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
머리말
PART 1 변화하는 가족
01 자본주의와 가족
02 오늘날의 가족
03 가족 이론
PART 2 여성과 노동
04 성별 분업
05 여성과 산업예비군
06 여성과 노동조합
PART 3 해방을 위한 투쟁
07 여성, 노동당, 선거권
08 1960년대 후반의 여성운동
09 여성운동의 쇠퇴
10 좌파와 여성운동
11 여성해방을 위한 계급투쟁
후주
찾아보기
단체·기구 약어
20세기를 지나면서 여성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급속한 공업화가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 여성의 80퍼센트가 대학에 간다.
그러나 여성해방은 아직 요원하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25~50퍼센트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여성 노동자의 94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 최근의 이랜드-뉴코아 파업도 열악한 노동 환경과 해고에 처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전 세계 도시 여성 열 명 중 한 명이 살면서 성 매매 경험을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여전히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린다. 한국은 여전히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압도적(91.4퍼센트)이고, 국공립 보육 시설이 전체의 6.7퍼센트밖에 안 된다. 영국도 복지 제도가 후퇴해 자녀 양육비의 93퍼센트를 부모가 떠맡는다.
게다가 언제나 더 날씬하고 더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한국 여성의 68퍼센트는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며, 74.5퍼센트가 성형수술을 고민한다. 정상 체중 여성의 83퍼센트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이러한 여성 억압은 사라지지 않을까?
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
머리말
PART 1 변화하는 가족
01 자본주의와 가족
02 오늘날의 가족
03 가족 이론
PART 2 여성과 노동
04 성별 분업
05 여성과 산업예비군
06 여성과 노동조합
PART 3 해방을 위한 투쟁
07 여성, 노동당, 선거권
08 1960년대 후반의 여성운동
09 여성운동의 쇠퇴
10 좌파와 여성운동
11 여성해방을 위한 계급투쟁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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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기구 약어
20세기를 지나면서 여성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급속한 공업화가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 여성의 80퍼센트가 대학에 간다.
그러나 여성해방은 아직 요원하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25~50퍼센트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여성 노동자의 94퍼센트가 비정규직이다. 최근의 이랜드-뉴코아 파업도 열악한 노동 환경과 해고에 처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전 세계 도시 여성 열 명 중 한 명이 살면서 성 매매 경험을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여전히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린다. 한국은 여전히 여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압도적(91.4퍼센트)이고, 국공립 보육 시설이 전체의 6.7퍼센트밖에 안 된다. 영국도 복지 제도가 후퇴해 자녀 양육비의 93퍼센트를 부모가 떠맡는다.
게다가 언제나 더 날씬하고 더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한국 여성의 68퍼센트는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며, 74.5퍼센트가 성형수술을 고민한다. 정상 체중 여성의 83퍼센트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이러한 여성 억압은 사라지지 않을까?
영국의 급진 좌파 정당 ‘리스펙트’(RESPECT)의 런던 시장 후보이자 전쟁저지연합 사무총장인 린지 저먼이 여성 억압이 어디에서 비롯했으며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남성이 가정에서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물질적 이득을 얻는가? 여성들은 해방을 위해 어떻게 싸워 왔고 어떤 한계에 부딪혔는가? 가부장제 이론의 약점은 무엇인가? 사회주의가 되면 여성 억압은 사라지는가?
먼저, 이 책을 읽다보면 책이 쓰인 1980년대 여성들의 상황이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린지 저먼은 풍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여성 운동의 역사와 이론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성인참정권이냐 여성참정권이냐를 둘러싼 논쟁과 같은 당시의 논쟁들도 흥미롭게 다룬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여성 관련 책 거의 대부분이 페미니즘 관점인 반면, 이 책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여성 문제를 분석한다. 저자도 얘기하고 있듯이, 약 20여 년 전에 쓰인 이 책의 “이론적 견해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 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에 여성의 삶이 더 악화하고 있는 지금, 린지 저먼의 이 책은 여성해방을 위한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이전에 ≪성, 계급, 사회주의≫(책갈피)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더 충실한 번역과 정확한 용어, 그리고 친절한 설명과 찾아보기를 덧붙여 ≪여성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됐다.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백만 명이 참가한 2003년 반전 시위를 조직한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의 사무총장이다.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뿐 아니라,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4년 영국 급진좌파 정당 ‘리스펙트(RESPECT)’의 런던 시장 후보였으며, 2005년에는 런던 웨스트햄에서 같은 당의 총선 후보로 출마해 19.5%를 득표, 보수당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 있을 런던 시장 선거에 ‘리스펙트’ 후보로 출마하며, 평범한 런던 시민들을 위한 급진 의제 “다른 런던”(The Other London)을 제출할 예정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이기도 하며, 2004년까지 20년 동안 월간 ≪소셜리스트 리뷰≫(Socialist Review)의 편집자였다.
린지 저먼은 “가부장제 이론”(Theories of Patriarchy)이라는 글을 비롯해 여성 문제에 관한 수많은 글들을 급진 좌파 저널에 기고해 왔다. 최근에는 ≪물질적 여자들 : 여성, 남성, 그리고 노동≫(Material Girls : Women, Men and Work)을 저술했다.
한국에 번역된 저서로는 ≪여성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공저, 시대의 창)이 있으며, 그 밖의 저서로는 편집을 맡은 ≪발칸 : 민족주의와 제국주의≫(The Balkans : Nationalism and Imperialism), 앤드류 머레이와 공동 편집한 ≪전쟁을 멈춰라 : 영국의 가장 큰 대중 운동 이야기≫(Stop the War : The story of Britain’s biggest mass movement) 등이 있다.
저자의 블로그는 http://www.stopwar.org.uk/lindsey/이며, 지난 7월 중순 한국에 처음으로 방문해 진보포럼 ‘맑시즘2007’에서 강연을 했다. 매 강연마다 약 6백여 명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억압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의 핵심은 계급사회의 존재다. 엥겔스의 저작은 계급사회의 발전과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를 명쾌하게 연결한다. 그의 책 제목≪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일단 사회가 부의 잉여를 생산하면, 그 잉여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잉여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잉여 생산과 계급사회의 등장은 관련이 있다. 계급사회에서는 부를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넘겨주기 위해 가족 안에서 일부일처라는 성의 관계가 필요해졌다. 지배계급의 등장과 함께, 지배자들의 부와 권력을 보호하는 국가가 발전했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엥겔스의 이러한 분석에 엄청난 중상모략을 퍼붓는데, 이들이 엥겔스의 분석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정확한 인류학적 증거에 바탕을 뒀다는 것이었다. 일부 증거들이 틀렸음이 입증됐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최근의 많은 인류학 연구들이 엥겔스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서 뒷받침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기본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엥겔스가 1백 년 전에 이룬 성과는 남성 지배가 언제나 규범이었다는 ―또는 많은 사회에서 전형적이었다는―신화를 타파한 것이었다. 그는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종속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초기 사회들―그가 “원시 공산주의”라고 부른―을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펼쳤는데, 그 사회들에서는 여성이라는 것이 필연적 오점이나 열세가 전혀 아니었다. 그 사회들에서 두 성 사이의 초기 분업이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업은 사회에서 한 가지 종류의 노동이 다른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에 기초를 두지 않았다. 따라서 거기에는 여성 억압의 물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다양한 여러 사회들에서 여성의 지위가 매우 높았다는 증거가 있다.
엥겔스, 그리고 마르크스의 주장은 비교적 간명했다. 여성 억압이 없는 사회들이 존재했고, 여성 억압의 발전은 계급사회의 등장·존속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계급사회를 끝장낼 때만 여성 억압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333~335쪽)
고용주와 노동자는 서로 다른 이유로 가족임금에 매력을 느꼈다. 노동계급에게 가족임금의 매력은 특히 여성들이 집 밖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산업 노동자들이 삶에서 느끼는 괴로운 측면들 일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임금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적절히 돌볼 수 있게 할 것이고, 동시에 아이들이 임금노동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어린이의 상해와 조기 사망 같은 온갖 참상들은 이론적으로는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59~60쪽)
그러나 가족임금이 단지 노동계급에만 매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임금은 점차 부르주아지의 생각과 많은 부분 맞아떨어졌다. 초기 자본가들은 값싸고 유연한 노동으로서 여성과 아이들을 고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만족했고, 심지어 거기에 급급했다. 자본주의의 이 국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본축적이 계속되면서 영국 산업에서 월등한 위치에 있던 방직업이 쇠퇴했다. 중장비 기계가 지배적인 산업이 발전해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하게 됐다. 기계를 조작하기 위해 더 많은 훈련이 필요했고, 이것은 다시 더 좋은 교육을 받은 건강한 노동력을 요구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훈련에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숙련 노동자를 완전히 소모품인 양 다루고 다섯 살짜리 아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노동계급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점차 지배계급에게 중요해졌다.
요컨대, 노동력에 더 많은 재정적·이데올로기적 투자를 해야 했다. 이것은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부르주아 가족을 본뜬 노동계급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지원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여기에는 적어도 가족임금 사상에 대한 형식적인 지지도 포함돼 있었다.
이렇듯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가부장적 의견 일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그 동기는 계급에 따라 달랐다. 노동계급 남성과 여성의 경우 가족임금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절실한 희망에서 나왔다. 가족 안의 남성과 여성 모두 가족임금을 꼭 억압적인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사실 그 당시에는 여성이 집 밖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고된 노동을 하는 현실이 가장 억압적으로 여겨졌다.……(63~64쪽)
가족임금 요구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생겨났고, 동시에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단으로 여겨졌다. 가족임금은 결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계급 가족의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가족임금은 매우 불충분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여성이 생계를 위해 남성에게 의존해야 하고, 여성보다 남성에게 일할 권리가 더 많다는 것을 함축했다. 따라서 여성에게 가족임금제는 일보후퇴였다. 보호 입법과 마찬가지로 가족임금은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65쪽)
흔히 남성의 이익이라는 문제는 단순히 권력 문제로 환원된다. 간단히 말해서, 이 주장은 남성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자본가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착취당하고 소외되고 짓밟히지만 적어도 집에서는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괴롭히거나 때로는 신체적으로 학대할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 경우에도, 그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으로 가정을 지배한다.
그러나 전체로서 노동계급은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이용할 권리가 없고, 따라서 재산 소유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실질적인 신분 상승에 접근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유일한 가치는 노동력을 팔 수 있는 능력뿐이다. 일단 이 능력이 나이나 질병이나 노동력 과잉 때문에 더는 존재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심지어 노동할 때 얻을 수 있는 몇 조각의 빵 부스러기조차 얻을 수 없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나이 많은 백인 남성들이 정점에 있는 위계적인 피라미드 형태라고 얘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부유하고 나이 많은 백인 남성들뿐이라는 점에서는 이러한 그림이 다른 설명들보다 더 그릇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너무 늙어서 노동력을 판매할 수 없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아무 가치도 없다고 평가하는데,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더는 돈을 벌고 쓸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가부장제 가족의 가장인 노인들이 흔히 가족 안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봉건 사회와 분명히 대조된다. 반대로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특징은 노동계급에게 권력이 없는 것이다.
가족 안에서 전권을 가진 지배적인 인물이라는 남성상은 사실 노동계급 남성이 보이는 모습에 대한 전형적인 ‘앤디 캡’식 사고방식을 수용한 것이다. 그 사고방식은 가족 안에서 노동계급 여성의 구실을 폄훼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전적으로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라고 암시한다. 물론 이러한 신화적인 정형에 들어맞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가족들에서는 여성이 가족의 재정을 관리하고, 또 어떤 가족들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행복하게 같이 산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족은 각각의 가족 구성원들끼리의 싸움터가 된다.
가족 안의 사회화에서 여성이 흔히 매우 후진적인 구실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족이 가부장적 음모라는 생각은 금세 떨쳐버릴 수 있다. 여성들만이 성 역할과 젠더 규정을 강요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사실이 아니다. 많은 경우 여성들은 억압적인 성 역할을 가장 심하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딸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순순히 따르라고 강요할 때처럼 말이다.(122~124쪽)
남성의 이익에 대한 주장은 분명 가부장제 이론을 강화하고 두 개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투쟁 영역을 단정한다. 이는 또 좌파들 사이에서 매우 지배적인 또 다른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가정 내부의 불평등한 상황을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뒤집거나 양성이 수행하는 가사 노동의 양을 동등하게 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124쪽)
평등한 가사 분담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주장은 흔히 이상주의적이다. 그 전략이 개별 여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왜 누군가가 따분하고 반복적인 힘든 집안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가사 분담은 근본적 사회구조에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공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남성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오랜 시간 일하도록 사회가 구조화돼 있다면, 가정에서 여성의 임무를 바꾸는 일은 가사 분담보다 훨씬 더 심대한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작업장의 노동 형태가 가정의 분업을 강화한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초과근무를 훨씬 많이 하고 (특히 여성들에게 어린아이가 있을 때 그러한데,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일하러 더 멀리까지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간계급 남성들―초과근무를 하지 않고도 적당한 소득을 벌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들―이 보육을 분담하기 훨씬 더 쉬운 이유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셸 배렛과 메어리 매킨토쉬가 ≪반사회적 가족≫에서 표명한 것과 같은 일종의 편협한 개량주의로 빠지게 된다.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억압적인 관계를 피해 순수한 페미니스트식 삶을 살아야 하고, 따라서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이나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가는 것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24~125쪽)
마르크스주의 시각에 따르면, 가부장제 이론에는 두 가지 주요한 약점이 있다. 이 이론은 관념론으로서, 물질적 현실에 뿌리를 둔 사상이 아니다. 또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위의 두 가지 문제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예로 초기 가부장제 이론가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의 가정은 가부장제가 언제 어디에나 역사를 초월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계급적 분석을 공공연히 반대한다.……이들은 여성 억압이 생물학적 차이(이것은 여성이 그들의 재생산 기능에 대한 통제권을 얻어 낼 때까지는 극복할 수 없다) 때문이라거나 단지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여성운동이 벌어진 이래로 급진 페미니즘이나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근거가 됐다. 최근에는 온갖 종류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도 이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이면서 더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지나치게 미화됐다. 결정적으로 이 주장들은 분리라는 생각을 계속 담고 있었다. 즉, 경제투쟁과 관계없는 자율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개념과, 자본주의와 별개인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유지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적대가 계급 적대를 압도한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 이론의 이론적 근거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생산 영역, 또는 생산양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별개의 두 가지 투쟁, 즉 경제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이 존재한다. 줄리엣 미첼은 이러한 주장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두 개의 자율적 영역, 즉 자본주의라는 경제 양식과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 양식을 다루고 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이러한 정식화가 너무 관념적이라고 생각해서 마르크스주의의 해석을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가부장제가 “이데올로기 양식”이라는 설명은 유물론적으로 분석하려는 그 어떤 생각도 포기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가부장제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결합하려는 시도들이 많은데, 이들조차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가족 재생산양식이라는 두 가지 양식의 정식화를 표현한다.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이러한 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104~105쪽)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분석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계급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석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가족 내부에 봉건적 생산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다.……(106쪽)
마르크스의 분석은 변화와 모순에 대해 얘기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분석과는 다르다. 마르크스에게 사회에서 고정되고 영원한 것은 없으며 하나의 생산양식에서 다른 생산양식으로의 변화는 삶의 모든 영역을 바꿔 놓는다. 이러한 설명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들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낡은 가족형태는 새로운 생산방식에 장애물이 됐다. 새로운 방식들이 성공하려면 다른 것들과 함께 낡은 가족도 분쇄돼야 하고 그렇게 해서 이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생산이 가족에서 공장으로 이동하고―가정과 노동이 분리되고―뒤이은 사회 격변의 과정에서 완전히 변모한다. 마르크스는 가족은 사회 자체가 바뀌면서 달라진 사회의 거대한 상부구조의 일부가 됐다고 봤다.……(110쪽)
가부장제 이론의 중심에는―그것이 아무리 계급사회 분석인 양 치장한다 해도―이미 정해진 생물학적 성별 차이가 여성 억압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성 억압 이면에 계급사회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은 집단적 계급 행동보다는 개인적 변화가 억압의 해결책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가부장제 이론가들은 그 주장을 더욱 발전시킨다. 그들은 계급사회가 여성 억압을 야기하는 데서 기껏해야 부차적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계급이 사회 내부의 핵심적 분열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모든 여성에게는 (모든 남성이 공통으로 가부장적 특권을 갖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모든 여성은 계급에 상관없이 여성 문제에 공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들 사이에 엄청난 차이점이 존재한다. 지배계급 여성은 노동하는 남성과 여성한테서 뽑아낸 잉여가치에서 직접적 이득을 얻는다. 많은 중간계급 여성들은 기술직과 관리직 같은 새로운 중간계급의 일부다. 나머지 중간계급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으로서, 그들은 지위나 소득 측면에서 대다수 노동계급 사람들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중간계급이나 상층계급 여성들에게는 자신들이 누리는 물질적 이득을 통해 억압을 완화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그들의 억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모를 구할 수 있고, 다양한 서비스를 가정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고, 자가용이나 다른 물건들을 가질 수 있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이 상황을 더 낫게 만든다.……
이러한 주장의 필연적 결론은 노동계급 남성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 때문에 노동자들 개인은 무기력해지고 소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이 착취 때문에, 계급 분열이 사회 내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분열이 되는 것이다.(335~336쪽)
현대 여성운동이 건설된 지 약 20년이 됐다. 1960년대 말 미국 여성운동의 탄생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여성운동과 세기 전환기의 여성참정권 운동 사이에 분명히 사상의 연속성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 여성운동은 주요 측면들에서 독특했다.
이 운동이 건설된 배경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노동에서 여성의 지위 변화였다. 노동자로서, 특히 간혹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서 여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지닌 몇 가지 모순을 보여 줬다. 여성은 점차 가정 바깥의 세상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동시에 이등 시민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여성의 불평등은 누구나 알 수 있었고, 그러한 불평등은 저임금이나 “여성 직업” 또는 시간제 노동을 통해 드러났다.
심지어 여성들은 스스로 돈을 버는 경우에도, 책임감 있는 성인보다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일이 아주 흔했다. 예를 들면,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내내 여성들은 남성의 재정 보증이나 동의 없이 중요한 신용 구매, 즉 집이나 심지어 세탁기 같은 것들을 구매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불만이 생겨났다. 특히 전문직과 중간계급 여성들의 불만이 높았다. 이러한 불만들은 재정적·법적으로 남성과 평등하지 못한 문제를 둘러싼 것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간 불만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중간계급의 결혼과 그 결혼의 물질적 안락함은 성취감의 부재나 지루함도 가져다줬다. 베티 프리던은 이 느낌을 “이름 없는 문제”라고 부르면서 그러한 미국 여성 세대를 대변했다.……(241~242쪽)
여성해방운동 초기의 기대감은 급속히 시들해졌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까지, 여성운동과 운동을 뒷받침한 페미니스트 사상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강화한 두 가지 독자적인 경향이 운동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여성운동의 많은 부분이 제도화되고 명망을 추구한 것이었다. 이것은 모든 수준에서 이 운동이 사회·국가와 통합됐음을 뜻했다. 둘째는 전반적으로 여성운동 내에서 급진 페미니즘이 지배적 경향으로 발전한 것이었다.(271쪽)
물론 이 말이 혁명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 여성 억압의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자, 성적 학대자, 강간과 같은 심각한 성범죄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엄마와 아이 돌보는 사람으로서 여성의 역할은 계속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고 일부 여성은 혁명적 격변을 원하기보다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전통적 위치에 집착할 것이다. 여성 억압은 모든 억압 가운데서도 가장 뿌리 깊게 오랫동안 확립된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이들의 성적·개인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심지어 가장 맹아적 형태의 노동자 국가도 많은 중요한 변화를 도입할 수 있으며 이것이 여성해방과 모든 인류의 해방을 위한 토대를 놓을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자원은 억압의 부담을 더는 데 쓰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의 삶을 더 쉽고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데 소비되는 것이 거의 없다. 보육 등을 위한 지출은 보통 보잘것없고 흔히 일시적이며 여성의 필요가 아니라 특정 시기 자본가계급의 필요에 맞춘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여성 노동이 필요했던 제2차세계대전 기간에 보육시설들이 세워졌지만 평화의 시기가 돌아오자 급속하게 폐쇄됐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보육시설들은 기본 필수품으로 여겨질 것이고 엄마가 일하길 원하든 그렇지 않든 제공될 것이다. 보육에 드는 돈은 오늘날 군비로 지출되는 엄청난 돈과 부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없앰으로써 마련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핵심은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세탁을 하는 사회시설을 통해 가족의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이와 노인, 병자를 돌볼 책임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족 밖에서 적절한 보살핌을 보장하는 일은 가족 안의 개별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전체 지역 사회가 수행할 것이다.
언론과 법률의 기능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제도들은 여성 억압을 반영하는 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것들은 정확히 그 반대를 비출 것이다. 이것은 남성 우월주의의 끝을 뜻하지는 않을 테지만 성 차별적 관념들이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혁명의 첫날부터 해방이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여성의 완전한 재정적·법적·사회적 평등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대한 일보전진인 동시에 여성이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할 것이다.(3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