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현대사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

김동철, 김문성 지음 2020-07-31 640쪽 28,000원 신국판 9788979661880 책갈피

착취와 차별에 맞서 싸운 역사

해방부터 코로나19까지 한 권에

한국 현대사의 큰 분기점인 1987년 이후 벌써 30년이 넘게 흘렀다. 그 30여 년을 두고 치열한 “역사 전쟁”이 벌어진다. 우파는 자신들의 대한민국을 차지하기 위해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중도파는 우파의 재집권을 견제하려고 괜한 공포심을 부추기며 나름으로 역사를 왜곡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10년간 집권하며 진보 염원을 배신한 것을 죄다 보수 우파의 훼방 탓으로 돌리고 좌파와 노동운동에 자제를 강요하면서 말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당시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교묘히 이용한다. 이 책이 들려주는 최근 역사와 투쟁의 경험은 중도파의 역사 왜곡에 대한 좋은 해독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권력자들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배운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행위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결단과 언행을 아는 것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권력자들의 의지가 언제나 관철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결심이 이리저리 바뀌기도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계급투쟁이 만들어 낸 변화는 이후 시기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하기 힘든지를 규정한다. 독자들은 역사의 진정한 동력인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면서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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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p 12~13

이 책은 자본주의 경쟁 질서와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가 사회 변화의 동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따분하고 고답적인 과정이 아니다. 역사유물론으로 설명하는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힘과 이해관계를 발견해 발휘하거나 그런 해방의 과정이 가로막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투쟁이다.

p 21

해방 정국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다. 세계적 강대국들의 경쟁 관계와 그 변화가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야 그 시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p 39

1948년 8월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진정한 해방을 바라고 격렬한 계급투쟁을 벌인 노동자·민중의 무덤 위에 친미적 성격과 노동계급에 적대적인 성격을 띠고 건설됐다. 노동계급은 이 ‘건국’에 어떠한 동질감도 느낄 수 없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아님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p 76~77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나?’ 하는 질문은 부적절한 질문이다. 한국전쟁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가 잘 지적했듯이, 누구도 미국 내전에서 남부군이 섬터 요새에 먼저 총을 쐈다는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체로는 그 전쟁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정책을 둘러싼 전쟁이었다는 점에 관심을 둔다.

p 86~87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형성되던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자 자국의 이익에 맞는 체제를 구축하려 했고, 이 경쟁의 심화 속에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했다.

p 110

4월혁명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식민지 해방과 좌파 민족주의 운동 물결의 일부였다.

p 120~121

이승만 정권의 붕괴 후에 내각제로의 개헌이 이뤄지고 7월에 선거가 다시 치러지면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 장면이 총리가 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중의 요구를 실현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 장면 정권이 들어서 내각이 구성됐을 때, 그 내각을 두고 ‘친일 내각’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

p 125

1961년 4월혁명 1주년에 이미 쿠데타냐 제2의 4월혁명이냐는 말이 돌고 있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결국 반혁명적 대안이 혁명을 파괴했다. 당시 부활하고 있던 노동운동과 좌파는 쿠데타를 저지하고 혁명을 더 전진시키기에는 아직 힘이 미약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에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게 되는 노동계급 운동은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p 148

민주주의와 삶의 향상을 원한 대중의 처지에서 보면, 5·16 쿠데타는 4월혁명의 성과를 파괴하고 등장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반혁명이었다. 한편, 5·16 쿠데타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동계급이 창출되고 그들이 체제에 도전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을 보면, 모순도 있었다.

p 157~159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노동계급은 카를 마르크스 생전에 전 세계에 존재했던 노동계급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다. … 이렇게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진정한 동력인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서기 시작하자,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철옹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노동자 저항은 결국 박정희 체제가 무너지게 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p 177

부마항쟁은 학생들의 투쟁으로 시작했지만 노동자와 도시 하층민도 대거 참가하면서 민중 항쟁으로 발전했다. … 당시 많은 취재기자들이 거리 분위기를 “축제”라고 표현했다.

p 188

광주항쟁은 군사적으로는 패배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광주항쟁의 영향으로 급진화해서 전두환 정권에 맞서 기꺼이 싸우고자 했다. 실제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사회 변화에서 노동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투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p 215~218

첫째,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별개의 운동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에 있는 투쟁으로 봐야 한다. … 둘째, 아래로부터의 관점, 즉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의 관점에서 1987년의 투쟁들을 봐야 한다. … 셋째, 1987년만 떼어 내 보기보다는 이전과 이후 적어도 10년을 하나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80년 광주항쟁부터 1989년 정점을 찍은 운동의 사이클 속에 1987년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p 252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노동자들을 공격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는 1990년 주민세 부과에 반대해 벌어진 격렬한 투쟁에 부딪혀 몰락했다. 1994년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복지 삭감에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통해 우파 정부를 몰락시켰다. 1995년 12월 프랑스 노동자들은 연금 삭감에 반대해 거대한 대중 파업을 벌여서 우파 정부를 물러서게 했다. 이런 투쟁 물결의 연장선에 한국의 1997년 대중 파업이 있었던 것이다.

p 260

1997년 파업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해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이 걸린 문제를 놓고 정부에 대항한 정치 파업이었다. 이 파업으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고, 노동자들 자신의 정치적 표현체도 탄생했다. 1997년 파업 3년 후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것이다.

p 267

IMF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요구한 긴축과 내핍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쪽은 단지 IMF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 IMF 경제공황을 계기로 내핍 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IMF뿐 아니라 한국 지배자들에게도 반대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

p 314~315

1990년대 말 이래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경제가 예전만 못 한 상황에서 수출에 더 의존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모순에 놓였다. … 그래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그리고 그와 연동해서 공식정치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만만찮기 때문에, 그 대처 방법을 두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굉장히 첨예하게 분열해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두 세력은 제국주의 질서 문제나 계급적 문제에서는 협력한다. 그럼에도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는데, 이에 어떻게 대처할지 딱 부러지는 해법이 두 세력 모두에게 없다.

p 331

김대중 대통령은 일당 국가를 이끌던 세력의 정부가 막지 못한 초유의 위기 상황에 투입된 구원 투수였다.

p 392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주의는 어땠을까? …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반에는 여당이 국회에서 소수파여서 개혁을 못 한다고 했지만, 2003년 말 집회 규제를 강화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약칭 집시법) 개악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노무현 정부 자신이었다. 그 내용은 “집시법을 사실상 ‘허가제’로 바꾼 것”으로(참여연대의 표현), 온건한 시민단체들도 격렬히 반대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약한 것에 관해서는 노무현 정부 첫해에 터진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투쟁이 좋은 사례다.

p 407~408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2004년 말에 4대 개혁 입법을 관철할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실효도 없는 행정수도 이전 방안을 국회에서는 일단 관철시켰던 사례만 보더라도,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에 실패한 것을 박근혜가 이끌던 한나라당과 우파의 저항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p 446~447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대중 전반이 보수적으로 변한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중의 개혁 기대감이 실망과 환멸로 바뀐 결과,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 일부와 진보층 상당수가 투표를 아예 포기해 버린 결과였다.

p 488

노동자들은 박근혜의 당선을 보며 일시적으로 사기 저하를 겪었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학을 뗀 사람들에게 더 악랄한 자의 5년이 좀 버겁게 느껴졌던 듯하다. … 많은 사람들이 때마침 개봉한, 1830년대 프랑스 민중 봉기를 소재로 한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위안을 얻게 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p 518~519

박근혜 정권 4년은 반동적 정책으로 불평등과 고통이 더 심화한 4년이기도 했지만, 저항과 반격의 4년이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식 경제 살리기의 주된 표적이었던 조직 노동운동이 처음부터 선두에 섰다. 조직 노동운동은 4년 후 벌어진 정권 퇴진 운동을 추동한 핵심 동력이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진공 속에서 등장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p 527

박근혜 정권의 죄악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2014년 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일 것이다. … 박근혜는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임기 첫해에만 600개 넘는 규제를 없앴다. … 또, 친미 우파 정권답게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을 위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서두른 것도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였다.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공사 현장으로 가는 철근 수백 톤이 과적돼 있었다. 국정원과 기무사까지 나서서 진상을 한사코 감추려 한 데는 이런 사정이 연관돼 있었을 듯하다.

p 535

지배계급이 분열할 때 흔히 일어나는 일이 서로 약점과 치부를 폭로하는 것이다. 총선 후 박근혜가 지배계급에게 경제 살리기를 위해 단결하자는 메시지를 주려고 시작한 구조조정은 오히려 지배계급 간 갈등을 증폭했다. … 무엇보다 박근혜 자신과 그 측근들에 대한 폭로가 드디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이런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일어나면 지배자들을 더 큰 분열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p 542

범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만큼, 촛불 운동은 그 내부에서 다양한 계급 세력과 정치 세력이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는 장이기도 했다.

p 566

문재인 임기 3년 차인 2019년은 집권 초기와는 그림이 사뭇 달랐다. 임기를 딱 절반 지난 상태에서 문재인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p 572

[민주당의] 인사들이 과거 민주화 운동가 출신자인 것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대부분 조국 일가의 엄청난 특권적 삶을,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둥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는 둥 예수처럼 살라는 것이냐는 둥 옹호했다. 이처럼 조국 일가와는 소통되지만 서민층 청년들과는 불통하는 이 언행들이 뜻하는 바는 민주당 정치인이 대부분 지배계급에 편입돼서 지배계급을 대변하는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p 576~577

2019년 중후반에는 노동운동 안에서조차 ‘민주당 VS 한국당’ 진영논리가 강해졌다. 유력한 노동계 조직들이 문재인 정부의 배신과 개악 행보에 대한 노동계급의 불만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했다. 이것은 경제 위기와 맞물려 문재인 정부가 우경화하고 정치 위기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각성과 활력 증진을 위해 필요한 주장과 행동을 제약했다. 노동계급 대중의 정치의식과 조직과 자기 행동이라는 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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