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을 아시나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의 투표권과 노조 결성권 그리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서 유래합니다.
당시 여성이고 이민자이며 대부분 10대인 어린 노동자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초착취 의류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심지어 18시간 동안 일해야 했습니다. 겨우 10살 남짓한 아이들도 위험한 기계에 아슬아슬 매달려 일했습니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은 더 나은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남성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것(‘빵’)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표할 권리(‘장미’)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마침내 1909년 여성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1909년 (‘2만 인의 반란’으로 알려진) 13주 동안의 파업에서 절정에 올랐습니다.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됐습니다.
독일의 혁명가 클라라 체트킨은 1910년 제2인터내셔널 국제노동여성회의에서 해마다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할 것을 제안했고 1911년부터 경축되기 시작했습니다. 1915년까지 매년 유럽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조직됐고 제1차세계전이 발발해 시위가 금지당할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세계 여성의 날’은 1917년 러시아에서 경축됐습니다. 1917년 3월 8일(러시아 구력으로 2월 23일)에 벌어진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는 위대한 2월 혁명을 촉발했습니다. 그리고 10월 혁명을 통해 여성해방의 커다란 장을 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고 이혼이 완전 자유화됐습니다. 여성의 일할 권리가 법제화됐고 동등한 임금이 지급됐으며 전면적인 유급 출산 휴가제가 도입됐습니다. 공동 식당, 공동 세탁소, 탁아소, 유치원 등 그 동안 여성을 짓눌러 왔던 가사 노동을 사회가 책임지는 조치들이 시행됐습니다. 이런 조치들은 당시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조차 도달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콜론타이∙체트킨∙레닌∙트로츠키 저작선》에는 러시아의 여성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1920년에 쓴 글 “세계 여성의 날”이 실려 있습니다.
콜론타이는 이 글에서 여성의 날은 어떻게, 왜 조직됐는지,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당시 러시아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 시기에 여성 노동자들의 새로운 과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말합니다.
이 글이 쓰인 이후 여성의 삶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여성의 지위 또한 개선돼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도 여전히 여성 차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평등을 위한 투쟁의 날로서 ‘세계 여성의 날’이 갖는 의미는 오늘날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러시아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쓴 글을 읽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시길 바랍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콜론타이∙체트킨∙레닌∙트로츠키 저작선》에는 그 밖에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쓴 중요한 글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성과 계급투쟁”, “여성 문제의 사회적 토대”, “공산주의와 가족”이 그것입니다. 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격변기에 활동하며 사회변혁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클라라 체트킨, 블라디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가 여성해방에 관해 쓰거나 연설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여성해방을 위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통찰과 실천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 근본적 사회변혁과 여성해방을 향한 투쟁에 영감을 불어넣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