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Marxism and Women’s Liberation

주디스 오어 지음 이장원 옮김 2016-07-29 440쪽 16,000원 신국판 9788979661194 책갈피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왜 아직도 차별받을까? 왜 여성은 유리 천장을 넘어서기는커녕 저임금의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왜 여성운동이 거둔 성과가 공격받고 있을까? 이 책은 여성운동이 이룬 성과와 후퇴, 새로 등장한 문제와 모순을 검토하고 여성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분석과 전략을 내놓는다.

지은이 주디스 오어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로 여성 차별에 맞서 투쟁해 왔을 뿐 아니라 여성운동의 여러 쟁점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에 참여해 왔다. 이 책에서도 페미니즘의 이론(가부장제, 정체성 정치, 특권 이론, 퀴어 이론, 이중체계론, 교차성, 사회재생산 등)과 쟁점(임신중절권, 가사노동, 외설 문화, 포르노, 성매매 등)을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매우 논쟁적으로 다룬다.

본문 중에서

•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왜 아직도 차별받을까?

여성은 전 세계 부의 고작 1퍼센트만 소유하고 있다. 운이 좋아서 돈을 벌 수 있더라도 남성보다 30퍼센트 적은 임금을 받는다. … 여성은 전 세계 문맹자의 3분의 2를 차지해서 4억 9300만 명의 여성이 문맹이다. 그렇지만 여성 억압이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억압과 대상화를 통해 천대받고 때로는 학대받는다. …

지난 10년 동안 여성해방의 정치에 관한 사상과 활동에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여성운동이 이룬 성과와 후퇴, 새로 등장한 문제들 간의 모순이 커진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다. 많은 정치인, 지식인, 저술가는 현 체제 내에서 해답을 찾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새롭게 정치화한 많은 젊은 활동가들은 자본주의 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부 여성이 상층부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억압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성 평등에 대한 드높은 기대를 품고 자라난 세대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의지도, 능력도 없다.

• 농경, 계급, 여성 억압

쟁기, 수로, 저수지 등은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엄청난 생산성 증대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발전은 고된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일에 종일 종사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밭을 일굴 수 있는 노동력이 더 많이 요구되면서 아이를 더 많이 낳는 것이 갈수록 중요하게 여겨졌다. 여성은 더 자주 임신하게 되고 아이에게 수유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전처럼 자주, 멀리 이동할 수 없었다. 여성의 노동은 이전에는 주된 영양 공급원이었지만 이제는 집단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점차 부수적인 일이 돼 갔다. 그래서 재생산(이제 여성은 여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됐다)과 잉여 생산(점차 남성이 통제하게 됐다) 사이의 분리가 일어났다.

잉여를 생산한 자들이 잉여의 사용도 통제했고 결과적으로 집단 내에서 권력을 쥐게 됐다. 잉여 창출 덕분에 집단 내의 일부 구성원은 매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

경작지든, 가축이든, 곡식이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일부 남성들은 이제 역사상 최초로 부를 자손에게 상속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일부일처제는 남성이 자신의 부를 ‘친자식’에게 물려주도록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주목받았으며 이후에는 보편적 제도로 시행됐다. …

유랑 생활에서 자녀의 수가 제한된 것과 달리 여성이 낳는 자녀의 수는 늘어났으며, 그에 따라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필요 사이의 상호작용”이 발전했고 이것이 분업의 변화를 낳았다. 즉,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의 바로 그 시점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 최초의 위계질서와 계급이 등장하고, 정착 농경이 이뤄지고, 처음으로 잉여가 창출된 바로 그 특정한 상황에서 생물학적 요인이 잠시 중요해졌다. 인간은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이 전체 사회와 가정에서 하는 일의 중요성은 변해 갔고 이런 물질적 변화는 결국 여성의 주변화를 고착시켰다. 이것은 새로운 가족 구조 내에서 여성의 역할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 자본주의에서 가족의 구실

가족은 단순히 계급사회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다. 가족은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지배계급은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가족의 구실을 증진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 가족제도는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통해서 자본축적이라는 목표에 기여하는데, 두 구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 여성과 남성이 가정에서 하는 무보수 노동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양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배계급에게 엄청난 가치가 있다. … 가족 이데올로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게 만들며, 만약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면 사회를 탓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부족 탓이라고 믿게 만든다. 이것을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은 1987년에 보수당 총리 마거릿 대처가 《우먼스 오운》이라는 잡지와 한 인터뷰다. “사회라는 것은 없습니다. 개인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이 있는 거죠. 정부는 사람들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 1960년대 미국 여성해방운동의 탄생

당시에는 좌파에 대한 부정적 낙인이 워낙 컸기 때문에 여성해방운동과 구좌파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미국 여성의 소외와 억압의 정서를 최초로 표현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베티 프리던은 개인적 경험에 대해 쓸 때 자신을 평범한 중간계급 가정주부 출신으로 묘사했다. 그녀는 자신이 노동조합 간행물에 계급, 인종차별, 여성 노동자를 주제로 오랫동안 글을 쓴 노동운동 저널리스트였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1960년대 미국에서 공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런 좌파적 전통, 특히 여성 억압을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전통은 대체로 간과됐다. 한 페미니스트 역사가가 썼듯이 “신좌파는 처음에 성별 관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부족했다. 실로 이것은 구좌파와 신좌파 사이의 커다란 단절 때문에 발생한 불행한 결과 중 하나였다.” 과거 공산당에서 활동했고 그 후 신좌파에도 참여한 활동가인 바버라 엡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학생연합에서 “남성 우월주의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비웃음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

블랙파워 운동의 주요 활동가 중 한 명인 스토클리 카마이클이 한 무리의 활동가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 카마이클은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졌다.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뭔데?” 그러고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악명 높은 발언을 했고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에서 여성의 유일한 지위는 엎드린 자세뿐이야.” …

투쟁으로 정치화된 많은 여성들은 억압과 불평등에 관한 논쟁을 하며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에서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자신들의 경험이 운동 안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에 낙담과 분노를 느꼈다. … 이 한 무리의 여성들로부터 미국 전역을 강타한 운동이 성장했고 유럽에서도 비슷한 운동들이 일어나게 됐다. 여성해방 ‘의식 고양’ 모임들이 생기고, 시위가 조직됐으며, 여성 억압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에 도전하려면 어떤 정치적 사상과 행동이 필요한지를 다루는 서적·소책자·문건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 1936년 스페인 혁명의 경험

1936년 스페인 노동자들은 파시스트 독재자인 프랑코를 저지하기 위해 봉기했다. 이 투쟁은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쳤다. 봉기 때 마드리드에서 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로사 베가는 의약품 준비를 마친 뒤에 밤늦게 귀가하곤 했는데,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굉장히 어두워서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자주 부딪혔어요. 그러나 저는 한 번도 희롱당한 적이 없었고 여자라는 이유로 불편을 겪지도 않았어요. 전쟁 전이었다면 이런저런 성차별적 언사들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완전히 사라졌죠. 여성은 더는 사물이 아니라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이고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사회주의 활동가인 마리아 솔라나는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이 유일한 여성인 상황이 자주 있었고 때로는 다른 청년들과 침대를 함께 써야 하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정말로 아무 일도요.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생겨나고 있었어요” 하고 말했다.

• 2011년 이집트 혁명의 경험

이집트는 성희롱이 만연한 나라지만, 여성들은 타흐리르 광장에서 안전하다고 느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어기고 있는 금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도시에서 밤늦게 밖에 나와 있는 것 자체도 여성에게는 금기였고, 수많은 낯선 사람과 함께 천막을 치고 며칠 밤을 보내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어느 날 밤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점거하고 행진할 때, 한 무리의 젊은 여학생이 나에게 혼자 있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기 있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대답했다. “아니요. 타흐리르는 이집트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에요.”

여성들은 보안경찰이 광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남성들과 함께 주요 거점을 지키며 검문검색을 했다. 무바라크의 깡패들이 광장 점거자들을 해산하려고 시도했을 때, 여성들은 돌을 깨서 카펫으로 굴려 시위대 앞으로 전달했다. 이것은 지배계급이 원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특히 무슬림 여성의 이미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무슬림 여성들은 스스로 해방을 위해 싸우는 주체로 여겨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나 타르히르 광장에서는 뭔가 달랐다. 거기서는 니캅이나 히잡을 쓴 여성과 둘 다 쓰지 않은 여성, 무슬림 여성과 기독교도 여성, 유대인 여성과 종교가 없는 여성, 그리고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고자 열정적으로 노력했다.

• 노동계급과 여성

노동계급은 여성을 구원해 주거나 여성을 위해 대신 싸워 주는 외부 세력이 아니다. 노동계급은 여성과 남성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흑인과 백인과 아시아인으로 이뤄져 있고, 성소수자와 이성애자로 이뤄져 있다. 노동계급은 다수를 위한 다수의 계급이다.

피억압자들은 노동계급이 후퇴하거나 전진할 때마다 이를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고, 다른 모든 피억압 집단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그런다. 노동계급이 성장할 때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개선된다. 노동계급이 패배하면(가장 심각한 경우는 독재나 파시즘 치하다), 여성의 권리도 짓밟힌다. 이것은 1931년 스페인 공화국에서 여성이 중요한 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임신중절과 피임의 권리도 쟁취했다는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36년 프랑코 장군이 파시스트 쿠데타를 일으키자 여성과 남성은 공화국을 수호하고자 함께 투쟁했다. 1939년 격렬한 내전 끝에 프랑코가 승리하자 그동안 여성이 쟁취했던 권리는 모두 상실되고 말았다. 파시스트 국가는 이혼, 임신중절, 피임을 불법화했다. 여성은 아이를 많이 낳으면 포상을 받았고 경제적 자립의 길은 가로막혔다.

요지부동이고 불가피하다고들 하는 사회구조에 맞서 남녀 노동자가 함께 싸우면서 얻는 경험은 투쟁의 영역을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장시킨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할 때, 그들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훨씬 더 큰 성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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