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년과 2003년
이 책은 기원후 363년 로마의 마지막 이교도 황제였던 율리아누스의 원정으로 시작한다. 율리아누스는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정복하기 위해 맞수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가르는 거대한 강인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다.
2003년 3월, 두 서방 국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또는 제1차세계대전 뒤 오스만 제국 분할 이후 이라크라고 부른 현대 아랍 국가에 또 다른 군사 원정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1640년 전에 율리아누스가 감행한 침략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율리아누스는 실패했지만, 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율리아누스와는 사뭇 다르게 행동했다. 암미아누스가 존경심을 품고 말했듯이, “율리아누스는 맨 앞에서 싸우면서 병사들에게 자신감을 줬다.” 하지만 최고 통수권자 조지 W 부시는 2003년 3월 20일 공격 시작 선언을 녹화하는 카메라맨들에게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한 뒤, 긴 주말 휴가를 즐기기 위해 캠프데이비드로 날아갔다.
테러와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은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 공격에 대응해서 시작됐다. 이 대응의 형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위협에 대한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대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두 번의 군사 충돌보다 오래가고 세계적․상시적 전쟁 상태로 변했다.
이라크 정복 전부터 부시의 신보주의자들은 “우리의 임무는 바그다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되는 것이다. 미국은 완전히 무장한 채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고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바그다드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또 그들은 다음 100년 동안 세계를 미국의 이해관계와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가치에 따라 주조하려 한다.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도 방한해 강연한 요크 대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진보적 사회운동가인 캘리니코스는 이 짧은 책에서 부시 정부의 세계 제패 전략이 어떠한 맥락에서 제기되고 전개돼 왔는지를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1장은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장에서는 이 담론의 실천적 결론을 이 담론을 만든 신보수주의 정치 집단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부시 정부가 추구하는 포괄적인 지정학적 전략을 분석하고, 이들이 중동에서 추구하는 목적을 4장에서 다룬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 계획을 제국주의 역사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부시 정부의 전략의 진짜 목적은 테러리즘을 박멸하는 것인가? 캘리니코스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오히려 수백 명의 빈 라덴을 생겨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라크 전쟁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력에 기초한 더 포괄적인 전략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이 벌인 일련의 군사 행동은 우연한 사건의 연속이나, 워싱턴의 난폭한 이데올로그들의 작품으로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떠한 장기적 패턴이 존재한다.
캘리니코스는 “일방주의와 신중하게 계산된 군사력 사용이 비록 클린턴 시대부터 시작됐지만, 조지 W 부시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방주의적 방향 전환을 브레진스키의 동맹 건설을 거부하는 수준으로까지 밀어붙였다”(102쪽)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더 노골적인 일방주의 정책을 취하는가?
부시 정부가 일방적 군사 행동을 선호하는 데는 무엇보다 먼저 9․11 사태로 미국 권력이 입은 심각한 상징적인 타격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전략은 9․11 공격에 대한 대응이 아니었다.
다른 책들이 9․11 이후의 이라크 전쟁을 “우연하고” “급하고 서투른 조치”로 보는 것과 달리 캘리니코스는 “이라크 정권 교체는 9․11 테러 훨씬 전에 이미 공화당 우파의 정치적 목표”라고 본다.
“1998년 1월에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클린턴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했다. 그들은 이 편지에서 클린턴 정부의 정책이 이라크 정부를 봉쇄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했다.……이 편지의 서명자 명단은 3년 뒤 정권을 잡을 부시 정부의 출석부처럼 보인다. 이 명단에는 리처드 아미티지, 존 볼튼, 잘메이 칼릴자드, 리처드 펄, 도널드 럼스펠드, 폴 월포위츠와 로버트 졸릭 같은 자들이 포함됐다.”(82쪽) 9․11은 이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공화당 우파의 핵심 인물들은 신속하게 워싱턴과 뉴욕에 대한 공격이 제공한 기회를 잡았다. 9월 11일 당일, 납치된 여객기를 이용한 공격으로 국방부가 화염에 휩싸인 가운데 럼스펠드는 노트에 이렇게 휘갈겨 썼다. ‘단지 UBL[빈 라덴]만이 아니라 SH[사담 후세인]를 동시에 치는 것이 가능한지 판단하라.’”(83쪽)
둘째로는, 일방주의 전략은 현재 미국의 패권이 대등한 새 경쟁자들의 등장 때문에 도전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국가 안보 전략>은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는 거대 열강들의 경쟁이라는 낡은 패턴의 부활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몇몇 잠재적 거대 열강은 지금 한창 내부 변화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열강들은 러시아, 인도, 중국이다.” 이러한 열강들이 미국과 공통된 이해관계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이 문서는 베이징을 겨냥해 매우 구체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110쪽)
폴 월포위츠는 클린턴 시대 때 쓴 글에서 같은 맥락의 충격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1989년 이후 득세한 자유 자본주의의 승리와 역사의 종말이라는 승리주의와, 경제 성장과 국제 통합이 전쟁을 없앨 것이라는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관점을 비교했다.(105쪽) “중국의 등장 자체가 상당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중국과 함께 다른 아시아 열강의 등장은 상황을 대단히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경우, 외부자 신세라는 분명한 요소가 있다. 지난 세기의 전환기(19세기 말)로 돌아가 보면, 현재 중국의 위치는 당시 독일의 위치와 비슷하다.”
도전자들의 등장을 막기 위해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부시 보좌관들의 집착은 바로 이러한 세계사적 전망에서 나온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선제 공격이 제기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특별보좌관인 칼릴자드가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을 확보하면서, 오랫동안 다른 적대적 경쟁자의 등장이나 다극화된 시기로 회귀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지도 원칙이자 전망”이라고 했던 것이 부시 정부의 세계 제패 전략을 잘 드러낸다.
이라크 전쟁 이후
캘리니코스는 “미국 군사력의 노골적 과시는 처음에 9․11 같은 만행을 낳았던 증오와 절망을 부추길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라크 정복이 가져온 지정학적 불안정과 열강들 사이의 대립은 크고 작은 국가들이 미국 국방부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와 전술을 추구하도록 만들 것이다. 더구나, 어떤 국가가 자기 이웃 국가를 상대로 부시 독트린(일방주의적 선제 공격)을 채택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그리고 누군가(아마도 더 유연한 핵무기 계획을 세운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가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마지막으로 이 의심스러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러한 승리는 미국식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1990년대 호황기보다 더 자신감을 갖고 자기 길을 계속 추구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빈곤과 불평등은 더욱 재앙적인 수준으로 증가하고, 미국 경제의 석유 연료 사용에 대한 탐욕스런 집착 때문에 발생하는 환경 파괴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187~188쪽)라고 경고한다.
또 다른 슈퍼 파워에 대한 희망
이 책은 학술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작업은 아니다. 이 책의 제목(The New Mandarins of American Power)은 노엄 촘스키의 고전 ≪미국의 권력과 새로운 관료들≫(1969년)(American Power and the New Mandarins)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캘리니코스는 티그리스 강둑에서 무시무시한 군사기구가 전 세계를 향해 자기의 정치 지배자들의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까지 계속되는 상시적 비상 상태를 받아들이라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뉴욕 타임스>의 2003년 2월 15일 반전 시위를 보고서 “이라크를 둘러싼 서방 동맹의 분열과 전 세계적 대규모 반전 시위는 지구상에 두 개의 슈퍼 파워―미국과 세계 여론―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라고 말했듯이, 이 책은 “이 두 번째 슈퍼 파워가 보여 준 희망”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