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소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입니다. 그의 사상을 기초로 한 실험은 실패했다거나 그의 사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한 오늘날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시각이 흔한데도 말이죠. 오히려 그의 통찰과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고 설득력 있기 때문에 그런 각양각색 악담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를 접해 볼 마음이 생겼더라도 뭐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한 적이 있지 않나요? 《자본론》 같은 원전을 집어 들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자기 맘대로 해석한 것 같은 얄팍한 책은 꺼려지는 독자들에게 입문서로 제격인 책 두 종을 소개합니다.
미국 사회주의자 폴 더마토가 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 미국 사회주의자가 들려주는 공산당 선언부터 기후 위기까지》(2021)와 영국 사회주의자 크리스 하먼이 쓴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2019)입니다.
두 책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둘 다 주간신문에 실린 연재 기사를 출발점으로 하는 책입니다. 더마토와 하먼은 청년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쉽게 설명할 목적으로 연재 기사를 쓰고 책으로 묶었습니다. 두 책은 학술적이지 않습니다.
둘째, 더마토와 하먼은 둘 다 현실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실천한 혁명적 사회주의자입니다(하먼은 2009년 이집트를 방문해,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활동하는 현지 사회주의들에게 강연을 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눈앞의 현실을 해석하고 설명하려 부단히 애쓰는 가운데 계속해서 실천에서 비판적 검증을 거치며 발전하는 사상이 아닐까요? 두 저자는 운동과 투쟁 속에서 현실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발전시킨 마르크스주의를 소개합니다.
책갈피 추천 책 01
#총망라 #최신_사례 #풍부한_원전_인용 #대용량_이유식 #아쉬운_휴대성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는 본문이 624쪽인 꽤 두툼한 책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경제학부터 노동계급의 잠재력,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제국주의와 전쟁,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과 환경 문제에 관한 분석까지 총망라합니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이후 더 깊은 탐구를 위한 기초 체력은 준비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의 원서는 초판이 2006년에 나왔습니다. 옛 소련의 붕괴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가 선언된 지 10년도 안 된 1990년대 말에 “이윤보다 인간 먼저”라는 구호를 외친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고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맞서 전 세계에서 반전 운동이 펼쳐진 직후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 대폭 증보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사이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고, 아랍 혁명, 점거하라 운동,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등이 일어났습니다. 그 속에서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늘어났습니다. 이 책은 그런 청년들에게 널리 읽혔고 터키·중국·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출판됐습니다.
이 책의 특장점 1: 최신의 사례와 논의를 담았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의 특장점은 비교적 최신의 사례와 논의를 다룬다는 점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특히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각종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의 심각성이 점점 피부에 와닿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차별과 생태 위기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도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과 관련해서는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과 자연 사이 “신진대사의 균열” 개념이나 자본주의적 농축산업의 문제에 대한 통찰 등이 발굴되고 연구됐는데요. 이 책은 그런 논의들을 반영했습니다. 아무리 입문서라고 해도 철학과 경제학은 아직 어렵게 느껴지는 독자는 차별과 생태 위기를 다룬 이 책 11장과 12장을 먼저 읽고 앞으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듯 싶네요.
이 책의 특장점 2: 원전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해설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의미》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원전을 풍부하게 인용합니다. 어느 30대 노동자 독자는 국유화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관해 인용된 엥겔스의 말 보시고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기셨습니다. “풍부한 인용 덕분에 … 엥겔스가 … 독자에게 직접 설명해 주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두께와 무게 탓에 솔직히 휴대성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며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대용량 이유식 같은 책이니, 책상에 놓고 틈틈이 읽으시면 머지않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시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을 벌써 읽으신 20대 청년 독자는 자신의 SNS에 “금방 읽어요” 하고 소감을 남기셨습니다.
책갈피 추천 책 02
#마치_포켓북 #간명함 #홍삼_농축액 #꾸준한_복용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크리스 하먼이 쓴 책입니다. 하먼은 역사와 경제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통찰과 분석을 남긴 그야말로 대가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민중의 세계사》 등 20여 권의 책이 번역돼 소개됐죠.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는 아담한 책입니다. 작은 판형에 본문이 168쪽밖에 안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룻저녁에도 읽을 수 있고, 등하굣길이나 출퇴근길에 읽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왜 필요한지부터, 자본주의 체제는 어떻게 시작됐는지, 사회는 어떻게 변혁될 수 있는지 그리고 여성 차별을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까지.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이 궁금해할 13가지 질문에 답하는 이 책은 각 주제를 10쪽 안팎의 분량으로 간명하게 설명합니다.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의 원서는 초판이 1979년에 나왔고 그 뒤로 계속 업데이트되고 보완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9년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출간된 뒤 《쉽게 읽는 마르크스주의》 등으로 제목을 바꿔 거듭 출간돼, 지금까지 수만 부가 판매됐습니다. 현재 유통되는 책은 하먼이 2000년에 내놓은 제6판을 번역한 것입니다.
가시밭길 속에서 쓴 책
이 책 원서의 초판이 출간된 1979년은 혁명가들에게는 매우 힘겨운 시기였습니다. 1968년 반란으로 불린, 약 10여 년간의 세계적 투쟁 고조 물결이 퇴조하던 시기였죠.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데요. 그런 노동계급의 투쟁이 침체하는 상황이었으니 그 사상을 유지하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혁명적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던 1960년대 말에 일선에서 투쟁을 이끌었던 경험, 그 뒤 심각한 패배와 투쟁 침체와 분열 속에서도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려 분투한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진짜 마르크스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고 느끼려면
그렇기에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는 홍삼 농축액 같은 느낌입니다. 읽기 쉬우면서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고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시시때때로 꺼내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하먼 자신이 머리말에 썼듯이, “지면 제약 때문에 이 얇은 책에서는 오늘날의 세계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내용의 중요한 일부를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죠. 하먼이 책의 말미에 소개한 “더 읽을거리”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어느 독자가 남긴 소감을 소개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진짜 마르크스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고 느끼려면 필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