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혁명이 오늘날 가능하다고?
2013년까지 임금이나 봉급을 받는 취업자의 수는 전 세계 인구 70억 8600만 명 중에서 15억 7500만 명, 즉 22퍼센트를 약간 웃도는 수준까지 증가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이것은 전 세계 총노동인구 약 30억 명의 50퍼센트를 약간 넘는 수치였다. 물론 이런 임금 취업자가 모두 노동자인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노동자였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에서 사회의 다수 비슷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규모 외에도, 프롤레타리아의 엄청난 사회적·정치적 잠재력을 보여 주기 때문에 중요한 요인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가 점점 더 대도시에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나라별 도시화 순위를 보면,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사는 나라가 30개국이 넘는다. … 임금노동이 확산되면서 개발도상국들에서 도시화 과정이 가장 급속하게 진행됐고, 아주 최근까지도 농촌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여러 나라들이 지금은 대체로 도시화했다. … 세계지도를 보면, 인구 5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69곳이고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도 26곳이나 된다. …
우리가 세계혁명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또 인류가 직면한 위기 때문에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세계 자본의 엄청난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이길 수 있는 사회 세력에 관해 이야기해야만 한다. … 그런 일을 조금이라도 해낼 수 있는 사회 세력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15억 명에 달하는 국제 노동계급이다(마르크스가 말한 “압도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 다수의 자주적 운동”).
• 제국주의적 충돌에 어떻게 맞서지?
오늘날 혁명가와 사회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하는 태도가 절대로 필요하다. 이 점을 잘 보여 주는 것은 전에 좌파나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이슬람 원리주의와 테러리즘의 위협을 핑계로 반제국주의 정치를 포기한 사람들의 유감스러운 궤적이다. …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거나 특히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포장된 [제국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에 전반적으로 순응하는 쪽으로 선을 넘어가는 것이고, 그 선은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넘어오기가 매우 어렵다.
또, 오늘날 세계에는 ‘지역적’ 충돌도 너무 많다. 그런 곳에서는 세계 제국주의를 이해하고 레닌주의 정치를 적용하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태도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 문제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근본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좌파든 아니든 모두 이 문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종교·인종·민족 차이에 따른 지역 분쟁으로 보고 양측이 서로 더 ‘관대하게 용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미국이 겉보기에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유대인의 로비 능력’ 탓이고 마치 유대인의 이해관계가 세계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양 설명하는, 따라서 반유대주의적 공상이나 음모론과 직결되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 국가를 활용해 사회를 변혁한다?
《국가와 혁명》은 레닌의 모든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책이다. … 《국가와 혁명》은 개혁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를,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를,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가장 날카롭고 분명하게 분리했다. … 노동계급 운동의 목표는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이나 제2인터내셔널 소속 정당들이 주장했듯이 사회주의 정당이 의회의 다수를 획득해서 국가를 통제하고 그래서 사회를 사회주의적으로 변혁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3인터내셔널 소속 정당들이 주장했듯이 노동계급의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조직해서 노동계급이 의회를 포함한 기존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그것을 ‘소비에트’ 국가, 즉 노동자 평의회에 바탕을 둔 국가로 교체하는 것인가? …
의회나 군사적 수단으로 국가기구를 인수하는 전략에서는 상층의 지도자들이 국회의원이든 게릴라 지도자든(알렉시스 치프라스나 피델 카스트로) 능동적이고 지배적인 구실을 하는 반면 노동계급 대중은 [수동적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구실만 한다. 이와 달리 ‘국가를 분쇄하는’ 전략은 아래로부터 대중행동과 주도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수의 힘으로 경찰을 거리에서 물리치고 경찰서를 점령하고, 병영으로 가서 사병들을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만들고, 각 지역을 통제하는 지역위원회를 구성하고, 버스와 기차 등등을 징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해내려면 봉기한 노동계급이 작업장과 지역사회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 레닌주의 정당은 권위주의적 조직?
볼셰비키 당내에서는 철학부터 전술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이견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레닌이 당내 표결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흔했다. 예컨대, 1907년 두마 선거에 참여하는 문제에서 그랬고, 1910년 멘셰비키와 통합하는 문제에서 그랬으며, … 1917년 11월 제헌의회 선거를 연기하는 문제에서 그랬다. 레닌은 여러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지만, 그것은 오직 격렬한 논쟁 과정에서 자신의 견해로 다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 예컨대, 1917년 4월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노동자 권력으로 나아가는 문제에서 그랬고, 1917년 10월 무장봉기를 시작하는 문제에서 그랬으며, 1918년 1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문제에서 그랬다.
• 레닌이 차별 문제에 무심했다?
여성 억압이나 인종차별 등을 극복하고 뿌리 뽑으려면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는 레닌(주의자들)의 견해는 너무 자주 여성이나 유색인종 등은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거나 아니면 혁명과 함께 여성차별과 인종차별은 ‘자동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로 곡해돼 왔다. 그러나 레닌(주의자들)의 견해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레닌이든 어떤 진지한 레닌주의자든 여성이(또는 억압받는 다른 어느 누구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이 시작될 것이고, 이 투쟁들은 혁명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것은 단지 완전한 평등을 달성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일 뿐이다.
•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를 낳았다?
실제로 소련의 사회·정치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혁명 초기나 레닌의 정책과 유산 가운데 스탈린 체제가 짓뭉개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스탈린주의는 레닌주의의 연속이나 완성이 아니라, 반혁명적 부정이다. 그리고 더 광범한 맥락에서 보면, 스탈린주의는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승리, 1926년 영국 총파업에서 절정에 달한 영국 노동자 운동의 패배, 1923년 아일랜드 혁명의 패배, 1927년 중국 혁명의 참패, 무엇보다도 1933년 히틀러의 승리를 포함한 국제적 반혁명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