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쪽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 보여 준 것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황우석 실험실에서 나왔다는 소문에 개떼처럼 모여들었던 권력과 자본은 이제 그 파산 소식에 쥐떼처럼 흩어졌다. 이들이 도망친 자리에 남은 것은 피해자들과 약자들이다. 정작 반성해야 할 자들은 사라지고 반성의 알맹이는 빠진 채 “우리 사회전체가 반성해야 한다”는 공허한 책임론이 난무한다. 과학자들이 나서 학계의 풍토를 반성하지만, 정작 돈 되는 곳에만 예산을 지원하고 기초과학은 외면해 온 과학·산업 정책의 책임자들은 반성의 자리에 없다.
63쪽 인간과 질병, 그리고 생태계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전 세계적 감염병이 이제는 몇 년에 한 번씩 있을 정도로 흔하다. 동물 종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는 힘을 얻었고, 그것을 육종학 나아가 유전공학으로까지 발전시켰으며,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 냈지만 이 공장식 축산업은 변종 바이러스의 발생과 전 세계적 감염이라는 위협으로 인간에게 다가왔다.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가 이를 계속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이 자신의 머리에 대고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는 모양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눈앞의 이윤을 좇아 인간에 대한 위협을 무시하고 있다.
149쪽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은 이유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한 이유, 그리고 한국 정부가 그 쇠고기를 굳이 전면 개방해서 수입하는 진짜 이유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국 정부는 동물성 사료를 포기 안 하며 광우병 검사를 피한다. 미국의 거대 농식품 기업의 이윤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일부 기업은 자신의 이윤 때문에 수입 전면 개방을 원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미국과 한국 기업의 이윤에 국민 건강과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
186~187쪽 핵발전소와 우리 아이들의 나라
미국은 다른 나라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핵무기 개발용’이라는 비난을 대놓고 한다. 북한이나 이란이 대표적이었다. 그렇다면 그 외 다른 나라 ‘원전’이라고 다를까? 핵발전소를 ‘원자력발전’이라 부르든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 부르든 핵발전소는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핵폭탄 연료를 생산하는 곳이다. 핵발전은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즉, 핵폭탄과 원리가 같다. 다만 핵분열로 얻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이를 가능한 한 천천히 일어나게 하는 것이 핵발전이고 이 때문에 냉각장치가 필요하다. ‘파리를 잡자고 도끼를 아주 살살 휘두르는’ 것이랄까? 이 때문에 핵발전소는 사고가 나면 곧바로 인류에 대한 도끼로 돌변한다.
286~287쪽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된 수많은 질병 가운데 소아마비만 유독 ‘박멸’에 이르게까지 된 것은 바로 백신 개발자인 조너스 소크 박사가 특허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소크 박사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자 수많은 제약 회사가 특허를 양도하라고 부추겼지만 그는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며 주위의 권유를 뿌리쳤다. 지금 세계보건기구에 납품되는 소아마비 백신 1개의 값은 단돈 100원 정도다. <타임>이 소크 박사를 20세기 100대 인물에 선정한 까닭은 백신 개발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연구 성과를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함께 나눈 숭고한 사랑과 과학자 정신에 있었던 것이다. 소크 박사가 주목받는 것은 바로 오늘날 세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의약품 문제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의 가장 큰 보건 문제는 치료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데 있다.
327쪽 박정희가 건강보험의 아버지인가?
박정희가 건강보험의 아버지라고? 그는 사회운동의 위협으로부터 정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전혀 책임지지 않는, 살아나기조차 힘든 기형적 제도의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했을 뿐이다. 이 기형적 건강보험을 여러 번의 대수술을 거쳐 지금 모습으로 만든 것은 오로지 사회운동의 몫이었다. 건강보험을 낳고 키운 진짜 어머니와 아버지는 민중이었고, 또 앞으로 건강보험을 튼튼하게 키워 나가야 할 부모도 바로 이들이다.
395쪽 백남기 사망진단서 논란으로 본 전문가의 자율성
한국에서 지식인들이나 대학의 자율성이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확립돼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대학은 자본과 권력에 ‘자율적으로’ 봉사하는 곳이 되고 있다는 게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오늘 한국 사회의 학문과 지식의 자율성과 진리는 고고한 상아탑 속에서 지켜지고 있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은 학생들이 본부를 점거해야만 지켜진다. 우리 사회의 진리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노숙했던 시민 지킴이들의 고단한 잠자리에서 지켜진다.
431쪽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건강 수칙을 지키는 것인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노동자는 기업주와 부유층보다 두 배는 많이 죽고 10년이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먼저 하직해야만 한다. 이것이 숨김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한 가지다. 노동자의 몸과 건강과 생명이 자본의 이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노동자가 기계나 소모품 취급받지 않도록 하는 투쟁, 그리고 의료보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그 방법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 그것은 건강 수칙의 준수 이전에 노동자의 건강을 저해하는 사회적 원인과 제도에 맞서는 투쟁이다.
470쪽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춰라!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는 8월 16일 가자 지구 하수구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백신 접종을 위해 7일간 휴전을 요청했다.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몇 시간후 생후 10개월 어린이가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 알려졌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 소식에 즉각 반응했다. 그들이 휴전을 했나? 그들이 백신을 놓아 줬나? 아니다. 그들은 곧바로 가자 지구에 침공한 이스라엘 장병들에게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했다.
521쪽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증세를 뜻하나?
보편적 복지가 곧 보편적 증세로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복지 제도가 성립된 역사를 놓고 보면 복지 제도의 도입은 대중의 직접행동과 이를 이끄는 진보적 정치세력의 주도를 통해 이뤄졌다. 즉, 고전적 의미에서의 ‘계급투쟁’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즉 복지국가의 성립은 사실상 자본가계급의 자산(혹은 소득)이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에게 이전된 것이다. … ‘사회연대전략’이 자본가들에게 사회를 위한 부담을 강제해 사회연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귀결되면 정치적으로 노동자들은 세력화를 이룰 수 없다. 오히려 사회연대는 노동자들의 당장의 구체적 요구들을 중심으로 단결을 이루고 이들의 정치적 결집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진보진영에서의 ‘복지국가’ 논의가 노동자계급 내 분배 논의로 한정되는 것은 진보정당의 기반이 없는 한국에서는 복지 제도의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571쪽 복지 확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누가 돈을 더 내야 하느냐? 자본이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부자에게 세금을, 서민·노동자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는 정당하다. 복지국가는 그런 것이다.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내야 한다. ‘서로 조금씩 도와 계 타자’ 하는 식으로 복지국가를 말해선 안 된다. … 나는 이렇게 복지국가와 ‘계’를 착각하는 논리는 곤란하다고 본다. 노동자들은 내려야 낼 게 없다. 돈을 좀 더 내면 낸 만큼 좀 더 받는 거 아니냐고? 이런 식으로 복지 제도가 이뤄진 적이 없다. 복지제도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아름다운 연대 정신”으로 만든 것도 결코 아니다. 독일의 … 비스마르크조차 말했던 것처럼, 첨예한 계급투쟁 속에서 사회복지 제도가 생겨났다. 거대한 노동자계급의 운동과 혁명, 이런 것이 한 대륙을 휩쓸고 지나갈 때 사회복지 제도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