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정전협정이 보여 준 것
2023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1945년 이후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수백만 명이 희생됐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남과 북에 서로 증오하며 적대하는 체제가 수립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를 두고 지금까지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보는 관점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는 한국전쟁을 “공산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보며 한·미·일 동맹 강화의 근거로 삼습니다. 얼마 전에는 1950년 말 장진호 전투의 승자가 미군이었는지 중국군이었는지를 놓고 한국 대통령 윤석열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직접 설전을 벌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
최근 한국에서 처음 완역 출판된 미국 학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은 이 전쟁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한국전쟁은 일제 강점기에 그 기원이 있는 한반도 내부 갈등(계급 갈등, 항일·친일 갈등, 남북 갈등)이 냉전과 맞물린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커밍스의 책은 한국전쟁의 진정한(주되고 지배적인) 성격을 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 점에서 책갈피 출판사가 2020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출판한 《최근 한국 현대사》를 함께 읽는 것이 유용할 것입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이 미·소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힘겨루기가 낳은 비극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줍니다.
역사유물론으로 보기
이 책의 부제는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인데요. 어떤 전쟁의 성격을 분석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무도 베트남전쟁을 누가 시작했느냐고 묻지 않는다. 설사 미국이 아니라 베트남이 먼저 시작했더라도, 베트남전쟁이 제국주의에 저항한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전쟁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취할 수 없다. … 전쟁 발발 이전에 형성된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 제국주의 국가가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상황, 노동계급 운동에 대한 공격 등 정치적 맥락을 봐야 한다. … 한국전쟁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과 소련 두 제국주의 사이의 경쟁이라는 맥락을 봐야 한다.”
정전협정이 보여 준 것
정전협정은 그 자체로 이 전쟁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며 한반도 전체를 휩쓴 전쟁은 1951년 5월경, 전쟁이 처음 시작된 38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아무도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었죠. 그런데도 양측은 조금이라도 우월한 입장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2년여를 더 싸우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킵니다.
양측은 스탈린이 죽고 공포의 핵 균형 때문에 긴장 완화 조치(데탕트)가 필요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1953년이 돼서야 전쟁을 끝냈습니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시작한 것도 끝낼 수 있었던 것도 미국과 소련이었고 한반도 주민들은 전쟁의 피해자였을 뿐임을 비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한국전쟁을 낳은 제국주의는 오늘날 그 양상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국이 북한을 계속 압박하는 이유는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이라는 큰 틀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체제에 맞서야 한다고 이 책은 역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