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서민들은 유럽연합을 일자리를 창출하고 악랄한 자본가들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좋은 기구로 여긴다. 또 어떤 이들은 유럽연합이 일과 학업을 위한 국가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유럽연합에 남는 것을 뒷받침하는 이런 생각은 상식적이고 진보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유럽연합은 국민 대중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려고 결성된 자비로운 국가 연합이 아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민자나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
유럽연합은 1950년대에 자본의 지역 블록을 형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군사 안보를 보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구는 나토가 확장하고 세력을 얻고 전쟁을 벌이는 데 필수 요소가 됐다. …
그동안 유럽연합은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채권자로서 직접 긴축을 강요해 왔을 뿐 아니라, 회원국들의 재정 지출을 제한하는 규정으로 영국 같은 나라에도 긴축을 강요했다. 긴축이 낳은 실업과 복지 삭감, 해고로 고통받은 노동자들이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진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
유럽연합은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경계 밖에서 들어오려는 모든 이민자들을 공동으로 차단한다. …
유럽연합은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에서 난민을 수용소에 가뒀고 터키에 막대한 돈을 쥐어 주며 난민 단속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몰래 국경을 넘다 지중해에서 익사하거나 환기가 안 되는 냉동차에서 질식사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이 ‘이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오랜 착각은 그 실체가 드러났고, 오히려 ‘유럽연합 탈퇴’가 국제주의적 요구였다. …
이번 결과는 국민투표와 관련된 EU의 불명예 기록을 또 한번 갱신한 것이다. 그리스 (2015년), 아일랜드(2001년, 2008년), 네덜란드(2005년), 프랑스(2005년), 스웨덴(2003년), 덴마크(1992년). 이 모든 투표에서 민중은 EU를 거부했다.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놓고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다수가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다. 이번 결과는 영국과 세계의 노동계급에 일보 전진이다. 무엇보다 유럽 전역에서 긴축 강요에 맞서 유럽연합 자체에 도전하는 좌파와 노동자들이 결코 고립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다.
지난해 그리스인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의 긴축안을 압도적으로 부결시켰을 때, 각국의 지배계급들은 유럽연합 거부 정서가 그리스 같은 ‘주변국’에서나 이례적으로 벌어지는 일로 치부했다. 그러나 겨우 1년이 지난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중심부’ 국가 영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유럽연합의 ‘권위’는 이제 더 많은 나라에서 도전받을 것이다. …
주류 언론들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마치 세대간 표 대결인 양 떠들었다. 젊은층은 유럽연합을 좋아하는 반면 50대 이상의 중년층은 보수적이므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업과 긴축으로 큰 고통을 겪는 청년층이 유럽연합을 여전히 반길 것이라는 것은 지배자들의 바램에 불과했다. 실제 투표 결과를 보면, 노동빈곤층이 많은 도시에서 탈퇴 표가 특히 많이 나왔고, 그 중에는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해온 곳들도 많이 포함돼 있었다. …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몰려가 기존 정치 질서에 크게 한 방을 먹였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우려가 참말이라고 봐야 한다. 그 근저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위기 때문에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기구임이 더는 가리기 어렵게 된 점이 있다. …
유럽연합 잔류를 주장한 노동자의 상당수도 노동권을 지키고, 무슬림과 이주민을 향한 인종차별에 반대하려는 취지에서 그랬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결코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단결을 통해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이런 단결을 이뤄내어, 이윤에 눈멀고 난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기만 하는 지배자들을 더욱 물러서게 만들 과제가 이제 좌파 앞에 놓여 있다.
1월 15일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 이 때문에 타격을 입은 것은 메이와 보수당만이 아니다. 기성 정치 전반이 혼란에 빠져 있다. 하원의원들과 대중 사이의 간극이 유례가 드물게 커졌고, 대기업들이 정치적 통제력을 상실했음이 드러났다. 우리 편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 보수당이나 하원의원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정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는 유럽연합에, 보수당식 브렉시트에, 유럽단일시장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주의 자유를, NHS 예산 확충과 ‘유니버설크레딧’ 폐지를, 부유세를, 민영화된 산업과 서비스에 대한 재국유화를 지지한다. 이제껏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의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것들 사이의 논쟁으로 거의 전적으로 제한돼 있었다. 이제는 긴축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브렉시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빈곤, 천대,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도 이와 연결돼 있다. 이는 말잔치나 사소한 조처들 수준에서 전면적 항쟁으로 투쟁 수위를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만큼 거대한, 아니 더 큰 투쟁이 필요하다.
-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때문에 대중의 삶이 악화될까?
‘노 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브렉시트] 상황이 자아낼 끔찍한 일들에 대한 경고가 많다. … 총리 테리사 메이와 사장들이 ‘노 딜 브렉시트’를 재앙으로 묘사하는 것은, 메이의 합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유럽연합이 비회원국 지배계급들과 경쟁하는 회원국 지배계급을 보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연합은 브렉시트를 감행하는 영국을 벌 줘서 다른 회원국들이 탈퇴를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하려 한다. 유럽연합 탈퇴보다 잔류가 사장들에게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것이다. …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대중의 근심은 이해할 만하다. 정부와 사장들이 그런 근심을 부추기고 있다. … [그러나] 유럽연합에 남든 탈퇴하든 [이 체제에서] 대중의 기본적 필요가 충족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노 딜 브렉시트’로 기업의 비용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누가 그 부담을 지는가다. 물류 전문가 앤드루 포터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든 아니면 관련 기업의 수익이 타격을 입든 누군가는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지배자들이 브렉시트를 빌미 삼아 대중[의 삶]을 공격하는 데 맞서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