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반대와 점령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철군하지 않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의 국내 석유 수요가 미국이 중동의 석유 생산을 지배하고자 애쓰는 유일한 이유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유럽과 중국이 모두 미국보다 더 중동 석유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중동에서 자신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결정적 이유다. 중동 지배권은 단지 미국의 국내 석유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동맹과 경쟁자들의 석유 수입원을 통제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의 압도적 힘이 경제력보다는 군사력에 있기 때문에 중동의 군사화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는 셈이다. 그것은 미국의 강점에 근거를 둔 것이고 군대가 문을 차서 열어젖히면 미국 기업들이 따라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프랑스·독일과 미국 사이의 분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의 상황은 미국과 정반대다. 즉, 그들은 경제력이 군사력보다 더 강력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이라크 위기에 대한 비군사적 해결책을 선호한 것이다. 그들의 처지에서는 비군사적 해결책이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이었다. 그 점은 전후 이라크 경제 수탈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이 누린 엄청난 특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130쪽)
중국과 미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것인가?
“중국이 흔히 중국의 산업혁명에 쓰일 석유와 다른 천연자원들을 찾아 동남아시아·인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친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그러한 경제적 관계들은 불가피하게 외교적·군사적 수준의 대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를 매개로 한 중국과 이란의 관계 ― 최근 중국의 한 국영 석유 회사는 향후 30년 동안 석유와 가스를 구매하는 내용의 7백억 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 는 [이란의] 이슬람 정부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으려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노력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2004년 9월 중국은 미국이 제안한 유엔의 수단 제재 결의안을 거부했다. 수단과 맺은 석유 계약들 때문이었다. 이미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차관을 지낸 윌리엄 클라크 주니어는 “미국은 중국의 석유 수요에 대해 중국과 논의할 때 더 공세적 태도를 취해서 …… 석유 분배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중국의 세계시장으로의 통합을 중-미 관계가 일정 선을 넘어 악화하는 것을 막는 일종의 안전판으로 여긴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성공하면 미국 다국적기업들이 중국 시장과 대중국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므로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 사실이다. 또 중-미의 경제 관계에는 암묵적 거래가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즉, 중국이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미국의 재정 적자 해결을 위해 돈을 꿔 주는 데 다시 사용하는 한, 미국은 밀려드는 중국산 수출품과 그 결과 발생한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너그러이 봐준다. 달리 말해, 미국은 일찍이 중동 산유국들이나 일본 등의 나라들과 발전시켜 온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해에는 한계가 있다. 2006년 3월에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정부는 …… 중국이 미국 제품에 시장을 개방하는 조치를 즉시 취하지 않으면 양국 경제 관계가 험악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무장관 카를로스 구티에레스는 …… 중국이 2천억 달러 규모로 급증한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기를 기다리는 미국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그러한 경제적 상호 의존이 외교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군사적 충돌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인지의 문제는 남아 있다. 역사적 증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산업 세계의 경제들은 제1차세계대전 전부터 점차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돼 가고 있었다. 오히려 국제무역은 제1차세계대전 직후나 고립주의가 우세했던 1920년대와 1930년대보다 제1차세계대전 전에 더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심지어 순전히 경제적인 경쟁조차 경제 영역에만 한정될 수 없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상호 의존 ― 언제나 경제적 협력뿐 아니라 경제적 경쟁도 수반하는 ― 이었다. 그러한 긴장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으로 비화했다. 제1차세계대전의 경우 전 세계 상당수 국가들이 경제 관계의 토대를 재편하기 위한 무기로 군사 행동을 선택하는 바람에 세계적 충돌이 일어났다.
중국이 공업화하고 있는 세계적 환경은 더 장기적으로는 그러한 충돌의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든다. 미국이 대중국 투자와 재정 적자 해결을 위해 중국의 재원 조달에 의존하면 할수록, 미국은 이러한 경제적 생명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군사력 사용이 더욱더 절실해질 것이다. 나아가 피터 고완이 지적한 것처럼, “러시아·중국의 자본주의 전환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근본적인 지정학적 문제는 …… 미국의 군사적 보호가 필요한 서유럽과 일본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서의 러시아와 중국의 구실이 더는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은 이 두 나라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 그 국가들의 노동·상품 시장과 자원·자산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을 획득하려는 핵심 국가들 사이의 경쟁 압력을 창출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위험은 일부 또는 모든 동아시아 자본주의들이 미국의 영향력과 경제적 침투를 약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지역 네트워크 속에서 중국과 동맹을 맺는 한편, 서방에서는 더 응집력이 강화된 유럽연합 내에 확실히 자리 잡은 독일이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95~97쪽)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 공격은 미국 군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부가 공격을 받은 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자신의 참모에게 이렇게 물었다. 쌍둥이 빌딩 공격은 그 뒤 미국 전쟁 정책 전환의 원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이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세르비아 테러리즘’이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테러리즘’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공격의 원인이 아니었다. 쌍둥이 빌딩 공격은 더 심원한 동기를 지닌 다른 계획들을 실행하기 위한 계기, 즉 기회였다.
어차피 미국은 일반적으로는 냉전 종식 이후 세계에서, 특히 유라시아에서, 더 구체적으로는 중동에서, 자신의 제국주의적 대응 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득세한 신보수주의자들의 여러 요구와 발칸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온갖 일들에도 불구하고, 2001년 9월까지 그들의 목표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달성됐다. 그러나 때가 되자 음모가 드러났다.
쌍둥이 빌딩 공격으로 신보수주의자들의 전망이 실행에 옮겨졌다. 쌍둥이 빌딩을 공격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고 이라크인은 한 명도 없었는데도, 목표는 항상 이라크였다. 그러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이라크 공격은 잠시 미뤄졌다. 이슬람 급진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과 민족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이라크] 바트당 정권 사이의 관련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 침략을 위한 군사적·외교적·이데올로기적 준비에는 시간이 걸렸다. 빈 라덴이 살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그렇지 않았다. 부시 정부에게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거쳐 가야 할 일종의 예비 단계였다. ……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부시 정부가 새로운 제국주의 기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추진력을 제공했고, 이라크 전쟁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부시 정부의 새로운 제국주의 기획은 마침내 2002년 9월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이라는 정부 보고서에 분명히 제시됐다.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의 핵심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냉전 종식 이후의 세계는 세계 경제 환경을 미국에 유리하게 재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미국에 제공했다. 이러한 전략 목표는 실현 가능하다. 왜냐하면 미국의 군사력을 선제(先制)용으로 사용한다면 전략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고, 9·11 이후의 이데올로기 환경이 그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 보고서가 자유 시장 자본주의라는 사상을 장려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이러한 목표를 지지하는 군사전략은 다자주의를 폐기하고 선제 행동을 공식 정책으로 채택한다. “미국은 늘 그렇듯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우리는 필요하다면 선제 행동으로 자기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 혼자 행동하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 우리에게는 훌륭한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다.”
선제 행동을 해야 자기를 방어할 수 있다는 주장의 부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더 나아가 이러한 정책 변화를 냉전 종식 이후 상황의 결과로 설명한다. “냉전 위협의 성격 때문에 미국은 ― 동맹·우방과 함께 ― 적의 무력 사용에 대한 억지력을 강조해야 했고, 상호 확증 파괴라는 무시무시한 전략이 나타났다.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자 우리의 안보 환경은 심원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불량국가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새로운 치명적 도전들을 제기하고 있다.”(56~58쪽)
미국의 경제력 하락이 군사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전례 없이 강력한 미국의 군사력”을 평가하고서, 냉전 종식 후 세계 제국주의 체제를 재편하기 위한 전 세계적 투쟁에서 “전면적 지배력”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냉전 시대의 대규모 군대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보다 어떻게 적과 싸울 것인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무기와 전략을 전환하면서 동시에 군대의 지리적 배치도 조정해야 한다. “미국에게는 서유럽과 동북아시아 안팎에 기지와 주둔지는 물론이고 미군의 원거리 배치를 위한 임시 시설도 필요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에 이 문제는 주요 비상 계획 목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 우리는 첨단 원격 탐지, 장거리 정밀폭격 능력, 변형된 기동작전, 해외 파견군 같은 자원을 발전시켜서 그러한 군사 배치 증가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광범한 군사 능력에는 본토를 방어하고, 정보 작전을 수행하고, 원거리 전역(戰域)에 대한 미국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우주 공간에 있는 미국의 핵심 기반 시설과 자산을 보호하는 능력도 포함돼야 한다.”
이러한 미국 군사력의 재구성은 이라크 침략의 결과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1990년대에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은 미국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이해했다. 첫째, 냉전 종식 이후 상황 덕분에 방위비 지출을 전반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미국 경제의 상대적 쇠퇴 때문에 방위비 지출을 줄여야만 했다. 둘째, 베트남 증후군의 오랜 그늘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은 미군 사상자가 대거 발생하는 것을 경계했다. 1991년 걸프전 때까지만 해도 이 두 요소는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었다. 냉전이 이제 막 끝났고, 그래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기 위해 콜린 파월과 노먼 슈워츠코프의 ‘압도적 무력’ 독트린 ― 냉전 시기의 전투 계획을 약간만 수정한 것 ― 이 채택됐다.
2003년의 이라크 침략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가 보여 주듯이, 미국의 군사 교리는 변했다. 이제 수적 우위보다는 미국 군사력의 기술적 우위가 강조됐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것은 일부는 냉전 종식이었고, 일부는 장기간의 경제적 변화였으며, 일부는 비용 문제에 민감한 ‘공화당 긴축재정 선호 분파들’을 이용해 지배계급 내의 합의를 조성해야 했던 부시 정부 내 신보수주의자들이었다. 그 결과, 1991년 걸프전 때보다 적은 10만 명의 군대로 이라크를 침략한다는 럼스펠드-울포위츠 계획이 수립됐다. 이라크군은 그러한 규모로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지만 미국의 점령이 맞닥뜨린 저항은 그처럼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62~64쪽)
지금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국가들 간 경쟁이 사라지는 세계 제국의 시대인가?
역설이게도, 이 이론을 널리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신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정치 좌파들이다. 그 중에서도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이 가장 유명하다. 하트와 네그리의 “기본 가설은 국민적·초국민적 기구들이 단일한 통치 논리 아래 통일되면서 주권이 새로운 형태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 주권 형태를 제국이라 부른다.” 이것이 생겨난 이유는 “국민국가들의 주권이 쇠퇴하고, 국민국가들이 경제적·문화적 교환을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덜 추상적이지만 냉전 종식 후 제국이 등장했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그 한 예로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은 다국적기업들의 외국인 직접투자에 따른 국민국가들의 경제적 상호 의존 덕분에 미국이 주도하는 통일된 체제가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배제한다. ……
하트-네그리와 파니치-긴딘의 이런 ‘단순화된’ 제국주의 구조 분석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양자 모두 겉보기에 매우 급진적 결론을 내린다. 만약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모순이 세계 제국으로 승화됐다면, 남은 주요 모순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와 탈계급화한 ‘다중’(하트와 네그리)이나 노동계급(파니치와 긴딘) 사이에 있다. 파니치와 긴딘은 ≪제국≫을 평가하면서 새로운 제국에서 누가 변혁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하트와 네그리에 동의하지 않지만,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단일한 제국으로 전화했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따라서 ≪제국≫뿐 아니라 파니치와 긴딘의 분석에서도 국가들 사이의 경쟁은 사라지고 다양한 형태를 띤 대중과 체제 사이의 투쟁은 계속된다. 이것은 사소한 이론적 변화가 아니며 이것의 함의는 저자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크다. ……
세계화의 특징은 세계화가 세계 수준에서 자본 단위의 경쟁을 격화시키는 것이지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이론가들의 의도가 경제적 경쟁이 계속해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파니치와 긴딘의 경우는 특히 그런데, 그들은 아직 하트나 네그리처럼 포스트마르크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경제적 경쟁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 이 이론가들은 경제 세계에서 거인들 사이의 경쟁이 절대로 국가들 사이의 경쟁으로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즉, 정치와 경제가 사실상 단절돼 있다.(269~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