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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미국 어떻게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미국을 망쳤고 이제는 세계를 망치려 하는가 What's Wrong with America?

조너선 닐 지음 문현아 옮김 2008-08-20 384쪽 15,000원 신국판 9788979660555 03300 책갈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이 부유한 것은 아니다. 미국인의 무려 79퍼센트가 평균임금도 벌지 못한다. 이들이 미국의 노동계급이다.

이 책은 두 개의 미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모든 미국인을 탓하는 반미(反美)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벌인 수십 년간의 ‘내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들이 어떻게 인구의 압도 다수인 노동계급의 삶을 망쳤고 이제는 세계를 망치려 하는지를 조망한다. 또, 1999년 시애틀 시위가 보여 줬듯이 미국의 노동계급은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본문 중에서

미국의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이라는 단어를 좀처럼 쓰지 않는다. 193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이 단어를 사용했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 매카시즘의 빨갱이 마녀사냥이 이 단어를 지하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자신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체제에서 산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체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나름의 방식도 있다. 대결을 피하려는 방식이라 애매모호하지만 말이다.

지배계급에 관해 이야기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저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들은 또 다른 전쟁을 일으켜 우리를 수렁에 빠뜨리고 싶어 해.” “항의하려고 전화해 봤자 사람하고는 통화할 수가 없어. 저들은 언제나 자동 응답기만 들려 줘.” “저들이 모든 일자리를 멕시코로 넘겨 버리고 있어.” “저들이 의료보험 제도를 바꿔 버렸어.”

저들이 누군지는 다 안다. 저들은 내가 지배계급이라고 부른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저들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하고 물으면 그 사람은 대체로 대화를 멈추거나 얼버무릴 것이다. 또한 이런 맥락의 저들은 공개적인 글에서는 결코 쓰이지 않는다. 여러분이 이런 맥락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려고 하면 편집자나 교사가 당장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들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그 순간 여러분은 문장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들이라는 개념에는 또 다른 약점이 있다. 그 반대가 ‘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나 유럽에서는 많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과 부자들을 우리와 저들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미국에서는 ‘저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시각을 갖고 있지만, 같은 편인 ‘우리’라는 의식은 분명하지 못하다.(50~51쪽)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거대한 대중운동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의 노동조합운동은 1950년대의 빨갱이 마녀사냥에서 급진 진영을 잃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의 운동이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변화시켰지만, 노동조합은 허약했고 사회주의자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1960년대의 급진주의자들은 흑인은 흑인만을 위해 싸우고 여성은 여성만을 위해 싸우는 분리주의적 정체성 정치에 빠져들었다. 이 때문에 운동이 패배하고 말았다. 레이건이 당선되는 시점에는 1960년대의 저항 세력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노동조합만 홀로 남아 있었다.(53~54쪽)

평화운동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곳은 베트남에 있는 미군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사병들의 신문도, 공식적 조직도 없었고, 집회도 거의 전무했다. 그러나 1968년부터 사병들은 수색 정찰 명령을 받으면 장교와 하사관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사병들은 이것을 ‘프래깅fragging’이라고 불렀다. 장교 막사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많은 장교들이 수색 정찰 중에 등 뒤에서 총을 맞았다. 요점은 누구든 사병들에게 전투를 강요하는 장교는 벌을 주는 것이었다.

라몬트 스텝토는 1969년과 1970년에 제25보병사단의 장교였다. 그의 얘기를 들어 보자.

대체로 패턴이 있었다. 장교들이 사병들을 못살게 굴면 사병들이 경고를 보낸다. 잠자리로 돌아와 보면 최루가스 탄통이 놓여 있다. …… 그다음에는 부비 트랩이 설치된다. 걸려 넘어지면 그것이 진짜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세 번째는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장교들이 얼마나 살해당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육군 당국은 기지 내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로 수백 명의 병사들을 기소했지만, 많은 경우는 흐지부지됐으며 장교들은 대부분 정찰 중에 살해당했을 것이다. 적게 잡아도 장교와 하사관 합쳐서 1000명은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 결과 가장 먼저 해병대가, 그다음에 육군이 전투를 중단했다. 그들은 베트남에서 철수해야 했다. 베트남의 가난한 농민과 미국의 학생, 사병, 해병대원들이 결합해 미 제국의 권력을 물리쳤다.

프래깅은 모든 세대의 미군 장교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최근 20년간 국방부 책임자였던 콜린 파월이다. 그는 베트남에서와 같은 반란을 결코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시의 국무장관인 파월은 1968년에 제46보병사단에서 복무했다. 팀 오브라이언은 같은 시기, 같은 사단의 사병이었다. 오브라이언이 속한 알파 중대의 일등상사는 백인이었다. 이 일등상사는 흑인 병사들을 후방에 배치하는 걸 거부했고, 흑인 병사들이 정찰 중에 그를 죽였다. 그 후 알파 중대는 새로운 연대장을 맞이했다. 도드 대령은 헬리콥터를 몰고 나가 공포에 질린 마을을 습격하는 전투를 즐겼다. 오브라이언은 훗날 이렇게 적었다.

이후 며칠 동안 공격 전투가 더 심해졌다. 우리는 도드 대령과 그의 헬리콥터 부대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야간공격 때 공병대가 도드 대령을 죽였다는 소식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다. 중위 한 명이 주도해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외우기 쉽고 즐거운 축가였다. “딩동, 사악한 마녀가 죽었네.” 우리는 멋진 화음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마치 성가대 같았다.

이때부터 파월과 국방부는 어디든 미군이 장기적으로 점령하는 것을 꺼렸다. 지금까지 지속되는 또 다른 효과는 ‘베트남 증후군’이다. 이것은 병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30년 동안 노동계급 미국인들은 자기 아이들이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위해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9·11 사건 이후 부시와 전체 지배계급은 이러한 저항을 드디어 극복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재빨리 이라크 점령 반대로 돌아선 것을 보면 이 ‘증후군’은 여전히 건재하다.(75~77쪽)

1973년의 첫 대규모 경기후퇴는 미국의 지배계급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신호였다. 1970년대의 나머지 기간에는 경기 침체가 지속될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지배계급은 사회를 서서히 우경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논쟁했다. 그러고 나서 1980년에 두 번째 전 세계적 경기후퇴가 닥쳤다. 이것이 자극제가 됐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미국과 세계를 더 불평등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1980년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한 해였다. 레이건은 1981년 1월에 취임했다.

레이건은 모든 지배계급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이른바 ‘테플론Teflon’ 대통령이었다. 레이건이 무슨 잘못을 하든 행정부의 고위 인사가 어떤 범죄를 저지르든 언론은 레이건을 감쌌다. 테플론 프라이팬처럼 레이건에게는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이 얼마나 제 스스로 정부를 이끌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어쨌든 그의 정부 전체가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광범위한 합의를 수행했다. 이 점에서 ‘레이건’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합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레이건’의 경제 프로젝트는 더 폭넓은 우익 캠페인으로 확산돼야 했다. 사회를 좀 더 불평등하게 만들려면 모든 면에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전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평등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서로 모순되는 생각들을 하거나 어느 정도까지는 직장과 가정에서 행동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이런 모순과 분리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일찍, 가장 친밀하게 경험하는 유대 관계다. 이 관계의 불평등은 우리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우리 몸에 각인돼 자리 잡는다. 이 때문에 부자들과 우파들은 매우 강력하게 ‘가족 가치’를 옹호한다. 그것이 뿌리 깊은 성 불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좌파와 가난한 사람들은 해방을 옹호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맥락에서 만일 여러분이 백인인데 그녀는 아니기 때문에 당신이 그녀보다 낫다고 여긴다면, 당신보다 돈이 많고 아름다운 사람은 당신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레이건 혁명’이 경제정책을 바꾸고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것이었다면, 그를 위해 지배계급은 1930년대와 1960년대 저항운동의 유산, 특히 노동조합, 공민권운동, 북부 흑인 게토의 반란, 반전운동, 여성해방, 동성애자해방운동을 깎아내려야 했다. 그들의 정책은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87~90쪽)

이처럼 결함이 많은 건강관리 시스템 때문에 1990년대 초 이래로 여론조사에서 압도 다수의 미국인들이 모든 사람의 치료를 보장하는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클린턴이 선거에서 국민건강보험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클린턴은 일단 취임하고 나자 채권 거래자들과 최고 경영자들에게 굴복했다.

클린턴 정부에게는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을 마련할 방법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보험회사들에게 더 많은 돈을 줘서 이 회사들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제공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연방 예산을 줄이기는커녕 확대하는 것을 뜻했다. 최고 경영자들이 반기지 않을 터라 클린턴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방법은 보험회사들을 우회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사람들의 임금에서 매달 돈을 걷어 직접 치료비를 지불할 수 있었다. 이는 보험회사의 이윤으로 들어갈 몫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회사들과 최고 경영자들이 클린턴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보험회사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린턴은 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 내내 빌 클린턴과 그의 건강보험 관련 교섭 대표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세부 계획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계획을 짜려면 위원회부터 구성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말 기묘한 이야기가 아닌가. 서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건강보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중 어느 하나를 모델로 삼으면 될 것이었다. 캐나다에도 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캐나다인은 결코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클린턴 부부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베끼기만 하면 됐다. 영어로 돼 있으니 누군가 국경으로 걸어가 복사본 한 부만 부탁해도 될 터였다. 그러나 클린턴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언론들은 클린턴 부부가 완전히 무無에서 건강보험 제도를 새로 창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말이 된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들은 수레바퀴를 다시 발명하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클린턴 부부는 예산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을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클린턴이 취임했을 때는 3700만 명이 의료보험이 없었다. 클린턴이 물러날 무렵에는 4300만 명으로 늘었다.

클린턴은 이 쟁점과 관련해서는 선거 논리를 따르지 않았다. 만일 클린턴이 건강보험 공약을 지켰다면, 미국인들은 이후 20년 동안 민주당에 투표했을 것이다. 클린턴은 유권자가 아니라 최고 경영자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정치인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들에게는 유권자보다 기업의 명령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가장 중요한 공포는 강간이다. 석방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학술 연구 조사에서 교도소에서 강간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14~23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과소 추정치일 것이다. 나는 영국에서 강간당한 남성들과 여성들의 상담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배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간당했다는 말을 하기까지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었다. 학술 연구 조사가 사람들이 말하기 꺼리는 것을 찾아내는 최상의 방법도 아니다.

그 조사 결과를 인정하더라도 현재 교도소에서 28만~46만 명이 강간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 현실적으로 추산해서 30~40퍼센트로 보면 60만~80만 명이 된다. 물론 출소 비율을 감안하면 지난 20년간 강간당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는 청소년 보호시설에 있는, 대부분이 남자 아이들인 70만 명의 아이들은 포함하지 않았다. 범죄 전문가들은 청소년 보호시설의 강간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따라서 남성 재소자 강간 피해자 수에 30만~40만 명의 소년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10대 때 강간당한 민간인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재소자들에게 강간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흔히 다른 사람에 의해 강간이 반복되거나 강간범이 피해자에게 계속 자신의 애인이 될 것을 강요한다.

교도소는 사람들을 망친다.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언젠가는 석방된다. 그들이 석방될 때 가지고 나오는 것은 대부분 공포, 수치심, 약간의 위협에도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 성적 사랑의 어려움이다. 강간당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남들에게 골칫거리가 될 만큼 아주 터프해지는 것이다. 잭 헨리 애벗은 ≪야수의 뱃속에서≫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를 교도소로 이송한 짭새들이 그러더군. 나를 교도소로 보내 애송이로 만들어 버리고 사나이 기질을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고 말이지. 내가 성기를 빠는 놈이 되면 고분고분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게지. ……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이미 교도소에서 한 명을 죽이고 또 다른 놈에게 상처를 입혔지. 나는 교도소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 나는 결코 애송이가 아니었으니까.

……교도소 내 강간은 처벌의 일환이다. 이것은 감옥이 재소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짓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여성 강간에 대한 논쟁과 아동 성추행에 대한 도덕적 공포가 전국적으로 번지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많은 소년들이 강간당하는 체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134~136쪽)

[여성은] 때로는 고전적 반동 영화 <치명적 유혹>에서처럼 사악한 존재로 묘사됐다. 이 영화에서는 나약한 남편 역의 마이클 더글러스가 글렌 클로즈가 연기한 자립심 강한 독신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남성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여성은 남성을 스토킹한다.

영화의 원래 결말은 우울해진 클로즈가 자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사회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자 결말을 새로 찍었다. 클로즈가 푸줏간용 식칼을 들고 더글러스의 집에 침입한다. 더글러스는 그녀를 욕조에 익사시킨 뒤 집안일만 하는 아내를 껴안는다. 물론 착한 아내는 그를 용서한다. 영화 속의 여느 괴물과 마찬가지로 클로즈는 죽지 않고 있다가 욕조에서 벌떡 일어선다. 결국 더글러스의 아내가 그녀를 쏴 죽인다. 관객들은 이 결말을 좋아했다. 아니, 관객 중 일부가 좋아했다. 팔루디는 이렇게 적었다.

1987년 10월 캘리포니아의 산호세 외곽에 있는 영화관에서 <치명적 유혹>을 상영하는 월요일 밤, 객석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 지난 6주 동안 매일 밤 매진이었다. 앞에 앉은 남자는 “저년의 얼굴을 갈겨 버려! 농담 아냐” 하고 마이클 더글러스에게 애원한다. 맞장구치는 소리에 신이 난 뒷줄의 남자는 한술 더 뜬다. “해치워, 마이클. 당장 죽여 버려. 그년을 죽이라고!”

상영관 바깥의 복도에서는 바닥 청소를 하던 10대 안내원들이 상영관 문틈으로 들리는 어른들의 고함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서로 쳐다본다. “도대체 왜들 저러는지 몰라” 하고 사브리나 휴스가 말한다. 그녀는 콜라 따라 주는 일을 하는 고등학생으로 어른들의 행동이 “정말 기괴하다”고 했다. “나도 가끔 상영관에 몰래 들어가 마지막 20분을 보곤 하는데, 모든 남자들이 소리를 질러요. ‘저년을 패 버려! 당장 죽여 버려!’ 여자들이 외치는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여자들은 숨죽이고 조용히 앉아 있어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치명적 유혹>의 감독은 영국의 CF 감독 출신인 에이드리언 라인인데, 그는 독신 여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여자들은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뭐랄까 보상을 받으려 해요. 슬픈 일이죠. 그런 일은 불가능하니까요. …… 나는 스튜디오에서 사장들과 지내면서 그걸 알았어요. 며칠 전에 무척 영향력 있는 여성 제작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녀는 자신만큼 성공하지도 못하고 영향력도 없는 한 남자를 을러대고 못살게 굴었어요. 그녀는 마치 그 남자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행동했어요. …… 그런데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하니까 훨씬 더 당황스러웠어요. 여성스럽지 않으니까요. 안 그래요? ……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세요. 지난 10년, 20년 동안 그들은 여성이 남성한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을 갖고 노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떠들어 댔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해방됐는지 모르지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죠. 그것은 뭐랄까 아내의 모든 역할, 아이를 키우는 역할 전체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물론 경력을 쌓고 성공은 할 수 있겠지만 여성으로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는 없을 거예요.

내 아내는 결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야망이 없는 사람이지요. 그녀는 정말 완벽한 아내입니다. 직장을 갖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나랑 같이 사는 거지요. 그야말로 환상적이지요. 내가 집에 가면 아내는 항상 집에 있습니다.(154~156쪽)

죽어 가는 과정은 힘겹고 길고 고통스러웠다.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수많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아주 담담히 그 길을 갔다. 나는 새로운 약들이 상용화되기 전에 런던에서 6년간(2년은 전화로 4년은 진료소에서) HIV 상담사로 일했다. 그 덕분에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를 배웠다. 이는 매우 평범한 일이지만 동시에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은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죽었다. 그들은 자신들 다음에 똑같은 죽음에 맞닥뜨릴 남성 동성애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소리치고, 숨지 않으며, 부끄러움 없이 죽어 가는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때때로 자신의 몸을, 그리고 늘 몸 안의 바이러스를 증오했을지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용한 은유는 자신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병사였고 죽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 다른 남성 동성애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친절로 화답했다. 사람들은 병문안을 가고, 얼굴을 보러 들르고, 소풍을 가고, 에이즈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 그들이 울면 보듬어 줬다. 동성애자해방운동 초창기에는 ‘동성애자 공동체(커뮤니티)’에 관해 떠들어 댔지만, 그것은 정치적 허구였다. 이제 그 공동체는 실체가 됐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한 행동이었다.(260~261쪽)

불길한 신호가 하나 있다. 2006년 말까지 미국에서는 저항과 소요가 커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파가 됐고, 사람들은 민주당이 이라크 전쟁을 끝내 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정치 기사들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선거운동에 집중됐다. 우리는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누가 정부를 운영할지를 물어 보라는 말을 들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기간에 기층 대중운동이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반전 시위도 없었고 대중적인 이민자 시위도, 기후변화 집회도 벌어지지 않았다. 민주당이 이 모든 운동을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당은 그러지 못한다. 운동이 침묵한 이유는 활동가들이 조지 부시를 문제의 핵심으로 여기고 부시를 미워하는 만큼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시위가 일부 유권자들을 소외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발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그 대신에 예컨대 거의 모든 평화운동이 득표 활동으로 전환했다.

이 때문에 오바마가 선거 이후 옳은 일을 할 가능성은 훨씬 낮아졌다. 그럴 압력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바마가 선거에서 이기면 그에게 기회를 주[고 지켜보]라는 압력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강력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위, 파업, 항의 운동 등 저항이 지속되고 더 활발해지도록 활동가들이 노력하는 것이다. 두 가지 핵심 요인이 그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하나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행동의 규모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바마를 지지했던 활동가들이 사기 저하할 것인지, 아니면 그를 넘어서고 결국에는 그를 비판하게 될 것인지 하는 선택이다. 나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지금까지 겪었고 앞으로 겪을 고통의 규모가 여전히 클 것이기 때문이다.(338~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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