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월요일을 싫어할까?
“금요일이여, 어서 오라!” 흔히 듣는 이 말은 우리가 대부분 자기가 하는 일을 따분하고 의미 없는 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일에서 벗어날 때만 자유롭다고 느끼기 시작하므로 우리는 퇴근 시간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의 내용, 즉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돼 버렸다. 내 요구나 남의 요구를 채우려고 뭔가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자신의 진정한 생명 활동의 일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활을 꾸리자면 어쩔 수 없으니까 일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이 그런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그는 그것을 ‘소외된 노동’이라고 불렀다. 또,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이 임금노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도 보여 줬다. 임금노동은 거의 모든 사람을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일할 능력을 팔아야 할 신세로 몰아간다.
•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있을까?
보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억눌리고 빼앗긴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인간 본성을 들먹인다. “전쟁? 그거야 인간의 몸에 싸움을 좋아하는 피가 흐르기 때문이지.” “인종차별? 사람이란 원래 낯선 사람이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지.” “여성을 억누른다고? 그것도 사람이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이지.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게 태어났잖아.” …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인간이란 ‘타고나기를’ 자기만 알고 욕심이 많기 때문에 연대와 평등이 넘치는 사회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만 안다면야 저럴 수 없지” 싶게 친절하고 너그럽고 남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러나 워낙 자본주의 사회가 이윤을 노린 생산에 바탕을 둔 사회다 보니 느느니 욕심이요 모질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사람 됨됨이에서 좋은 점들은 자꾸 빛이 바래고 만다.
그러니까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어떤 사회, 어떤 물질적 조건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사람 됨됨이도 저마다 달라진다는 것이다. …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이 ‘본성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18세기의 지주는 토지 사유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동성애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여겼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남성들은 동성애를 차마 눈뜨고 못 볼 것으로 생각했다. 정통 힌두교 신자들은 몇백 년 동안이나 결혼 상대자는 으레 집안 어른들이 정해 주는 것이려니 했다. 서구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이 그것을 ‘본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를 바꾸라. 그러면 ‘인간 본성’도 바꿀 수 있다.
• 기아는 왜 생기는가?
오늘날 세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생산성을 자랑할 만큼 풍족하다. 그러나 유엔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오늘날 9억 6300만 명이 기아와 아사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매일 약 2만 5000명이 기아나 기아 관련 질병으로 죽어 간다. …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일까? … 오늘날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매일 3500칼로리씩 제공할 수 있는 밀과 쌀 등 곡물이 생산된다. 교통수단이 문제일까? … 폭탄을 실은 폭격기들은 지구 어디든 날아간다. 그런데 식량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 아이들 수천 명이 굶어 죽든 말든 사람들이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 … 유엔만 보더라도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또 옥스팜과 세이브더칠드런처럼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기부로 운영되는 국제 구호단체도 많다. … [진정한 원인은] 식량이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이라는 사실, 시장에서 판매해 이윤을 얻으려고 생산되는 상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 사회주의는 … 기아 문제를 가장 손쉽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다. 즉, 식량을 상품으로 보지 않고 모든 사람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그저 잘 분배하기만 해도 이 문제로 고통받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 굶주리는 아이가 더는 없을 것이다. 영양실조로 불룩 튀어나온 배도, 생기 없는 얼굴로 멍하니 쳐다보는 눈빛도 사라질 것이다. … 오늘날 인간이 겪는 엄청나게 많은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설사 사회주의의 성과가 이것뿐이라 해도, 이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 자본주의는 어떻게 경제 위기를 낳는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경제 위기가 되풀이된다. 지금 우리는 가장 최근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 언제나 변함 없는 사실은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가장 괴로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자본가들은 저마다 되도록 생산을 더 늘리고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착취를 바탕으로 하므로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생산한 재화를 모두 구입할 만한 임금을 주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에는 언제나 과잉생산이라는 위험이 따라다닌다. … 이 문제의 해결책은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이윤을 끊임없이 재투자하는 것이다. … 그러나 생산수단에 대한 이런 투자는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을 부추긴다. 왜냐하면 이윤은 오직 노동력을 쥐어짜야만 생기기 때문이다. …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은 자본주의의 밑바탕에 깔린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다. …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필요를 위한 생산이 이뤄질 때에야 비로소 인류는 경제 위기와 그것에서 비롯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 진보를 향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사회주의자들은 자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 자선단체는 자신이 다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는 몇천억 원이 아니라 수천조 원 정도는 돼야 의미 있는 대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물론 자선단체 옹호자들은 이런 지적에 대해 할 말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단지 뭔가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고 말할 것이다. 좋다, 그러나 건물에 불이 났을 때 물총으로 불을 끄려 하거나(그것도 뭔가를 하는 것이기는 하다) 산불이 났을 때 물뿌리개나 정원용 호스로 산불을 끄려 하는 것을 제대로 된 소방 활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자선 활동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적절한 소방차보다는 물총에 더 가깝다는 것이 진실이다. …
자선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실도 고려해야 한다. … 각국 정부는 교육·의료·복지 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자선과 ‘자원봉사’를 이용할 수 있고 흔히 그런다. 나는 병원이 새로운 구명 설비를 도입하려고 모금을 호소하는 것을 볼 때마다 왜 군대는 모금을 하지 않아도 무기 등을 마련할 수 있는지 묻는다.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미사일 시스템을 갱신하는 데만 200억 파운드 넘게 필요한데 이것은 모금하지 않고도 언제나 마련된다. …
자선의 온갖 결점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동기에는 사회주의자들이 관심을 갖거나 격려할 필요가 있고 결코 기각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염원이 있다. …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일반적 이론과 원칙이 있어야 하고 필요하지만, 그런 원칙을 즉각적 실천에 적용할 때는 기계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진리는 결국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 하면 사람들은 흔히 소련의 스탈린 억압 정치나 영국 노동당 정부나 그 밖의 ‘좌파’ 정부들을 떠올린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관료나 억압적 국가가 사회생활을 모두 통제하는 것, 또는 몇몇 개혁 조처들이나 국가가 좀 더 나서서 지금 상태를 손질하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근본 목적이 계급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일은 단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비롯하는 기나긴 사회과정일 수밖에 없다. … 사회주의로 가는 결정적 첫걸음은 노동계급이 정치권력을 잡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깨뜨리고 노동자 국가를 세우는 일이다. … 국가권력을 잘 다지고 필연적인 자본가들의 반혁명 기도를 물리치고 나면 노동계급은 계급 없는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길을 닦아야 한다.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권력을 가지고 주요 산업과 기업을 모두 거둬들여 사회의 소유로 돌리고 그것들을 노동자 관리 아래 둘 것이다. 또,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새로운 사회를 꾸려 나가게 된다. 그래야 경제를 민주적으로 계획할 수 있게 되고, 사회의 부富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며, 이렇게 늘어난 부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게 된다.
• 사회주의 사회가 되면 민주주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지배계급과 개혁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퍼붓는 주된 비난 하나는 마르크스주의가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 그들이 보기에 혁명은 의회 정치에 반대하는 것인데, 그들에게는 의회가 곧 민주주의다. … 그러나 의회를 곧 민주주의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현실을 잘 살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회가 허용하는 민주주의는 늘 형편없이 제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의회 민주주의’에서는 유권자들이 자기네 대표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국회의원이 선거 전에 한 약속들을 몽땅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손쓸 도리가 없다. 둘째, 국회의원들은 실제로는 정부를 통제하지 못한다. … 셋째, 정부라 해도 대기업의 손안에 있는 사회의 결정적 분야, 즉 경제에는 손을 대지 못한다. … 마지막으로, 의회는 제쳐 놓고라도 사회의 중요한 제도는 모두 민주주의와 전혀 관계없이 운영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찰, 군대, 모든 산업과 기업(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공공서비스, 각급 학교, 병원, 대중매체 등 어느 곳에서든 관리 원칙은 한결같다. 권위를 앞세워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민주적 결정은 찾을 길이 없다.
의회 제도가 곧 민주주의라고, 곧 의회는 ‘국민의 통치’를 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 지배계급은 의회 민주주의가 자기네의 가장 중요한 이익을 해친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 의회 민주주의를 폐기해 버리거나 허깨비로 만들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