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증법적 논리학의 중요성
‘논리학’(Logic; 첫 글자를 대문자로)으로 이해됨과 동시에 현대 유물론의 인식론으로 이해되는 변증법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제는 오늘날 특히 중요하다. 레닌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삶과 과학적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뚜렷한 변증법적 특징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이 과학적 인식과 실천적 활동의 방법일 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탐구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실험 결과와 사실 자료를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 논리학의 역사를 고찰해야 하는 이유
어떤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그 문제에 대해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역사적인 접근방법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오늘날 소위 논리학이라는 학문 내에는 논리학의 영역을 상당히 다르게 이해하는 이론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론들은 저마다 논리적 사고의 발전과정에서 유일한 현대적 단계라고 주장하고, 단순히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논리학의 역사를 고찰해야만 한다.
• 스피노자의 유산
사유를 속성으로 정의함으로써 스피노자는 기계적 유물론의 대표자들보다 훨씬 뛰어났고, 적어도 200년을 앞서갔다. … 스피노자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물론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사고하는 생물체라면 모두 돌이나 그 밖의 ‘사고하지 않는 물체’의 형태로 연장돼 있으면서도 사고한다는 점이다. … 헤르더, 괴테, 라메트리, 마르크스, 플레하노프 등 모든 위대한 스피노자주의자들은 물론 초기 셸링조차도 스피노자를 이렇게 이해했다. …
이것은 나중에 레닌이 수용했던 일반적인 방법론적 입장이다. 레닌은 감각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성질, 즉 반영의 성질을 바로 물질의 토대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레닌에 따르면, 사고는 물질과의 관계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보편적 성질 혹은 속성이 최고로 발전된 형태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물질의 가장 중요한 속성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스피노자의 표현처럼 물질 자체를 ‘불완전하게’ 생각하거나 혹은 엥겔스나 레닌이 지적한 것처럼 물질을 일방적이고 기계적으로 잘못 이해하게 될 것이다.
• 헤겔을 넘어선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어떤 철학체계든 그것의 약점이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약점이나 결함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는 헤겔과 관련해서 이 점을 분명히 이해했고, 그럼으로써 헤겔은 물론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 선 유물론자 포이어바흐보다도 논리학의 문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헤겔의 역사적 공헌은 물론 역사적으로 제약된 그의 학문적 발전의 한계도 동시에 보여 줬다. 다시 말해 헤겔의 변증법이 건널 수 없는 분명한 경계와 변증법의 창조자가 아무리 애써도 극복할 수 없는 환상의 힘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 헤겔은 매우 정직하고 일관된 관념론자였으며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그 밖의 모든 관념론의 비밀을 폭로했던 인물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헤겔은 존재, 즉 사고 외부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자연과 역사의 세계가 논리학을 증명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봤으며, 나아가서 존재가 논리학의 동일한 도식이나 범주를 되풀이해서 확증하는 ‘사례들’의 고갈되지 않는 저장소라고 봤던 것이다. 청년 마르크스가 표현했듯이, ‘논리의 사상事象’은 헤겔이 들어가지 못하게 ‘사상의 논리’에 울타리를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 유물론 대 관념론, 기계적 유물론 대 변증법적 유물론
철학사에서 관념적인 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결국 유물론과 관념론이라고 하는 양극으로 귀착된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은 관념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유심론적 입장이나 이원론적 입장을 정당하게 거부했으나, 관념적인 것을 한 물체가 다른 물체 속에 반영된 상, 즉 유기적으로 조직된 물질의 속성 내지 기능으로 이해했다. 관념적인 것의 본성에 관한 이런 유물론의 보편적 견해는 데모크리토스–스피노자–디드로–포이어바흐로 이어지는 일련의 유물론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구체화됐으나 유물론 사상의 본질을 이루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이루게 된다.
마르크스 이전 유물론의 취약점은 프랑스 유물론자들(특히 카바니와 라메트리) 사이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났고, 그리고 그 뒤에 포이어바흐와 19세기 중엽의 소위 속류유물론(뷔히너·포크트·몰레스홋 등)에서 독자적 형태로 발전했다. 그 취약점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비역사적이고 인간학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입장에 묶여 있었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관념적인 것을 두뇌의 물질적·신경생리학적 구조 및 그 기능과 동일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낡은 유물론은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했으나 유물론을 역사에까지 적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인간이 지닌 온갖 특성이 외적 세계와 함께 자기자신을 변형시키는 인간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 철학은 세계관의 “살아 있는 영혼”이다
과학 전체가 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과제를 홀로 떠맡고 있는 세계관인 체하는 ‘순수’철학과 꼭 마찬가지로, 철학∙논리학∙인식론을 포괄하지 않는 과학적 세계관이란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은 세계관의 발전에 관한 논리학, 또는 레닌의 표현처럼 세계관의 ‘살아 있는 영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