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종교, 이데올로기
이슬람주의의 계급적 기반
사회 운동으로서의 급진 이슬람
이슬람주의의 모순: 이집트
이슬람주의의 모순: 알제리
분열
이란의 경험
이슬람주의의 모순들: 수단
결론
후주
이집트에서 친미 독재자 무바라크가 몰락하고 무슬림형제단이 유력한 대안 세력 중 하나로 부상하자 서방 제국주의 정부들은 1978~79년 이란 혁명의 악몽을 떠올리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009년 작고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이 책에서 이슬람주의가 정확히 무엇이고 전통주의와는 어떻게 다르며 그 핵심 계급 기반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또 이집트, 알제리 이란의 사례를 되짚으며 이슬람주의의 강점과 약점(모순)이 무엇인지 탁월하게 분석한다. 결론에서는 세속적 좌파가 적용할 만한 행동 규칙(“가끔 이슬람주의자들과 함께할 수는 있지만 국가와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을 제시한다.
이슬람, 종교, 이데올로기
이슬람주의의 계급적 기반
사회 운동으로서의 급진 이슬람
이슬람주의의 모순: 이집트
이슬람주의의 모순: 알제리
분열
이란의 경험
이슬람주의의 모순들: 수단
결론
후주
이집트에서 친미 독재자 무바라크가 몰락하고 무슬림형제단이 유력한 대안 세력 중 하나로 부상하자 서방 제국주의 정부들은 1978~79년 이란 혁명의 악몽을 떠올리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란 혁명 당시 이슬람주의의 성장을 보며 충격을 받은 것은 단지 우파와 자유주의 지식인들만이 아니었다. 좌파도 혼란에 빠져 양극단의 잘못을 저지르곤 했다.
한 극단은 이슬람주의를 반동의 화신, 파시즘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 완전히 적대하는 태도였다. 그 결과 대중의 정당한 반제국주의 정서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이슬람주의에 대항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동맹해야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반대편 극단은 이슬람주의를 모종의 진보주의로 여겨 거의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태도였다. 이런 혼란 때문에 중동의 대부분 지역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그럭저럭 좌파를 제압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2009년 작고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의 1994년작 ≪이슬람주의, 계급, 혁명≫은 이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모두 비판하며 대안적 접근법을 제시한다.
특히 이슬람주의가 정확히 무엇이고 전통주의와는 어떻게 다르며 그 핵심 계급 기반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또 이집트, 알제리 이란의 사례를 되짚으며 이슬람주의의 강점과 약점(모순)이 무엇인지 탁월하게 분석한다. 결론에서는 세속적 좌파가 적용할 만한 행동 규칙(“가끔 이슬람주의자들과 함께할 수는 있지만 국가와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을 제시한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태도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동과 전 세계의 좌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프랑스 국가가 소녀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자 일부 프랑스 좌파들은 그 조치를 지지했는데, 이것은 반전운동의 분열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약화로 이어졌다. 반대로 지난해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일부 좌파들(대표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아마디네자드 정부가 ‘반제국주의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오히려 시위대를 비난했다. 크리스 하먼의 이 작은 책은 이러한 혼란을 겪지 않게 도와줄 훌륭한 방향타가 될 것이다.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좌파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였고, 그 전 20여 년 동안 좌파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의 편집자로 일했다. 2009년 카이로에서 이집트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최한 포럼에 연사로 참가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대학생 단체들의 2009년 대학생 추천도서 50선에 꼽힌 ≪민중의 세계사≫(책갈피)를 비롯해 ≪21세기의 혁명≫(책갈피),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공저), ≪오늘의 세계경제: 위기와 전망≫(갈무리), ≪패배한 혁명: 1918~1923년 독일≫(풀무질) 등 10여 권이 있다. 미국의 유명 록밴드 RATM이 2집 앨범 <악의 제국Evil Empire> 재킷에서 ≪세계를 뒤흔든 1968≫(책갈피)을 포함한 크리스 하먼의 책들을 추천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했고,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레닌 평전 2·3≫(책갈피),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책갈피), ≪세계를 뒤흔든 1968≫(책갈피) 등 1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이슬람주의의 성장 때문에 혼란에 빠진 것은 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었다. 좌파도 그랬다. 좌파는 반(反)계몽주의적 교의처럼 보인 것 ― 전통적으로 반동적이던 세력의 후원을 받으며 일부 최빈곤층 사이에서도 성공을 거둔 ― 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나타났다.
첫째는 이슬람주의를 반동의 화신, 일종의 파시즘으로 보는 태도였다. 예컨대, 이란 혁명 직후 좌파 학자 프레드 핼리데이가 그런 태도를 취했다. 그는 이란 정권을 일컬어 “파시스트의 얼굴을 한 이슬람”이라고 말했다. 1981∼82년에 호메이니 정권의 기반이 공고해진 뒤에 많은 이란 좌파도 그런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오늘날 이집트와 알제리의 좌파도 대부분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알제리의 어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직은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원칙과 이데올로기, 정치적 행동이 “프랑스의 국민전선(FN)과 비슷하다”며 FIS를 “파시스트 경향”이라고 주장했다. …
이와 반대되는 태도는 이슬람주의 운동을 피억압자들의 ‘진보적’·‘반제국주의적’ 운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1979년 혁명 초기 국면에서 이란 좌파 대다수가 이런 태도를 취했다. 당시 소련의 영향을 받던 투데당, 게릴라 조직 페다인의 대다수, 그리고 좌파 이슬람주의 세력인 인민 무자헤딘 모두 호메이니 세력을 ‘진보적 프티부르주아지’라고 봤다. 이런 태도의 결론은 호메이니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보다 25년 전에 이집트의 공산주의자들은 잠시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똑같은 태도를 취하면서 “나세르의 ‘파시스트 독재’와 그의 ‘영-미 후원자들’에 맞서는 공동 투쟁”에 동참하라고 무슬림형제단에 호소했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태도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들은 현대 이슬람주의의 계급적 성격이나 이슬람주의와 자본·국가·제국주의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슬람주의의 옹호자들과 반대자들 모두 이슬람주의가 현대 세계를 거부하는 전통주의적 교의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신화적 과거를 재현하려는 염원은 기존 사회의 유지가 아니라 개조와 관계가 있다. 더욱이 그런 개조의 목표가 7세기 이슬람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슬람주의자들이 기존 사회의 특징을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들은 현대 산업과 현대 기술, 그리고 그런 산업과 기술의 토대인 과학을 받아들인다. 사실, 그들은 기독교보다 더 합리적이고 덜 미신적인 교의인 이슬람이 현대 과학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부흥주의자들’은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대적 전통과 현대적 사회 생활 양식들을 결합하려 하는 것이다. …
전통주의적 이슬람은 자본주의 발전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사회 질서의 영속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다. 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장려하는 것처럼, 옛 지배계급이 현대적 자본가들로 변모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런 사회 질서로의 복귀를 주창하는 이데올로기다. 반면에, 이슬람주의는 일부 똑같은 주제들에 호소하기는 하지만 낡은 방식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다.
부흥주의적·정치적 이슬람을 지탱하는 결정적 요소 ― 그 교의를 전파하고 그 적들과의 대결에서 부상·투옥·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는 핵심 활동가들 ― 는 ‘전통적’ 착취 계급들도 아니고 가난한 대중도 아니다.
전통적 착취 계급들은 본래 보수적 세력이다. 그들은 ― 특히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 남들이 싸움에 나설 수 있도록 돈을 낼 각오가 돼 있다. 그들은 1970년대 초 알제리에서 토지 개혁이 실시됐을 때, 1980년 봄 시리아의 바트당 정권이 도시 상인들의 이익을 침해했을 때, 그리고 이란에서 바자[시장]의 상인들과 기업인들이 1976∼78년 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때와 1979∼81년 좌파로부터 위협을 느꼈을 때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사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래서 그들은 알제리와 이집트 같은 사회들을 해체하고, 시리아에서 하마 시 전체가 반란을 일으키게 만들고, 레바논에서 미군과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하고, 이란 혁명을 이란 부르주아지 전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세력이 결코 될 수 없었다.
사실, 그런 세력은 [전통적 착취 계급들과] 사뭇 다른 네 번째 계층 ― 제3세계 전역에서 자본주의적 현대화 때문에 등장한 신중간계급 부문 ― 출신이다.
급진 이슬람주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프티부르주아지는 항상 두 방향으로 이끌린다. 기존 사회에 대항하는 급진적 반란으로 나갈 수도 있고 그 사회와의 타협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슬람주의는 항상 이슬람 공동체의 완전한 부활을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것과 이슬람 ‘개혁’을 강요하기 위해 타협하는 것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이런 모순들은 이슬람주의 집단들 내부의 충돌과 집단들 간의 충돌 ― 매우 격렬하고 흔히 폭력적인 ― 에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이슬람주의는 반동적 획일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제1차 걸프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서로 대립했을 때 이슬람주의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점이다. 알제리의 FIS로 하여금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원자들과 단절하게 만들거나 제2차 걸프전 당시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로 하여금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지원을 받는 사원들에서 이라크 지지 시위를 조직하게 만든 주장들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이슬람주의 군대들끼리 격렬한 무장 충돌을 벌였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조직 내부에서는 이슬람 법률을 시행하는 대가로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 따라서 간접적으로 이스라엘 ― 와 타협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개혁주의적’ 이슬람이 세계 체제에 통합된 기존 국가들과 거래하기 시작하면 그런 태도의 차이는 반드시 불거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들 국가는 서로 자기들끼리 경쟁하고, 각각의 국가는 저마다 가장 유력한 제국주의들과 나름대로 거래하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차이들은 노동자 투쟁이 고양될 때마다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슬람주의 조직들을 재정 지원하는 사람들은 노동자 투쟁을 분쇄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중단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급진적 이슬람주의 청년들 가운데 일부는 노동자 투쟁을 본능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이슬람주의 조직의 지도자들은 진퇴양난에 처할 것이고, 고용주들과 노동자들 모두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 때문에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은 권력에 근접할 때마다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180도 바꾸곤 한다. 그들은 ‘이슬람의’ 가치들과 ‘서구의’ 가치들을 대비시킨다. 그러나 이른바 서구의 가치들은 무슨 신화적 유럽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난 200여 년간의 자본주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