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왜 철학이 중요할까요?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날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생각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므로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기후변화 대책을 요구하면 전기 요금 인상이나 핵발전을 받아들이라는 협박을 받게 되죠.
사실 이런 주장의 바탕에는 지배자들이 수백 년 동안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갈고닦은 세계관, 즉 철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체계적이고 일관된 철학이 필요합니다.
책갈피 출판사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그런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을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함께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에 소개할 3권의 책은 모두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쉽게 소개하는 입문서이지만 접근 방식은 서로 사뭇 다릅니다. 독자 여러분이 자신에게 적합한 책을 고를 수 있도록 각각의 특징을 소개하겠습니다.
책갈피 추천 책 01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조지 노백이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에 쓴 고전적 입문서입니다.
당시 ‘사회주의’를 자처하던 소련은 전쟁 초기에는 히틀러와 불가침조약을 맺고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서 양비론을 펴더니, 히틀러가 약속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자 제국주의 열강인 미국·영국·프랑스와 서슴없이 손을 잡았습니다. “제국주의 간 전쟁일 뿐”이라던 제2차세계대전은 갑자기 “반파시즘 인민 해방 전쟁”이 됐고 미국·영국·프랑스는 “민주국가”가 됐습니다.
그러자 미국공산당 지도부(스탈린주의자들)는 자국 정부의 전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무쟁의 선언을 주도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던 많은 지식인들이 동요하며 저마다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이거나 자유주의자로 전향했습니다.
반면에 노백과 그의 동료들(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자국 정부를 돕기를 거부하며 유명한 1941년 미니애폴리스 트럭 노동자 파업을 이끌었고, 그 때문에 18명의 지도자들이 스미스법(미국판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돼 감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노백은 구속된 동료들을 방어하는 운동을 건설하려 노력했고, 동시에 1942년 뉴욕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설명하고 옹호하는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책은 그 강연을 토대로 쓴 것입니다.
형식 논리학에서 변증법적 논리학으로
논리학이란 올바르게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학교에서 흔히 배우는 형식 논리학과 헤겔과 마르크스가 발전시킨 변증법적 논리학을 모두 설명해 주는 보기 드문 책입니다. 형식 논리학이 무엇이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16~19세기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며 등장한 변증법적 논리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 책은 학교 교과서와 달리 따분하고 일방적이지 않으면서도 논리학 자체를 정공법으로(즉, 철학적으로) 매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입문서로도 좋지만 독자 여러분이 논리학을 주제로 글을 쓰거나 발표할 때에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책갈피 추천 책 02
이 책의 지은이 R S 바가반은 스리랑카의 변호사라는 독특한 이력의 마르크스주의자인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자연과학(이나 문학작품)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아주 독특한 책을 완성해 냈습니다.
한국어판을 감수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최무영 교수가 썼듯이, 이 책은 “자연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를, 마르크스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다루는 책은 연대기적 서술 방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앞의 책도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신들보다 앞서거나 동시대인 다른 사상가들에게서 배우고 또 그들과 논쟁하면서 자신들의 사상을 발전시켰기 때문이죠.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잊힌 오래된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법칙들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습니다. “변증법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그 예는 무궁무진”하죠.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에요.
현상을 맥락 속에서 이해하기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은 불완전하고 따라서 의미 없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시간과 공간을 명시했을 때만 뜻이 있다. …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의 수학을 발전시킨 헤르만 민코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간과 별개로 공간을 인식하거나 공간과 별개로 시간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상들을 그 맥락에서 떼어 내어 병렬한다면 시대착오나 모순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십중팔구 세르반테스가 그의 유명한 소설(1604년)에서 맨 처음 사용했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돈키호테는 기사들의 무사 수업이 사회의 모든 경제 형태와 공존할 수 있다고 잘못 상상한 대가를 오래 전에 치렀다.’”
책갈피 추천 책 03
다음은 국내에도 10여 권의 책이 출판돼 있는 존 몰리뉴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철학에 초점을 두면서도 주로 활동가들을 겨냥해 썼다는 점”입니다. 몰리뉴는 활동가들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활동가가 운동을 지휘하고 지도하는 데 더 깊이 관여할수록(특히 투쟁의 중요한 분수령에서), 그 활동가의 세계관이 얼마나 일관되고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가 시험을 겪게 되고, 따라서 철학 문제가 더 중요해진다. … 실천적 경험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알고 있으면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 1914년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이 제1차세계대전을 배신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레닌이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논리학》을 다시 탐구한 것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활동가들에게 최적화된 철학 입문서
그래서 이 책에서 몰리뉴는 주로 활동가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많이 듭니다. 예컨대, 변증법적 사고를 설명할 때는 (일찍이 레닌과 볼셰비키가 고민했던) 혁명가들의 의회 선거 참여 문제와 공동전선 정책을 사례로 듭니다.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선거 참여(나 비판적 투표)를 원칙적으로 거부해야 할까요? 부패하고 기회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결별한 혁명가들은 이제 그들과의 어떤 협력도 원칙적으로 거부해야 할까요? 그리고 당시에 레닌과 볼셰비키가 내린 결론은 지금도 유효할까요?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흔히 ‘철학적’ 주제로 여겨지지 않는(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철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들도 빠짐없이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증법, (역사)유물론, 소외뿐 아니라 착취, 계급투쟁, 자본주의의 모순도 다룹니다. 인간 본성, 진리, 이데올로기, 종교, 도덕, 정의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을 다루는 부분이나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 하트, 네그리, 스탠딩, 지젝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그 장단점을 따져 보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