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정체성 정치는 오늘날 여성운동 등 여러 차별 반대 운동에서 상식처럼 수용되고 있다.
p 8 우파의 페미니즘 공격
우파의 정체성 정치 공격은 차별받는 집단을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돌리며 속죄양 삼아 대중의 불만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이간질하기 위한 것이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이준석, 윤석열 등 우파 정치인이 페미니즘을 공격한 것도 같은 목적이었다. … 여성 차별에 반대하고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우파의 페미니즘 공격과 성 평등 정책 후퇴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p 92~93 남성이 역차별당한다?
여성 평등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남성이 차별받는다고 보는 사람이 꽤 된다. 그러나 이는 ‘차별’을 사회 전체에서 특정 집단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로 보지 않고 시장 경쟁에서 개인들이 겪는 불리함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차별 개념을 느슨하게 쓰면, 여성이 사회에서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차별과 천대를 겪는다는 점이 흐려지기 쉽다.
p 20~22 여성이 모두 단결할 수 있을까?
정체성 정치에 깔린 핵심 가정은 특정 차별을 받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단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비슷한 차별의 경험을 겪는 듯한 집단 내에서도 각각의 삶은 계급에 따라 매우 다르다. 호화 주택에서 살며 청소, 요리 등 온갖 궂은 일을 노동자들을 고용해 처리할 수 있는 부유층 여성들은 노동계급 여성들과 처지가 같지 않다. … 정체성 정치를 통해 대중적 결집이 이뤄진다 해도, 이런 결집은 언제나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운동 참가자들의 계급적 배경이나 정치적 지향이 상이하므로, 운동이 성장하면 운동의 방향을 놓고 정치적 차이가 커지기 마련이다. 정체성 정치는 차별받는 사람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적 차이를 무시하기에, 운동 내에 존재하는 목표와 전략의 차이를 가리는 효과를 낸다.
p 84~85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의 난점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은 사회를 여성 대 남성의 대립 구도로 이해하며 남성 일반을 지배자, 권력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성차별을 주도하고 그로부터 혜택을 보는 권력자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남성을 구별하지 않고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리고 성차별적 말과 단순히 편견을 드러내는 말을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여성 혐오’로 몰며 단죄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심지어 성차별적 함의가 없는데도 성별 이분법적인 자신들의 주장에 도전하는 견해다 싶으면 성차별주의로 취급하며 규탄하기도 한다. 이런 도덕주의는 여성 차별을 지지하지 않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그 검열관 같은 태도 때문에 종종 반발을 낳았다. 이준석 등 우파는 이런 반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p 97 젠더 갈등의 원인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청년층의 환멸을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젠더 갈등 프레임을 이용했다. 윤석열은 대선 때 여가부 폐지, 성폭력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런 주장은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과, 청년 남성의 삶이 악화된 이유를 호도하고자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 청년층 내의 젠더 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와 경쟁, 그리고 지배계급의 이간질 통한 각개격파 전략에서 비롯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열악한 조건과 천대 때문에 많은 청년이 불만과 울분을 느낀다.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거나 부족할 때, 권력자들이 성별로 이간질하면 여성과 남성의 분노가 서로를 향할 수 있다.
p 201 트랜스젠더와 여성의 권리가 대립한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여성 차별은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 지배자들과 우파는 가족(과 그 안에서 여성의 헌신)을 이상화하며 이에 어긋나는 존재들을 차별하고 ‘위험’하다고 낙인찍는다. 가족제도의 안정적 유지가 노동력 재생산의 안정성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고정된 성 역할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이분법적 성별 규범 틀에 사람들을 욱여넣으려 한다. 이 때문에 트랜스젠더는 물론, 시스젠더도 고통받는다.
p 73 노동계급의 관점으로 차별 반대 운동을 건설하기
계급 범주는 다른 범주들이 배제하는 것을 포함하고 다른 범주들이 포함하는 것을 배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노동계급 범주에는 흑인 노동자, 여성 노동자, 레즈비언 노동자 등은 포함되지만 흑인 자본가, 여성 자본가, 레즈비언 자본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반대로 흑인이나 여성이라는 범주에는 흑인 자본가나 여성 자본가는 포함되지만 백인 노동자나 남성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개념 차이를 따지는 이유는 이런 개념 차이에 따른 포함·배제가 전략의 차이를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닌이 말한 ‘노동계급 관점’은 정체성 정치가 흔히 분열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투쟁 속에서 단결시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정체성 정치는 노동계급 정치가 분열시키려는 사람들(노동계급 정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분열을 추구한다)을 단결시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