 계기는 조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개입한 것이었다. 주류 언론은 이 점을 대개 간과한다. …
지배계급이 투쟁 없이는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줬으므로, 더 많은 싸움이 앞으로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이 지닌 힘을 충분히 맛봤다. 그 사람들이 무바라크를 쓰러뜨렸다. 그들은 불가능한 것을 성취했다. 이제 그들이 못 해낼 것이 더는 없다.
― “세계를 뒤흔든 18일”
나일강 유역의 거대 섬유공장에서는 여성 노동자 수만 명이 일한다. 이들은 초저임금을 받고 산다. … 이 여성 노동자들은 2007년 연이어 일어난 파업과 점거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제 그들은 공정한 임금을 요구한다.
연이은 파업으로 혁명 과정이 강화되고 있다. 대중의 반란은 국가의 물리적 통제를 무너뜨렸다. 이제 자본의 지배 자체가 도전 받고 있다. 이 파업들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이집트 혁명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이집트 혁명은 압제자를 단순히 쫓아내는 것을 뛰어넘어 압제적인 체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 “노동자 파업이 혁명을 강화하고 자본 권력을 위협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각종 의료·교육 시설 같은 사회복지망을 구축했다. 이런 시설은 많은 이집트인들에게 도움이 됐다. 1992년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국가는 수수방관했지만 무슬림형제단의 사회복지 시설들은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
다른 많은 이슬람주의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무슬림형제단도 모순에 빠져 있다. 기층 단원들은 정권의 혹심한 폭압에 고통을 겪었지만, 지도자들은 권력을 조금이라도 나눠 갖기를 갈망한다. 그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지만, 기층 활동가들의 다수는 급진적 변화를 염원한다.
― “무슬림형제단 ― 저항과 타협 사이의 진퇴양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는 대중의 어마어마한 불만이 폭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안전밸브로서 선거가 도입됐다. 그 의도는 이를테면 남한의 독재 정권이 1987~88년에 대중 시위와 파업에 직면해 대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남한의 독재 정권은 재야 세력 가운데 온건한 친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탄압을 완화했고(그러나 더 급진적인 세력은 계속 탄압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했다. …
1980년대 말 한국의 ‘아페르투라’는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완전고용이 달성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즉, 지배계급이 정치적 압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큰 폭의 임금 인상 같은 양보를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주요 중동 국가들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
미국이 어느 정도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현지 부르주아지로서, 여기에는 아직 남아 있는 국유 산업을 관리하는 국가 부르주아지도 포함된다. … 민족 부르주아지가 세계 체제의 지배자들에게 혁명적 도전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심지어 1960년대에도 이른바 ‘진보적’인 아랍 국가들의 지배계급은 말로는 대서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아랍 세계를 제국주의에 맞서 단결시키겠다면서도 실제로는 자국 내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지위를 보존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아랍 부르주아지가 자동으로 미국의 장단에 맞춰 춤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적 위계질서 내에서 각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길 원하며, 이를 위해 때때로 제국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분열을 이용할 것이다.
― “이집트의 민주화 이행?”
1980~90년대에 독립 좌파 조직들은 대부분 정치적 이슬람에 대해 이집트 공산당과 비슷한 태도를 견지했다. … 전통 스탈린주의 좌파 대다수는 이슬람주의를 대하는 이런 태도 때문에 때론 공공연하게 때론 암묵적으로 이집트의 세속적 인텔리겐치아와 손잡았고, 심지어 무바라크 정권과도 제휴했다. …
1980년대 말부터는 트로츠키주의에 영향받은 소규모 학생 서클들이 학습 목적으로 결성됐고, 이들이 1995년에는 ‘혁명적 사회주의자 단체’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스탈린주의 좌파와 대조적으로 이들은 학내외에서 배포하는 인쇄물에 “때로는 이슬람주의자들과 같은 편에 서지만 결코 국가와는 한 편에 서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실천에서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가령 보안경찰이 이슬람주의자의 학생회 선거 출마를 불허하거나 이슬람주의자가 학교에서 제적당하거나 할 때 무슬림형제단의 민주주의 요구를 지지하는 것이다. … 그러나 그와 동시에 트로츠키주의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와 여성의 권리, 콥트파 기독교도 문제 등에 관해서는 무슬림형제단과 논쟁을 서슴지 않았다.
― “무슬림형제단과 좌파”
이슬람과 이슬람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슬람은 기독교·불교처럼 10억 명이 넘는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입니다. 반면,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 근거한 정치 신념입니다. …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슬람주의자입니다. 근본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 부흥주의자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근본주의는 현대 세계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일종의 전통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이슬람주의 운동에 이런 요소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된 성격은 아닙니다. 그들의 부흥주의는 국가와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것을 뜻할 수 있는, 일종의 쇄신입니다. 이것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무장 투쟁에서 핵심적 구실을 하는 이유입니다. …
다양한 이슬람주의 운동의 기저에 있는 사회 세력들을 보면 그들이 결코 동일하거나 동질적인 운동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진실은, 이슬람주의 운동의 계급적 기반, 즉 교육받은 중간계급들, 프티부르주아는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흡수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회 변화를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이슬람주의, 세속주의, 사회주의”
정부는 아래로부터의 반란 때문에 분열했다. 그 분기점은 이제껏 지배 기구의 일부였던 튀니지노동총연맹(UCTT)이 돌연 시위에 합류하고, 내무부를 봉쇄하고, 총파업을 호소하면서부터였다. 기성 권력 구조를 보호하려면 벤 알리가 희생되는 수밖에 없었다. …
튀니지 혁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혁명은 미국의 네오콘이 부추긴 친서방 ‘색깔’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 튀니지에서 당장은 정치 혁명이 기로에 서 있다. 여전히 거리를 메우는 시위대는 벤 알리를 몰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대표하던 정치 체제 전체를 거부하는 변화를 요구한다. … 튀니지가 연속혁명의 과정에 들어설 것인가를 당장 판단한다면 속단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노동총연맹이 핵심적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벤 알리와 협력해 온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그 어떤 혁명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옛 정부를 철저하게 몰아내는 과정에서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아래로부터의 세력들이 등장할 수 있다.
― “튀니지 – 혁명의 패턴”
연속혁명론은 노동자들이 민주화 투쟁, 토지개혁 투쟁, 반제국주의 투쟁을 주도한다면 노동자들이 그 투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맞선 도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만약 좀더 발달하고 노동자들의 수가 훨씬 많은 다른 나라로 이 혁명이 확산된다면, 이 혁명은 ‘연속적’이 되는 것이다. …
나세르와 다른 아랍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혁명의 폭을 제한하려 했다. 구체제를 무너뜨린 원동력인 노동자들은 “아랍 민족의 단결”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전략의 희생자가 됐다.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대중의 힘이 필요했지만, 중동의 노동자들이 생산을 통제하고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속혁명 과정이 발전할 기회를 가로막았다. …
서구 열강들은 1950~60년대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제국주의에 협력한 중동 정권들은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줄줄이 무너졌다.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아랍 정권에 맞선 투쟁이 결합되면 중동에서 연속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아랍 노동자들이 그런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랍 정권들과 서방의 동맹국들은 그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 “중동, 눈앞에 다가온 혁명”
사회 기층민들이 더는 지금처럼 못 살겠다며 민중 항쟁을 일으키고 사회 상층도 기존 지배 방식대로 지배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이 도래하면 사람들은 사회의 미래를 놓고 대안을, 해결책을 (혁명이나 파시즘 같은 극단적인 것을 포함해) 모색하게 된다. 20세기 전반부의 자본주의는 대규모 전쟁과 경제 위기로 점철되면서 이러한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21세기 초의 자본주의도 세계화가 빚어내는 혼돈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새 라틴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등지에서 일어난 혁명들은 앞으로 수십년 새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
단순한 정치 혁명이 사회 혁명 상황, 즉 온전한 의미에서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하려면 아래로부터 민중 권력이 등장해야 한다. 파리코뮌 때의 코뮌, 러시아 혁명 때의 소비에트 등이 그것이다. …
이런 기층 민중 권력과 기존 국가 권력은 한동안 병존한다. 이를 두고 “이중(이원) 권력”이라 한다.
이원 권력 상황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조만간 한쪽이 살려면 한쪽이 죽어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도래하게 마련이다. 이 때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고전적 문제가 더욱 첨예해진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자율주의식 문제 회피는 운동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이 때 혁명적 정당의 구실이 사활적이다.
― “21세기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