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동 존중 사회를 약속하며 사회적 대화 추진을 그 핵심으로 제시했다. 사회적 대화는 사용자와 노동조합 대표, 그리고 정부가 함께 노동·산업·복지 정책을 논의하고 합의(사회협약)를 도출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참여시키기를 바란다.
노동 ‘배제’가 기존 노동정책의 주된 문제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참여’ 정책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 대화가 제안되는 배경을 보든, 노동조합과 국가기구의 밀착이라는 좀 더 일반적인 추세를 고려하든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양날의 칼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처지를 보면 왜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가 저성장에 접어들어 효율을 높이는 개혁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는 여전히 강성인 노동운동과 마주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포섭해 협조를 얻어 내지 못하면 경제를 효율화하는 개혁과 정권의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참여를 보장하는 대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후퇴라는 양보를 얻어 내려 한다. 또, 적대적이었던 과거 노·사, 노·정 관계가 이제 동등한 파트너십 관계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사회적 대화 바깥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투쟁을 고립시키고 위축시키고 싶어 한다.
노동운동 내에도 노동조합이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대안 없이 반대 투쟁만 해서는 안 된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사회적 대화를 비롯한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노총 내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컸던 이유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론이 확산됐다. 경제 상황의 악화와 함께 정부의 친기업 반노동 정책이 노골화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노총의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안은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구성된 민관정협의회나, 총선 국면을 앞두고 제안된 목요대화가 그런 사례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노·사·정이 힘을 모으자며 경제주체 원탁회의와 비상경제회의를 열었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사회적 대화 추진 노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민주노총이 불참하는) 경사노위만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명환 집행부는 지역·산업·업종 단위의 노·사·정 대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특정 상황과 맞물리면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 급속히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과 함께 경제 위기가 매우 심각해진 지금이 그런 상황일 수 있다. 이런 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사회적 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좌절됐고 재시도를 거듭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을 것이다.
이 책의 1장은 문재인 정부 개혁의 성격과 ‘노동 존중’의 실체를 분석하면서,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이유를 살펴본다.
2장은 사회적 대화 참여가 노동계급의 조건과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특히, 경사노위의 주요 의제인 탄력근로제와 노동권 등의 논의가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 다루면서 경사노위의 본질을 규명한다.
3장은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 추진에 대한 노동운동 측의 대응을 다룬다. 문재인 집권과 함께 사회적 대화 참여론이 고개를 든 것부터 문재인 정부의 우경화로 노동운동 안에서 경사노위 참가 반대가 확산된 과정 전반을 살펴본다. 특히, 민주노총 좌파의 사회적 대화 불참 운동을 다룬 부분은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능동적 참여자의 위치에서 서술됐다는 장점이 있다(이 책의 지은이 김하영은 좌파 단체인 노동자연대의 운영위원이자 조직노동자운동팀장으로, 2019년 1월 노동운동 좌파들과 함께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 안건을 대의원대회에서 부결시키는 공동 활동을 했다).
4장은 문재인 정부가 위기 때마다 사회적 대화 카드를 꺼내고 있음을 환기하면서 그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5장은 한국에서 주목받는 세계적인 사회적 대타협 모델의 진실을 다룬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독일의 하르츠 개혁, 아일랜드의 사회적 합의가 그것인데, 해당 나라 좌파 활동가가 직접 합의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어 매우 생생하고 신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