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말
머리말
언어에 대한 설명
번역어 선택에 대해
1장 ‘아름다운 사랑’의 역사
2장 자본주의의 등장: 새로운 억압, 새로운 저항
3장 성 해방의 두 가지 전통: 독일과 러시아의 개혁과 혁명
4장 스톤월 항쟁과 새 운동의 탄생
5장 대처, 에이즈,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에 참여한 광원들
6장 지금 우리는: 이것이 최선일까?
7장 쟁취해야 할 세계
후주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21세기 성소수자 운동이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성소수자 운동이 여러 성과를 거뒀지만 계속 억압받는 것은 “성소수자 억압이 자본주의 사회조직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성소수자 운동이 영속적이고 참다운 해방을 이룩하려면 세상을 바꾸는 더 넓은 투쟁과 함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세기 초 독일과 러시아,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항쟁, 1984년 영국 광원 파업, 1990년대 초 남아공, 최근의 레바논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감춰진 급진적 성 해방 투쟁의 역사를 파헤친다.
감사의 말
머리말
언어에 대한 설명
번역어 선택에 대해
1장 ‘아름다운 사랑’의 역사
2장 자본주의의 등장: 새로운 억압, 새로운 저항
3장 성 해방의 두 가지 전통: 독일과 러시아의 개혁과 혁명
4장 스톤월 항쟁과 새 운동의 탄생
5장 대처, 에이즈,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에 참여한 광원들
6장 지금 우리는: 이것이 최선일까?
7장 쟁취해야 할 세계
후주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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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이 크게 성장했고 커뮤니티도 발전했다. 지난해에는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 커플이 공개적으로 동성 결혼식을 올리면서 동성 결혼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고, 최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동성애를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성애 혐오 세력도 본격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힘들여 성취한 작은 변화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올해 동성애 혐오 세력은 1000여 명을 동원해 한국의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인 퀴어퍼레이드를 가로막았고 최근 낙마한 총리 후보자 문창극도 출근 첫날부터 퀴어퍼레이드를 비난했다.
이처럼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공격이 급증한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2009년 영국에서 동성애 혐오 범죄로 목숨을 잃은 성소수자가 8명에 달한 반면, 동성애 혐오 폭력 신고 건수의 고작 1퍼센트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무지개 속 적색: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은 21세기 성소수자 운동이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 해나 디는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성소수자 활동가다. 지은이는 성소수자 운동이 여러 성과를 거뒀지만 계속 억압받는 것은 “성소수자 억압이 자본주의 사회조직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중 핵심은 바로 자본주의 가족제도다. “가족은 개인 관계를 규제하는 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며 지배계급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노동력을 싼값에 재생산하기 위한 핵심 메커니즘이다. 정치인, 대기업, 언론은 가족 가치를 찬양하면서 육아부터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막대한 부담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긴다. 그런데 성소수자는 전통적 가족의 바탕이 되는 관계와 역할을 훼손하고 혼란에 빠뜨려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공격이 급증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2008년부터 자본주의가 세계적 위기에 빠지면서 각국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고 노동조합뿐 아니라 한부모, 이주민, 성소수자를 공격하고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성소수자 운동이 지금까지 성취한 것에 안주하거나 개혁 입법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지은이는 한때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는 전투적 시위였던 자긍심 행진이 기업의 후원을 받는 이벤트가 돼 버린 것이나 동성애자 공간과 성 정체성이 상업화된 것에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성소수자 운동이 영속적이고 참다운 해방을 이룩하려면 세상을 바꾸는 더 넓은 투쟁과 함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소수자 투쟁의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감춰진 급진적 성 해방 투쟁의 역사를 파헤친다. 자유로운 사랑과 성 평등을 꿈꾼 초기 사회주의자들, 20세기 초 독일과 러시아의 개혁과 혁명이 보여 준 희망과 좌절, 성소수자들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은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항쟁, 1984년 영국 광원 파업 당시 광원들과 동성애자들의 연대의 경험, 아파르트헤이트를 물리치고 세계 최초로 헌법에 성소수자 권리를 명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중운동,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해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도 존경받은 레바논 동성애자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성소수자 투쟁과 더 넓은 사회적 반란을 연결하려는 이런 노력은 마치 무지개 속 적색처럼 성 해방 투쟁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 책은 우애, 협력, 인간애와 자유로운 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이 “이상향이 없는 세계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해나 디(Hannah Dee)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성소수자 활동가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옹호하고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운동 단체인 ‘집회·시위의 자유 지키기 행동’(Defend the Right to Protest) 의장이다. Anti Capitalism: Where Now?(2004)를 편집했고 The Red in the Rainbow: A Rebel’s Guide to Sexual Liberation(2010)을 썼다.
동성애자인권연대(www.lgbtpride.or.kr) 활동가이며 여성, 성소수자, 혁명적 사회주의자다. 스무 살에 바이섹슈얼 정체성을 인정하고 성소수자 운동을 만난 뒤로 전쟁, 신자유주의, 다양한 억압에 반대해 사회운동에 참가해 왔다. 옮긴 책으로 《여성해방과 혁명》(책갈피), 《여성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등이 있다.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이다.
• 동성애 억압의 역사
동성 간 사랑∙욕망∙관계와 젠더 다양성은 인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됐다. 인류 역사 내내 전 세계 곳곳의 아주 다양한 사회와 문화 속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그런 것들을 지칭하는 용어나 생각하는 방식은 고작 100년 남짓 된 것이다. ‘호모섹슈얼(동성애자)’이라는 용어는 1869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이란 용어는 그 뒤에 나왔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구분되는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말로 이름 붙이지 않고도 동성 간에 성관계나 친밀한 관계를 즐겼다.
성소수자가 체계적으로 억압받았다는 증거도 찾기 힘들다. 꽤 근래에 들어서야 체계적 억압이 나타난다. 몇몇 사회에서는 특정 형태의 성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했지만, 금지한 것은 행위였지 특정 범주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 당시 다양한 형태의 성행위에 대한 처벌은 오늘날 사회가 게이나 레즈비언, 양성애자처럼 별도의 인간형으로 구별해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박해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 자본주의, 가족제도, 동성애 억압
지배계급은 개혁이라는 당근과 아주 편협한 가족 형태를 강요하는 억압 조치를 함께 사용했다. 가족임금을 장려하면서 여러 공장법과 교육법도 잇달아 도입해 여성의 노동시간과 노동할 수 있는 산업을 제한하고 아동에 대한 국가교육을 13세까지로 확대했다. 당연히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조치들을 진보로 여겨 환영했다. 그러나 이 조치들은 또한 부르주아지가 노동자와 그 자녀를 재생산하고 양육하고 돌보는 부담을 주로 노동계급 가족,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지우려는 것이었다.
사회 전체에 부르주아 가족을 장려한 결과 가족은 단지 가장 바람직한 삶 정도가 아니라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아내, 어머니, 아동 같이) 가족에 매인 역할을 자연법칙에 따른 것으로 설명하려는 새로운 범주가 잇달아 생겨났다. 또 가족의 기능과 그에 따른 성 역할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낙인 찍기 시작했다.
섹슈얼리티 제약은 도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낼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이런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일탈적 성행위’가 훨씬 더 체계적으로 공격받았고, 그중에서도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과 성매매 여성 두 집단이 주된 표적이 됐다.
• 러시아 혁명과 독일 혁명이 보여 준 희망과 좌절
러시아와 독일에서 성 해방 투쟁의 승리는 급진 좌파와 더 광범한 노동계급 운동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묶여 있었다. 노동계급 운동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절정에 달했을 때, 성 해방을 향한 진보도 정점에 달했다. …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신생 노동자 정부의 첫 조치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 비범죄화였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을 낡은 법률과 미신의 압제에서 해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 혁명정부는 결혼을 간편한 등록 절차로 바꾸고 한쪽의 요청에 따른 이혼을 허가했으며, 동의연령을 성적 성숙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고 사생아에 대한 법률적 차별을 철폐했다. 1920년에는 낙태도 합법화했다. … 보육 시설과 공동 식당을 세워 여성을 고된 가사에서 해방했다. 성매매를 비범죄화하고 협동조합을 조직해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에게 집과 의료 혜택, 직업훈련, 다른 일자리를 제공했다. … 혁명 전에 남몰래 결혼한 두 여성은 결혼을 인정받았는데, 영국에서 시민동반자제도가 도입되기 88년 전이었다. …
1918년 11월 9일 마침내 베를린에서 수병, 병사, 노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황제는 도망쳤고 전쟁이 끝났으며 보통선거에 기초한 공화국이 선포됐다. 독일 전역에서 노동자평의회와 병사평의회가 생겨났다. … 동성애 하위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곳곳에서 동성애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의 급진적 분위기에 매료돼 몰려들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화장한 젊은 남성들이 쿠담 거리를 따라 거닐었다. … 어둑한 술집에서는 정부 관리들과 금융인들이 술에 취한 수병들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다정하게 구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그러나 노동계급 운동이 스탈린과 히틀러에게 짓밟히자 동성애자 권리 운동이 쟁취했던 놀라운 성과도 모두 재앙적 결과를 맞았다. 이런 패배를 겪으며 수백만 명이 살해당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는 혁명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축제로 기억하지 않게 됐다.
•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학살당한 동성애자들
나치는 심지어 죽음의 수용소에서조차 위계질서를 만들었다. 유대인, 사회주의자, 동성애자, 그 밖의 집단에 서로 다른 표식을 달아 식별했다. 남성 동성애자(분홍색 역삼각형)와 레즈비언(검정색 역삼각형)의 표식은 그들이 최하층임을 나타내려고 1인치 더 길게 만들어졌다. ‘프로젝트 핑크’가 진행돼, “동성애자는 제거 대상으로 분류됐고 수용소에서 삼중의 규율 아래 놓였다. 삼중의 규율이란 더 적은 음식, 더 많은 노동, 더 엄격한 감시를 뜻했다. 분홍색 역삼각형을 단 수감자가 아프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진료소 방문은 금지됐다.”
레즈비언은 수용소에서 성 노리개로 일해야 했고 거듭 강간당했다. 남성 동성애자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일하다 죽었다. … 강제수용소에서 수십만 명의 레즈비언과 게이가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 스톤월 항쟁과 새 운동의 탄생
1969년 6월 27일 밤 성소수자들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은 폭동이 일어났다. 이 폭동은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스톤월인이라는 술집을 경찰이 단속하면서 시작됐다. 스톤월인은 노동계급 레즈비언과 게이, 특히 이성 복장 착용자, 몸 파는 사람, 히스패닉과 흑인이 자주 찾는 비밀 술집이었다. 그들은 밑바닥 인생으로 취급받았고 괴롭힘과 부당한 대우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들은 맞서 싸웠다. 경찰은 술집 안에 고립돼 바리케이드를 쳐야 했고 사흘간 폭동이 이어졌다. …
며칠 만에 동성애자해방전선이라는 새 조직이 생겨났다. 창립 선언문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기존 사회제도가 철폐되기 전에는 아무도 완전한 성 해방을 누릴 수 없다는 각성으로 뭉친 혁명적 집단이다. 우리는 사회가 강요하는 성 역할과 우리의 본성에 대한 규정을 거부한다. 우리는 그런 역할과 단순화된 신화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 부패하고 억압적인 이 세상은 우리가 한 가지에 매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혁명이다.”
• 1984년 영국 광원 파업: 광원들과 동성애자들의 연대
1984년 초 대량 해고와 탄광 폐쇄 계획이 발표됐다. 3월에 전국적 파업이 시작됐다. 1년 동안 계속된 이 파업은 유럽 역사상 가장 큰 파업이었고 결정적 전투였다. …
광원들의 대의를 알리며 파업기금을 모금하던 몇몇 활동가들이 런던에서 ‘광원들을 지지하는 동성애자들’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다. …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집단이 공통의 적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단결이 구축됐다. 1984년 캠던에서 ‘광원들과 변태들의 무도회’가 열려 1500명이 참가하고 5000파운드의 파업기금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한 광원은 이 새로운 단결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여러분은 ‘실업수당이 아니라 석탄을’이라는 우리의 배지를 달았습니다. 여러분은 괴롭힘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러분의 배지를 달 것입니다. 여러분을 지지할 것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14만 광원들은 다른 대의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흑인과 동성애자와 핵군축에 대해 압니다. 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동성애자들을 지지했다. 사우스웨일스 블리넌트 지부 광원들은 1985년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에 현수막을 들고 참가해 빅레드 관악대의 음악에 맞춰 공식 자긍심 행진 현수막 뒤를 따라 행진했다. 같은 해 영국노총과 노동당 대회에 파견된 전국광원노조 대의원들은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는 정책을 공식 채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광원 파업 경험을 통해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와 사회주의자가 동성애자 권리를 확고히 지지하게 됐고 동시에 일부 레즈비언과 게이 활동가들은 노동계급 운동과 연대를 건설하는 일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이후 몇 년 동안 훨씬 더 많은 노동조합들이 동성애자 권리 지지를 표명하고 동성애자 모임을 만들게 된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무지개 나라의 적색
어떻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를 물리친 뒤 헌법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인정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잔혹한 백인 정권 치하에서 동성애는 7년 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였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과 혼외 성교가 불법이었고 군대 내 동성애자들은 전기충격요법과 성전환을 강요당했다. 남성들이 함께 춤을 추거나 어울리다가 발각되면 “성적 만족을 자극”하려 했다는 이유로 기소될 수도 있었다. …
1980년대 중엽부터 흑인 거주지 봉기와 점점 더 강력해진 노동계급 운동의 여파 속에서 성소수자 조직들이 새로 출범했다. 이 조직들은 처음부터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에 헌신했고 여러 활동을 통해 두 운동을 적극 연결했다. 그 과정에서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지도적 인물 여러 명이 커밍아웃했다. … 모든 사람이 이런 변화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동성애 혐오에 직면했을 뿐 아니라 성적 억압에 도전하는 것은 진정한 투쟁의 초점을 흐린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뿌리 깊은 억압과 인종 차별에 맞서 여러 대중운동이 연합하고 그 운동에 투신한 활동가들의 노력이 결합되면서 남아공 성소수자들의 상황이 바뀌었다. …
남아공에서 벌어진 일은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중 투쟁에 사회를 변혁할 힘이 있음을 강렬하게 보여 줬다. 그 투쟁에서 결정적 요소는 강력한 파업으로 경제 전체를 마비시킨 노동계급의 힘이었다. 그 힘이 결국 인종 분리 체제를 끝장낼 뿐 아니라 성 해방을 시작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남아공의 경험은 또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광범한 투쟁과 스스로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 준다.
• 중동 최초의 동성애자 조직 ‘헬렘’
레바논에서 중동 최초의 동성애자 조직인 헬렘(꿈이라는 뜻)은 … 처음부터 더 광범한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 2003년에 열린 대규모 국제 반전 행동의 날에 레바논에서는 처음으로 남성 동성애자들이 대중 집회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었다. 헬렘 활동가들은 “존재한다”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인디 헬렘”(마틴 루서 킹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를 본뜬)이라고 적힌 배지를 달았다. …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략했을 때 헬렘은 다시 한 번 전쟁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단체 활동의 중심에 두고 사무실을 난민과 구호 활동을 위한 지원 센터로 개방했다. 전쟁이라는 처참한 상황에서 헬렘은 종교 단체 등 다른 단체들과 함께 집과 삶과 사랑하는 이를 이스라엘 미사일에 잃은 사람들을 도왔다. 사람들이 협력하며 관계가 형성되고 동성애자 권리 단체로서 헬렘의 개입이 두드러지자 뜻밖의 사람들이 존경을 표했다. 헤즈볼라는 비공식적으로 헬렘의 구호 활동에 찬사를 보냈고 자유애국운동은 헬렘의 기여를 인정해 공로상을 수여했다. 이 시기 헬렘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와중에 일부 행사를 예루살렘에서 개최한 세계 자긍심 행진을 보이콧하는 국제적 활동에도 동참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성소수자의 천국이고 더 문명화됐다고 홍보하면서 레바논의 마을과 도시를 파괴한다. … 서구 활동가들이 ‘이슬람 파시즘’ 운운하고 곧이어 점령지 예루살렘에서 세계 자긍심 행진을 개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걸 보면 이들 일부가 이슬람 혐오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만 봐도 ‘경계 없는 사랑’이라는 자긍심 행진의 구호는 조롱거리가 된다.”
전쟁과 침략에 맞선 투쟁에 참여한 덕분에 헬렘은 더 광범한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와 관계를 맺고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서구에서 흔히 동성애를 유난히 혐오한다고 일축해 버리는 집단한테서도 말이다.
고백하자면, 저는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공익소송과 제도 개선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변호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은 개인의 권리구제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제도 밖 존재들의 제도 편입을 넘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 그 이상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연대, 자유, 평등. 성소수자 운동이 넓은 연대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배제’의 제도에 균열을 내고, 누구에게나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것. 노동조합을 불온시하고 정치∙사상의 자유를 위협하는 국가 폭력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저항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장서연(‘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위원회 위원장,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성소수자들이 잃어버린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은이는 역사 속에서 사랑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직면한 문제(“조직적 성소수자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알려 줍니다. 성소수자 운동이 하나의 쟁점만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연대의 확대와 계급투쟁이 성소수자 권리의 진전과 평등한 삶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급과 성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한국에서도 이어져야 합니다.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이루는 주거, 건강, 교육, 노동 같은 기본 문제에서 계급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설명하려는 노력, 이 책이 그런 ‘무지개 속 적색’을 바로 보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는 심각한 경제 위기의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서유럽에서 동성애 혐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고 러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동성애 혐오를 이용한 통치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국에서 혐오 범죄로 목숨을 잃은 성소수자가 2009년에만 8명에 달했다. 왜 성 해방 투쟁이 수많은 성과를 거뒀는데도 동성애 혐오가 사라지지 않을까? 지은이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한국에서도 2007년 이후 동성애 혐오 세력이 본격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지난 20년 동안 힘들여 성취한 작은 변화마저 빼앗으려는 혐오 세력의 활동은 걱정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보수 정치권과 보수 기독교 세력은 동성애 쟁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급기야 올해 혐오 세력은 1000여 명을 동원해 한국의 자긍심 행진인 퀴어퍼레이드를 가로막았다.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번역 출간 과정이 예상보다 지연됐지만 한편으로는 적절한 시기에 책이 나올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이처럼 늘어나는 동성애 혐오는 억압이라는 문제가 체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억압 문제를 다루는 데 왜 역사와 사회체제, 권력, 국가의 성격을 다루는 정치가 중요한지 보여 준다. 한국에서도 기성 정치권의 보수화가 혐오 세력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혐오 세력에 대한 공공 기관과 경찰의 너그러운 태도는 성소수자 운동이 국가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고민을 던져 준다. 무엇보다 혐오의 뿌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혐오에 맞설지 답을 찾으려면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독일의 경험이 말해 주듯, 진보는 필연적 과정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를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최근의 러시아처럼 속죄양으로 삼을지는 결정돼 있지 않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이 크게 성장했고 커뮤니티도 발전했다. 기성 정치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외면하고 있지만 적어도 진보 진영 안에서는 성소수자들이 운동의 한 축을 형성할 정도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 성소수자 운동에는 급진적 분위기가 강력하게 존재한다. 기성 정치권의 보수성이 이에 크게 한몫했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청중과 지지 기반을 급속히 확대해 왔다(이 경험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너무나 천대받는 소수자들이어서 늘 자원과 역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인지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억압에 대한 분석과 해방을 위한 전략 논의가 빈약한 실정이다. 이 책이 이런 논쟁을 풍부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쓰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해방의 사상이며 이를 위한 분석의 도구다. 마르크스주의는 해방을 꿈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영감과 확신을 준 자랑스런 전통이 있다. 현실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진 부끄러운 일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가 폐기되지는 않았듯이, 억압 문제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기여를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방이라는 전망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다. 하루하루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공문구임을 실감하는 사회에서 개혁과 변화에 대한 믿음마저 지탱하기 힘겨운 것이 사실이다. 일부 나라들에서 성소수자가 완전한 법적 평등을 누리게 됐다고는 하지만 멸시와 천대, 혐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혐오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삶이 파괴되고 말 그대로 ‘죽임’ 당하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체계적 차별과 혐오로 인해 누군가가 비극을 겪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과제는 끝날 수 없다.
물론 급진적 사회변혁의 전망은 현실의 구체적 실천과 연결돼야 한다. 한국 성소수자들은 거의 무권리 상태에 있다. 차별 금지와 비범죄화, 권리 획득이 모두 당면한 의제인 동시에 점증하는 혐오에 맞서야 할 상황이다. 이 책은 해방의 전망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 폭력에 맞서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다. 그들과 함께 이 책의 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하며 마르크스주의 억압 분석을 더 풍부하게 만들게 되길 바란다.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된 뒤에도 성소수자 의제는 세계 정치에서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 지난해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동성 결혼이 법제화됐다. 이런 나라들에서 성소수자의 평등권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처럼 보이고 전 세계 성소수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영감을 줬다. 아랍 혁명의 여파 속에 중동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도 했다. 레바논에서는 동성애처벌법에 반하는 판결이 잇달아 나왔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충격적이고 끔찍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국가가 주도하는 성소수자 탄압이 심각한 폭력을 낳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이 내전으로 치달은 우크라이나에서도 성소수자 속죄양 삼기가 횡행하고 있다. 우간다에서도 결국 사형 조항만 뺀 동성애처벌법이 통과됐다. 이집트 혁명이 위기에 빠지면서 성소수자 탄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모든 상황은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법률적 평등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성소수자들의 운명은 정치 일반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한국은 지난 몇 년 사이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가장 빠르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변한 나라다. 동시에 강경 우파 정권 아래에서 혐오의 목소리도 위험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힘겹게 찾은 자긍심이 모욕과 비난의 칼날 앞에 서 있다. 이 칼날에 맞서 우리를 지키고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사회운동의 전진이 절실한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로 체제의 실패가 여실히 드러났지만 지배자들의 후안무치는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다. 목숨보다 돈이 먼저인 이들에게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길 바라는 것은 무망한 일일 것이다. 의료 민영화, 전교조 탄압, 복지 삭감 등 민주주의와 삶을 파괴하는 공세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설 자리가 있을 리 없다.
다행히 지난 20년 동안 성소수자 운동은 인권·사회·시민 운동 속에서 든든한 동맹들을 구축해 왔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대의 성소수자들이 과거 세대와는 다른 조건에서 성장했다. 이들은 훨씬 더 당당하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긍정하며 평등한 미래를 꿈꾼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길에 대한 토론과 억압에 맞선 실천이 만날 때 때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2014년 7월 1일
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