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

한규한, 김동철, 김현옥 지음 2018-03-26 280쪽 13,000원 신국판 9788979661347 책갈피

누구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자 과거를 지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지난 우파 정권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과거를 입맛에 맞게 바꾸려 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과 더불어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봄으로써, 지배자들의 시각에서 서술한 역사를 속 시원하게 반박할 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진보적 시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기존 시도들의 약점도 살펴본다.

본문 중에서

광주 민중 항쟁과 역사적 의의

전두환은 12월 12일 정승화를 박정희 살해 공모 혐의로 체포하면서 ‘12·12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뒤 전두환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파괴하기 위해 움직였다. … 그리고 주요 방송과 신문사를 회유·통제하는 ‘K공작’을 펼친다. 새로운 ‘King’ 전두환을 국가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대응은 초라했다. 김영삼은 … 신군부와 흥정을 잘 하면 자기가 대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김대중은 재야·학생 운동을 자제시키기 급급했다. 군부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 5월 18일 오전 10시 전남대 정문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농성을 시작했다. 학교를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는 쇠심이 박힌 살상용 특수 곤봉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 학생들을 쫓아가 머리를 강타하고 실신하면 질질 끌고 갔다. … 22일 광주는 해방구가 됐다. 시민군은 자체 조직을 정비해 계엄군의 반격에 대비하면서 시내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을 했다. 모든 차량을 등록하고 구호·연락·수송·보급·순찰·전투 등의 임무를 나눠 조직했다. 사재기나 매점매석은 일어나지 않았다.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은행이나 신용금고에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 25일 투쟁적인 항쟁 지도부가 구성됐고, 26일 마지막인 5차 궐기대회가 도청 앞에서 열려 최후 투쟁을 다짐했다. 계엄군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항쟁 지도부는 시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계엄군과 싸워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 광주는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와 해방을 원했던 사람들의 열망이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전두환에 대한 ‘역사의 복수’라 할 만하다.

 

1987년, 민주주의를 쟁취한 주역은 누구인가

6월 10일 마주보고 달리는 두 개의 열차가 충돌했다. … 전두환 정권은 대중의 열망과는 정반대로 군부독재를 지속하고자 했다. … 거리에서는 1960년 4·19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거리 곳곳에서 경찰은 무장해제되거나 시위대에게 곤욕을 치렀다. … 22개 지역에서 수십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어떤 지역은 경찰이 아예 진압을 포기하기도 했다. … 그러나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6월 항쟁 기간 내내 동요하며 …· 투쟁을 전진시키기보다 정치 협상을 통해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김대중 부인 이희호는 … 자서전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일 말고 우리[김대중을 포함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고 회고했다.] 김대중 측은 김영삼과 함께 국본 내에서 신중론을 펴며 대규모 집회 계획 연기를 주장했다. … 야당이 동요할 때 실제 투쟁을 전진시킨 것은 거리의 대중이었다. 국본이 주최한 세 번의 대규모 집회 외에도 국본이 주도하지 않은 거리 시위가 매일 벌어졌다. … [6월 항쟁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본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장에서는 삶이 그대로인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억압적 노동 통제하에서 억눌려 온 노동자들의 요구는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 1987년 6월 항쟁을 뒤이은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노동계급의 결정적 힘을 보여 주며 군부독재의 반동 시도를 막을 수 있었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그늘

박정희 시대는 국가의 ‘지도’ 아래 급속한 산업화가 이뤄져 남한 자본주의가 자율적인 자본축적의 중심을 확립한 시기였다. … 남한의 경제성장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기간에 이뤄졌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선진 자본주의의 기술을 단기간에 학습함으로써 후발 공업국의 이익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값싼 노동력과 정부의 지원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 베트남전쟁은 남한 재벌에게는 축복이었다. … “한국은 베트남 참전국으로서 파병군인의 송금, 미군의 물자 조달 등을 중심으로 연간 2억 달러, 1965~1972년 누계 10억 2200만 달러에 달하는 특수를 얻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 4687명이 전사했고, 1만 명 이상이 크게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4만 1000명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어느 조사를 보면 90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 노동자들의 희생과 이를 강요하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 누구의 전쟁인가

소련과 미국 모두 전황이 불리해졌을 때 각각의 꼭두각시 정부를 버릴 것을 검토했다. 소련은 압록강까지 유엔군이 진격하고 중국이 참전을 주저하자 미련 없이 북한을 포기하려 했다. … 중국군이 참전하고 다시 38선이 돌파되자 미국은 한국군의 소개疏開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 1951년 중국군의 5차 공세가 실패로 끝나면서 전쟁은 지금의 휴전선과 비슷한 곳에서 지루한 소모전 형태를 띠게 됐다. … 김일성은 중국군의 5차 공세 실패 이후 휴전을 원했다. 그러나 … 저우언라이와 한 회담에서 스탈린은 “북한이 잃는 것은 인명뿐”이라며 전쟁의 지속을 주장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이 끝나면 중국이 남쪽으로 호찌민을 지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국과 소련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은 남북한 민중에게는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다. 그들은 남북한 민중의 삶과 처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 미국과 중국이 정전협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을 때 어느 보수 성향의 남한군 하급 장교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6·25사변이라고도 부르고 한국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이 전쟁은 우리들의 싸움인 동시에 강대국들의 전쟁이다. 아니 우리들은 강대국 간의 대리전을 치렀다. 우리들은 용병이고 총탄받이였다. 우리들은 수백만의 동포를 죽인 죄인이며 바보 천치 못난 것들이다. 입이 백 개라도 변명할 길이 없다. 무슨 까닭에 피를 흘리고 무슨 까닭에 죽었는가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해방 정국, 좌우합작이 효과적 대안이었는가

해방 공간에서는 미국과 소련 양쪽에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열망이 강력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압도 다수가 대안 체제로 사회주의를 선호했음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좌파와 우파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 이것은 대체로 분단만은 피해야 한다는 열망의 결과다. … 이런 ‘민족 단결’ 정서는 여운형 같은 중도 좌파가 1946년 이후 좌우합작 운동을 추진하는 배경이 됐다. 좌익의 잘못된 정책으로 좌우 모두에 대한 양비론과 냉소도 커졌다. 당연히 이는 노동계급 운동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노동계급의 행동과 의식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민족 통일 국가 수립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도 좌우합작, 민족 단결이라는 방식은 효과적일 수 없었다. 당시 통일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데 최대의 방해 세력은 미국과 소련 제국주의였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미국은 우익과 자본가, 친일 관료들을 육성해 이들을 지배 파트너로 삼고자 했으므로 이들에 맞선 투쟁을 통일 민족 국가 건설과 분리해서는 안 됐다. … 자본가, 지주, 친일 관료에 맞선 투쟁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당연히 노동자·농민의 계급적 요구를 고무해야 했다. 그러나 좌우합작, 민족 단결 사상은 노동자·농민의 투쟁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이득을 얻는 세력은 우익과 미군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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