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성폭력 개념 문제
여성운동이 성폭력에 대한 이런 보수적 법 적용과 제도화된 여성 차별에 반대해 성폭력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범죄’로 규정하려 한 것은 올바른 출발점이다. ‘여성의 노No는 노No’라는 구호처럼, 성폭력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성관계에서 여성의 동의 여부다. 그 밖의 잣대, 즉 여성의 ‘행실’, 남성의 의도, 저항 정도, ‘정조 침해’ 등은 성폭력 판단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 이런 편협하고 보수적인 기준에 반대해 여성의 동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성폭력 개념 확장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수적 법 적용에 맞서 싸우면서 상당수 페미니스트들은 한층 더 나아갔다. 즉, 성관계에서 여성의 동의를 중시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여성에 대한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 나아가 ‘여성을 불쾌하게 하는 언행’ 전반에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는 경향이 생겨났다(성폭력 개념의 과잉 확장). …
하지만 성적으로 부적절한 언행 일체를 모두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런 시도는 그 의도가 좋다 할지라도 실제로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
무엇보다, 지나치게 느슨한 용어 사용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크게 방해하고 더 나아가 심각한 정치적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성폭력 개념 과잉 확장은 자신들끼리 토론하는 데 익숙한 소집단 안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대중과의 소통은 불가능하게 하거나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2장 ‘피해자 중심주의’
그동안 한국의 반성폭력 활동가들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해 온 데에도 나름의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실에서 여성의 피해 호소와 의사가 종종 무시당한다는 사실이다. …
따라서 여성의 피해 호소와 의사가 일방적으로 무시되는 관행에 반대해야 한다. ‘물증 지상주의’는 배척하고, 여성의 진술은 그 정합성이 있다면 하나의 중요한 증거로서 존중돼야 한다(물론 여성의 진술 외에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과 정황 증거들도 참작돼야 한다). 또한 보수적 편견을 적용해 피해호소인을 매장시켜선 안 되고, 피해호소인이 부당한 압력 없이 피해를 호소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며, 여성의 동의 여부가 성폭력 판단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에 입각해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에는 이해할 만한 문제의식뿐 아니라 주관주의적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그 말이 보여 주는 바 그대로,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인식과 지각, 감정을 중심으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
그 이해할 만한 애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근대 민주적 사법 절차의 기초인 증거주의를 버리고 주관주의를 원칙으로 삼는 것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낳는 난점과 부작용은 없을까? …
성폭력 피해를 정당하게 인정받으면서도 엉뚱한 일이 성폭력으로 부풀려지거나 애먼 사람이 누명 쓰는 일도 없으려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어도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안이 있다.
필자는 ‘증거주의와 피해호소 여성 진술 존중의 종합’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안한다. 주관주의에 바탕을 둔 ‘피해자 중심주의’는 증거주의로 대체돼야 한다. 증거주의는 물증만이 성폭력 입증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물증 지상주의와는 다르다. 물증만이 아니라 진술도 증거다. 여성의 진술도 중요한 증거의 하나다. 단, 피해호소인의 진술일지라도 그 일관성과 타당성을 따져 봐야 하고 관련자들의 증언과 물증도 확인용 근거로 포함시켜야 한다. 이런 대안은 지나친 가해자 존중이나 물증 지상주의를 배척하면서도, 주관주의가 낳을 위험도 피할 수 있다. …
문제는 증거주의와 객관성 그 자체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여성의 동의 없이 성추행이나 강간을 했느냐’ 여부를 무시하고, 남성의 의도나 사건과 무관한 여성의 ‘행실’ 따위로 여성 진술의 신뢰성을 깎아내려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려 드는 것이다. 따라서 증거주의와 객관성을 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체적 진실을 찾아 성폭력을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말이 참말이고 증거주의가 ‘물증 대라’는 식으로만 편협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면, 객관적 실체를 중시하는 것은 여성에게 전혀 불리한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성폭력 사실의 객관적 존재 여부를 검증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그것이 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게 되면, ‘역시 성폭력 피해 호소는 믿을 만한 게 못된다’라는 편견이 강화돼 의도치 않게 진짜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연히 의심받는 역효과를 낳게 된다. 성폭력 반대 운동이 부적절한 동기에 의해 악용되거나 우스꽝스럽게 될 수도 있다(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객관적 실체를 중심으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앞으로 피해 호소를 하게 될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또한 진보·좌파 운동의 신뢰 실추를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4장 ‘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 논쟁
성폭력 개념을 과잉 확장하는 ‘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 개념이 계급 투쟁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단지 여성 개개인을 (‘약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편들어 주기 위해 성차별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폭력과 여성 차별, 소외 없는 사회를 이룩하고자 해야 한다. 여성 차별과 소외는 그저 개개인들의 태도와 취향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차별을 없애려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해야만 한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분열해 파편처럼 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잉 확장돼 모호하기 이를 데 없고 필요한 토론을 억누르는 성폭력 개념들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소통과 토론, 논쟁을 가로막거나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 안의 성폭력 가해자’ 색출에 골몰하게 만들어 내향성과 갈등과 분열을 일으켰다.
진정한 성폭력을 처벌하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노동계급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단결, 그리고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다른 사회집단들의 연대를 위해서 진정한 성폭력에는 단호히 반대하고 엄격하게 규율을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관적이고 독단적인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엉뚱하게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해자 딱지 붙이기를 하는 것은 우리 운동의 표적을 성차별을 낳는 체제와 그 수혜자인 지배계급이 아닌 우리 피억압자들 내부로 향하게 만들어, 차별에 반대하는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이고, 또 현실의 삶이자 실재인 계급 투쟁을 흐리거나 파편화시키는 분열주의적인 개념을 설파하지 않는 것이 성폭력 반대 운동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