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투쟁이 밑거름 구실을 한 거대한 촛불 운동이 우파 정부를 끌어내리면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적지 않은 자신감을 얻게 됐다. 자신의 삶을 개선해 보겠다는 희망을 품고 많은 노동자들이 새로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 위기가 심상치 않다. 머지않아 이 위기의 충격파가 지금보다 더 큰 규모로 한국에 닥칠 수 있다.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그리고 길지 않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이럴 때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자본주의 국가와 사용자는 1997년 말 IMF 위기 때처럼 노동자들을 전면적으로 공격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위아래의 모순적 압력에 직면한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을 대변하거나 투쟁을 이끌면서도, 자본과 노동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사실상 불가능한) 타협의 가능성을 모색하느라 자꾸만 머뭇거려 현장 조합원들과 심각한 긴장과 갈등을 빚게 될 수 있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 내부에서도 이런 압력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긴장과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노동조합 속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노동조합 활동 경험을 담은 책을 한 권 더 번역해 펴내는 이유다. 책갈피 출판사가 2014년 초에 출간한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이 20세기 전반부까지의 경험을 다뤘다면, 이 책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은 20세기 전체와 최근의 새로운 경험과 고민, 시도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은 세 편의 글로 이뤄져 있다.
1장 “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알렉스 캘리니코스, 1995)은 20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계급 세력 관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노조 상층 지도자, 현장 조합원, 좌파 세력은 각각 어떤 구실을 했는지 다룬다. 이를 통해 “노조 간부들이 노동자들을 올바로 대변하는 한 그들을 지지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곧바로 독자적 행동에 나서”는 현장 조합원들의 자주적 활동을 북돋울 필요성과 장차 전투적 현장 조합원 운동을 건설할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2장 “현장 조합원과 노동조합 관료”(랠프 달링턴, 2014)는 최근에 쓴 글로 오늘날 영국 노동운동이 당면한 문제, 즉 현장 조합원들이 불만은 높지만 노조 상층 지도부에 독립적으로 투쟁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는 않은 상황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고민과 새로운 시도를 들려준다(오늘날 한국 상황도 큰 틀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이 글은 아주 유용하다). 지은이는 여전히 현장 조합원에게 잠재력이 있다고 역설하며, 전투적 현장 조합원들과 좌파적 노조 지도자들의 일시적 동맹을 활용해 현장 조합원의 사기와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3장 “공산당, 사회주의노동자당, 현장 조합원 운동”(던컨 핼러스, 1977)은 좌파적 노조 지도자를 중심으로 ‘범좌파 연합’ 구축에 주력하는 전략(영국 공산당)과 현장 조합원들의 자주적 활동을 고양시키는 데 주력하는 전략(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사이의 논쟁을 다루며, 이런 이견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살펴본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많은 노동조합 좌파 활동가들도 ‘좌파적 지도부 세우기’에 주력해 왔다는 점에서 이 글도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