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
전 세계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미국의 이라크 공격 반대 시위는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행동을 별로 혐오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제국주의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21세기 초에 제국주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지난 250여 년에 걸친 자본주의 발전의 정점, 즉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가 제국주의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체제 전체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수익성 있는 원료나 투자를 강탈하는 것, 또는 미국 지배계급의 한 부분인 군산복합체의 이윤 증대 노력이 제국주의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는 것은 특정 정치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낡은 관행으로, 체제 전체의 동역학과 모순되는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래서 아주 영향력 있는 책 ≪제국≫의 공저자인 마이클 하트는 “미국은 옛 유럽의 모델을 따라 세계 규모로 빠르게 제국주의 열강이 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전 세계의 산업계 지도자들은 제국주의가 세계적 흐름을 방해하는 장벽을 만들므로 사업에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재빨리 덧붙인다. 그리고 이라크 공격 직전, 프랑스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의 지도자이며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인물이기도 한 베르나르 카상은 “전쟁이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B-52 폭격기와 특수부대들 때문에 브라질의 빈곤과 아르헨티나의 기아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 그리고 가장 위험한 ― 국가가 감행한 최근 공격에 항의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견해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서 여전히 중요하다. 만약 제국주의가 더 넓은 체제의 동역학과는 동떨어진 일련의 국가 행위라면, 국가에 대한 개혁 압력을 통해 평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전쟁 드라이브를 체제의 더 광범한 경향 ― 체제 옹호자들이 말하는 ‘자유무역’이든 아니면 반대자들이 말하는 ‘제국’이든 간에 ― 과 반대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제국주의가 체제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다면,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제국주의와 오늘날의 미국 경제
미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이 분명해진 것은 신보수주의자들이 백악관에 자리를 잡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초의 불황에서 회복돼 1990년대 말까지 약 40퍼센트 성장했으며, 1997년 아시아에서 시작돼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휩쓴 불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1999년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들은 호황과 불황의 순환이 끝났음을 뜻하는 ‘신경제 패러다임’에 대해 얘기하면서, 사실상 상시적 불황 상태였던 일본 경제나 느리게 성장하고 있었던 독일 경제를 미국 경제와 대비시켰다.
그러나 9·11 몇 달 전에 거품이 갑자기 꺼졌고 미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이 최대 50퍼센트까지 과장돼 있었음을 깨달았다. 핵심 문제는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의존 증대였다. 국제수지 적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주요 산업들(특히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진보를 이루긴 했지만, 미국이 전에 누렸던 압도적 경쟁력 우위를 회복해 주지는 못했다. 종업원 1인당 자본 지출과 노동시간당 생산성은 실제로 프랑스나 독일보다 낮았다. 노동자 1인당 생산성만 여전히 더 높았는데, 그 이유는 노동시간이 25퍼센트 이상 더 길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내 경제는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금에 의존했는데, 1999년에 이 금액은 연간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총 누적액은 2조 5000억 달러나 됐다.
2001년에 마침내 불황이 찾아오고 주가가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해 과거 수준의 거의 절반까지 떨어졌을 때도 미국으로 해외 자금 유입은 계속되고 있었다. …… 그러나 미국 경제를 절망적인 궁지로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급격한 반전의 위험은 상존하고 있었다. 25년 동안 점차 증가한 금융·투자·무역·생산의 국제적 이동 때문에 미국 자본주의는 미국 국경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취약해졌다. 미국의 거대 다국적기업들에게 필요한 정책은 미국 국가의 권력이 그런 사건들을 다루는 것이었다. 신보수주의 ‘음모 집단’의 새로운 제국주의는 그것을 제공하려 했다.
그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었다. 2002년 미국의 군비 지출 3960억 달러는 유럽·일본·러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약 5000억 달러나 되는 연간 해외 유입 자금보다는 꽤 적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가 썼듯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국방비보다 50퍼센트 더 많다. …… 나머지 세계가 미국 권력의 사용 대가를 간접으로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가장 큰 원천은 아시아로, 약 40퍼센트를 차지한다(그중 절반은 일본에서 유입된다). 그 다음은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이다(그중 절반 미만이 유로권에서 유입된다). 자신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의 투자가들과, 정도는 좀 덜 하지만 유럽의 투자가들도 사실상 미국이 세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위는 이 불안한 시대에 동아시아와 다른 곳의 투자가들에게 미국이 ‘안전한’ 투자처로 보이게 만들고, 그들이 자국 정부로 하여금 거액의 달러(또는 달러 표시 채권)를 보유하도록 부추기고, 그래서 미국 기업들과 소비자들이 나머지 세계로부터 더 많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한 요인이었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가 어쨌든 당분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선순환이었다.
신보수주의자들의 정책은 그 순환을 훨씬 더 이롭게 만들고자 군사적 차원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군비 증강과 부유층 세금 감면은 미국을 불황에서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20년 전 레이건의 ‘군사적 케인스주의’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군사력 증강은 미국 기업들에 이로운 정책들을 나머지 세계가 수용하게 만들 것이다. 즉, 소프트웨어와 제약 회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특허와 ‘지적재산권’에 관한 미국의 법규, 미국의 이익에 적합한 국제 유가 조정, 국제 무기 거래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지배력 지속, 미국 제품에 대한 해외 시장 개방 등을 수용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미국 우주사령부 문서 “비전 2020”은 미국의 군사적 노력을 “몇 세기 전 각국이 자신들의 상업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해군을 건설한 방식”에 비유했다.
무역 이익이라는 것만으로는 미국 지배계급 전체에게 군비 증강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지배계급의 소수파는 설득할지 몰라도 말이다. 1991년 미국 기업들의 총 해외 소득은 겨우 2810억 달러로, 군사 예산보다 약 1000억 원 더 적은 규모였다. 여기에다 9000억 달러 수출에서 얻는 이윤을 더한다 하더라도 그 총액이 거의 4000억 달러에 이르는 군비 지출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을 뿐 아니라 향후 몇 년 동안 상당히 더 늘어날 금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군비 지출 증대로 경기가 회복되고, 군수軍需 경기 덕분에 컴퓨터·소프트웨어·항공 산업의 기술 진보를 위한 재원財源이 마련된다면, 그리고 다른 지배계급들에게 미국의 정책을 강요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 수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압도적 힘을 과시해, 이 모든 것의 대가를 미국으로 유입되는 훨씬 더 거액의 투자 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 전략은 다른 열강들이 갖고 있지 못한 미국의 한 가지 강점인 군사력을 이용하면 시장 경쟁에서 잃고 있는 과거의 주도권을 보상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 군사력의 진정한 수준을 과시함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런 전략에 딱 들어맞았다. ……
따라서 전쟁은 여러 해 동안 상대적으로 쇠퇴한 경제력을 군사력 사용으로 보상한다는 더 넓은 전략의 일부였다. 그 목적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강화해 다른 나라들이 IMF, 세계은행, WTO 무역 협상에서 미국의 정책들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군비 수준이 초래한 적자를 나머지 세계 지배계급들이 메우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면 그것이 또한 정말로 도박이었던 이유를 부각하는 셈이다.
다른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확립하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의존한다는 논리는 남들에게 없는 나만의 강점인 군사력이 중요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전쟁’ 시나리오인데, ‘테러’와 ‘불량국가’들에 맞선 투쟁 얘기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미국은 자신의 패권에 대한 도전 일체에 응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일지라도 그러지 않으면 전 세계에 미국의 약점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 결국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논리가 이라크 전쟁을 강요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라크에서 거둔 군사적 성공의 논리 때문에 오늘은 이란·시리아·북한을 위협하고 내일은 아마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위협할 것이며,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중국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도박은 핵심 문제, 즉 미국으로 유입되는 해외 자금에 의존하는 것에서 비롯하는 대규모 불안정의 가능성을 없앨 수 없다.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에서 자금을 철수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한 달러 가치 하락 때문에 다른 투자자들이 외관상 더 안전한 투자처로 자금을 이동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본주의를 열렬하게 옹호하는 마틴 울프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군사적 문제들에서 미국은 일방주의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다자주의적이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 괴로운 사실을 잘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한편, 미국이 이라크를 정복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럽이나 일본이나 중국이 IMF나 WTO에서 미국에 굴복할 것인지는 결코 확실치 않다.
‘음모 집단’은 그들에 앞서 미국의 정책을 이끌었던 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은 미국 자본의 세계 지배 필요성과, 군사적 수단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의 어려움 사이에 끼어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