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해법’에 이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서도 일본 정부 편을 들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습니다.
강제 동원 ‘해법’ 합의가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내팽개친 것이라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과 묵인은 기업들의 이윤과 각국 지배자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저버린 것입니다.
매주 열리는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에서 이 문제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고, 민주노총도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섰습니다. 주요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들도 항의 행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책갈피 출판사는 이런 항의들을 적극 지지합니다.
민족문제?
그런데 이런 항의 운동에서는 민족주의가 지배적 정서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행위를 “친일·친미 매국”이자 “굴종 외교”로 규정하고 “민족의 이익(국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미·소 강대국에 의해 분단과 전쟁을 겪은 역사적 경험 탓에 우리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한국이 여전히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민족 억압의 감정을 느끼는 것과 민족 억압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강대국에 종속돼 있고 주권이 없는 나라일까요?
이는 반제국주의 운동의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전략 문제와 관련돼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은 민족문제를 깊이 다룬 마르크스주의 저작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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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지은이는 《민중의 세계사》로 유명한 크리스 하먼입니다. 하먼은 소련이 붕괴해 여러 민족국가로 갈가리 찢어지고 냉전 해체로 제국주의 질서가 재편되던 1992년에 민족문제가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 책을 썼습니다.
하먼은 민족이 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흔히 거주지·언어·문화·생활양식의 차이로 민족을 정의하지만, 이런 시도는 곧 벽에 부딪힌다고 말합니다. 실제 역사적 현실과 좀처럼 들어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먼은 “실체로서의 민족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단일한 통치권에 충성을 표하며,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동질적 시민집단이라는 이상에 기초해 있는 근대 민족은 자본주의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
그렇다면 민족적 단결이 아니라 “만국 노동자의 단결”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문제에 초연해야 할까요? 마르크스·엥겔스·레닌·룩셈부르크 같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하먼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일랜드 문제, 폴란드 문제,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격렬한 민족해방운동을 겪으며 어떤 토론과 논쟁을 했고 어떤 전략을 발전시켰는지 보여 줍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부분을 읽으며 변증법적 사고와 실천이 무엇인지 그 정수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에릭 홉스봄, 베네딕트 앤더슨 같은 현대의 학자들이 발전시킨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크리스 하먼의 이 숨은 걸작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