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상황에 대한 트로츠키의 예측과 실제 상황을 비교하면서 시작했다. 그런 다음 대다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트로츠키의 자구에만 집착해 트로츠키의 정신에서 완전히 빗나갔다고 설명했다. 트로츠키가 살아 있었다면 “용의 이빨을 뿌렸지만 벼룩을 얻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만델과 파블로와 그 밖의 주요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어리석지도 않고 매우 진지했는데도 그렇게 행동하고 환상의 세계에서 살았을까? 그 이유는 나치와 스탈린이 지배한 암울한 반동기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오랫동안 고립돼 노동계급과 절연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막을 헤매며 물을 찾다 보니 환각 상태에서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의 핵심적 가르침에 충실하고 제2차세계대전 후의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주의경향은 세 가지 이론을 발전시켰다. 즉, 소련 스탈린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해 소련이 오랫동안 안정을 누리다가 결국 몰락한 것을 해명하고, 서방 자본주의가 상시 군비 경제 덕분에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지만 장차 위기의 씨앗을 품게 됐다는 것을 해명하고, 빗나간 연속혁명론으로 마오쩌둥과 카스트로의 승리를 해명했다. ……
국가자본주의, 상시 군비 경제, 빗나간 연속혁명이라는 세 가지 이론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상황 변화를 파악하는 데서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이 이론들은 전체적으로는 트로츠키주의의 올바름을 확인해 주면서도 부분적으로는 트로츠키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언제나 존속돼야 하는 동시에 변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세 이론이 처음부터 하나의 총체로서 인식되거나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각각 지구상의 세 지역, 즉 소련과 동유럽, 선진 자본주의 공업국들, 제3세계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발전 상황을 오랫동안 탐구한 결과였다. 탐구 과정은 계속 서로 넘나들었다. 그러나 탐구 과정이 끝날 때에야 비로소 여러 탐구 영역 사이의 상호 관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야만 정상에 이르는 여러 등산로가 한눈에 보이듯이, 이렇게 유리한 위치에서 볼 때 분석은 하나로 종합돼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엄청난 불균등성이 세계를 분열시킨다는 것과 함께 세계의 경제구조, 사회·정치에서 일어난 실질적 변화를 이해하면, 혁명가들이 변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