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러시아 현대사 혁명부터 스탈린 체제를 거쳐 푸틴까지 Russia: Class and Power 1917-2000

마이크 헤인스 지음 이수현 옮김 2021-03-18 520쪽 22,000원 신국판 9788979662023 책갈피

소련 붕괴 30년, 소련은 어떻게 성장했고 왜 붕괴했나?
러시아 혁명과 소련 역사는 전체주의적 악몽이었을 뿐인가?
러시아의 과거-현재-미래를 새롭게 연결한다

소련이 붕괴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 역사를 돌아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소련의 붕괴가 곧 사회주의의 붕괴였는가, 러시아 혁명과 소련 역사는 전체주의적 악몽이었을 뿐이고 급진적 사회변혁이란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이해하는 데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중요하다.

이 책은 러시아 역사를 해석하는 보수적·자유주의적 관점을 반박하며 러시아 혁명의 흥망성쇠를 재검토한다. 그리고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사회주의였다는 통념에 도전한다. 또, 어떻게 혁명의 잔해 속에서 등장한 강력한 지배계급이 소련과 소련 붕괴 이후의 새로운 러시아를 지금까지 장악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이런 논의는 단지 러시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팬데믹과 경제 위기, 심화하는 불평등, 기후위기 같은 세계적 문제를 극복할 대안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책 말미에는 저자인 마이크 헤인스가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며 최근 20년 간의 러시아 상황을 분석해 쓴 후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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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p. 19~21 전체주의 이론의 약점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안에서도 전체주의 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소련군 장성이었다가 역사가로 변신한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의 사례는 유명하다. 그는 과거에는 체제 선전가이자 군사고문으로서 국내외에서 평판이 안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소련의 문서 보관소를 뒤져서 역사를 연구한 것은(전체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소련 역사를 서술한 것이 그 절정이었다) 과거에 체제의 충성스러운 하인으로서 저지른 악행, 그러나 잘못 인도돼 저지른 짓을 속죄하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체주의 이론은 그가 속죄하기보다는 사면받으려는 것을 도와준다. 그가 주장하듯이 만약 소련 체제가 전능했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체제의 피해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죽기 직전에 완성한 마지막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로는 소련공산당 서기장부터 아래로는 평당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레닌주의라는 소련 종교와 모순되는 것은 일절 용납하지 않았던) 볼셰비즘의 피해자였다.”

 

p. 50~58 러시아 혁명 시기, 새롭게 사회를 건설하려는 대중의 활동

1917년 혁명 과정의 한복판에는 평범한 러시아인들의 행동이 있었다. … 여성과 학생과 아이도 권리를 요구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재소자들을 조직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한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 당시는 거리에서, 길게 늘어선 줄에서, 전차에서 토론과 논쟁이 끊이지 않은 시기였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시는 사람들이 가입하고 참여하고 조직하는 시기였다. … 모든 활동의 최고 형태는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소비에트’, 즉 평의회였다. 소비에트는 공장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위원회의 대표들이 모인 기구였다. 이렇게 소비에트 구조가 건설되고 확산된 것을 보면, 러시아 혁명이 단지 파괴적 운동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질서는 붕괴하고 국가도 해체되고 있었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아래로부터 등장해서 그것을 대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p. 107~112 내전으로 피폐해진 노동자들의 삶

급변하는 전선의 뒤에서 혁명 러시아는 굶주림과 추위가 심해질수록 악화하는 사회적 재난에서 살아남으려고 분투했다. … 연료·식량·원료를 구할 수 없었으므로 공장은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굶주렸다. … 어떻게든 먹고살려면 노동자들은 가진 재산을 팔아서 식량을 구하거나 아니면 [공장에서] 훔치거나 직접 만든 상품을 농민에게 팔아서 식량을 구해야 했다. …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자 전에 비좁은 집에서 살던 가구들은 주거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수도관은 얼고 하수도도 얼어 터지고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은 방에 사람들이 부대끼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질병과 죽음만이 번창할 수 있었다. …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시체를 넣는 관 가격이 치솟았다. 부자들만이 관을 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관을 빌려야 했다. 관에 넣은 시체를 꺼내 땅에 묻고 나서 그 관을 다른 장례식장으로 가져갔다.

 

p. 171~173 계획 경제가 곧 사회주의인가?

직접적 방위비 부담이 가중되고 중공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농업을 쥐어짜고 사회 기반 시설을 쥐어짜고 무엇보다도 소비를 쥐어짜야 했다. 또, 농촌에서 노동자들을 끌어오고 여성 고용을 늘려서 노동력 투입을 엄청나게 증대해야 했다. 이런 변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국가가 강압력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

이후의 역사 내내 많은 좌파가 ‘소련에는 계획이 있다’는 사상에 매료됐다. 그것은 국가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달성할 제도를 계획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 만약 계획이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민주적이어야 한다. … 거대한 전문가 체제가 사람들을 최대한 쥐어짜서 효율을 높이는 것을 계획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 해방과 정반대다. 오히려 극단적 소외의 표현이다. …

[게다가] 스탈린 치하 소련에는 모종의 순수한 사회주의적 계획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계획 자체가 없었다. 기껏해야 어설픈 중앙집권적 지령이 있었을 뿐이다. … 모셰 러빈은 소련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과정이 엄청나게 즉흥적이었고, 주먹구구와 육감, 흔히 독재자의 변덕이 규칙이나 지침 구실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p. 225~227 반혁명과 공포정치

극심한 억압의 뿌리는 새로운 사회집단[관료들]의 권력 강화와 대규모 자본축적에 있었다. 그 과정이 너무 급속하고 충격적이어서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위에서 아래를 더 강력하게 통제해야 했다. 그래서 반대파는 철저하게 고립·분산시켜야 했고, 보통 사람들은 협박하거나 회유하거나 열광하도록 부추겨서 또 다른 요새로 돌진하게 만들어야 했다. …

그러나 이 위로부터 혁명에 억압과 공포정치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스탈린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의 이데올로그들은 과거에 관한 거짓말을 늘어놔야 했을 뿐 아니라, 그 과거에 대한 기억 자체도 파괴해야 했다. [스탈린의 반혁명이] 성공하려면 사상의 죽음과 그 사상을 상징하는 사람들의 죽음도 필요했다. … 위로부터 혁명으로 말미암아 [1917년 10월]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선임 당원들이 대규모로 파멸했고 스탈린 정권에 도전한 좌파가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은, 공포정치가 1917년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곤혹스러운 문제다. 심지어 1970년대에도 어떤 반체제 인사는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혔다(병원 진단서의 기록이다).

 

p. 356~365 저항 행동으로 체제에 균열을 낸 광원들

[소련] 노동자들은 1980년대 말이 돼서야 더 대규모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벌인 가장 중요한 투쟁은 1989년 광원 대파업이었다. … 이 파업은 페레스트로이카에서 중요한 단계였을 뿐 아니라, 구질서 아래서 차곡차곡 쌓인 분노가 절정에 달한 것이었고 구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의 진정한 지위가 어땠는지를 밝히 보여 줬다. …

광원들은 열악한 조건 가운데 어떤 것에도 항의할 권리가 없었다. 그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 도네츠크 지역 노조 위원장은 “그런 행동을 허용하는 법률이 아직 없으므로 오늘까지도 엄연한 불법 행위”라고 파업을 비난했다. 광원들은 ‘노동자 국가’에 저항하는 행동을 통해서만, 또 공식 노조 같은 ‘노동자 조직’들을 거부하는 행동을 통해서만 자존감과 존엄성, 자신감을 약간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그런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어야만 노동자들은 당시 존재한 체제와 나중에 들어서게 된 체제를 모두 거부하고 진정한 대안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쿠즈바스에서 [파업을 벌이던] 어떤 광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분이 좋다. 우리는 난생 처음 이런 일을 해 봤다.”

 

p. 407~408 옛것에서 새것으로 재빠르게 갈아탄 소련 지배계급

1989~1990년에 여러 분야에서 사실상의 민영화가 시작되면서, 이른바 ‘노멘클라투라 자본주의’가 생겨났다. 이것은 일종의 소련식 경영자 매수, 즉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 인수였다. … 경제의 전통적 핵심 부문들에서는 변화가 느렸고, 실제로 변화가 찾아왔을 때는 이미 직접 책임을 맡고 있던 자들이 더 많은 기회를 붙잡았다. 여기서 권력 전환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가스프롬과 그 밖의 원료·가공 회사들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변화에 동조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였고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경제] 보좌관을 지낸 아르카디 볼스키가 ‘러시아 산업 경영자와 기업인 연합’ 회장이 돼 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1991년 쿠데타 주모자들이 어느 정도는 기존 행정 구조를 고수하고 싶었던 이유는 대다수가 그 행정 구조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데타가 실패했을 때도 그들의 다수는 너무 늦지 않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예컨대, 모스크바 시당의 우두머리이던 유리 프로코피예프는 [쿠데타가 실패했을 때] “내가 자살할 수 있게 권총을 주시오” 하고 말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서 자기 지위를 이용해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p. 457~460 오늘날 러시아의 정치 상황과 대중이 처한 어려움

러시아의 공식 정치는 2000년 이후에 점점 더 엄격하게 통제됐다. … 공식 야당은 실질적일 때도 있지만 흔히 정권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래서 선거 결과는 정권이 원하는 대로 나오고 정치체제는 순응적이다. …

이 책의 8장은 어떻게 러시아 대중이 1990년대에 재앙적 붕괴로 말미암아 폭탄을 맞은 듯한 충격에 시달렸는지를 살펴봤다. 1990년대 초에 방향감각을 상실한 와중에 혼란과 절망을 배경으로 저항이 잠깐 분출했지만, 대중이 누구를 믿고 어떻게 조직해야 할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20년 동안 이 어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 구체제가 사회주의 사상을 이용해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

푸틴의 공식 지지율이 여전히 높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전보다는 떨어졌다. 2000년대보다 지금은 [정치적] 책략을 부릴 만한 경제적 여유가 훨씬 더 제한적이다. 또, 개인화한 권력은 항상 취약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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