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배출권 거래제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무척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연합은 교토의정서의 한 부분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새로 제안하는 방법들에는 기업들과 주 정부들끼리 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이 꼭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배출권 거래제가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자.
시장을 통한 조절을 강조하는 해결책들은 언제나 완전 시장이란 무엇이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지만, 그런 완전 시장은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배출권 거래제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알려면 현실의 시장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마치 로맨스 소설을 읽고서 자기 애인을 이해했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교토의정서에서 나온 생각이다. … 영국이 필요한 만큼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1990년대에 경제가 붕괴해 배출권이 남아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배출권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공평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출권을 사는 것이 아예 금지돼 있었다면, 영국은 배출량을 더 많이 줄였을 것이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의 최종적 효과는 감축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는 교토의정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탄소 거래제가 갖고 있는 문제다. 만약 매년 5퍼센트씩 배출량을 줄이기로 했다면, 탄소 거래제가 있는 한 감축량은 결코 5퍼센트를 넘지 못하게 된다.
시장 조절 메커니즘이 실패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토 협상 당시 미국 대표단 중 일부는 이를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고, 또 다른 일부는 시장 원리에 대해 글자 그대로 무지했다. 그렇지만 이들 중 시장 조절 메커니즘을 끝까지 강조한 기업가들은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 미국에서 아황산가스를 줄이기 위해 시행했던 배출권 거래제를 여러 차례 근거로 들었다. 그런 만큼 실제 미국에서 아황산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볼 필요가 있겠다.
1980년대 세계 각국은, 발전소에서 내뿜는 아황산가스가 대기 중에서 황산으로 변하고, 그것이 빗물에 녹아서 떨어지는 산성비 때문에 북미와 유럽에서 숲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환경운동가들의 압력을 받은 각국 정부는 아황산가스 배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는 1982~98년에 규제 정책을 펼쳤다. 각 기업에 아황산가스 배출량을 줄이라고 명령했고, 그 결과 배출량이 90퍼센트 줄었다. 미국에서는 아황산가스 규제 정책이 1990년에 시작됐다. 그러나 2010년까지도 아황산가스 배출량이 35퍼센트만 줄어들 전망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기업에 명령을 내리는 대신 아황산가스 배출권을 거래하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교토 협상 당시 미국 대표단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배후에서 실력을 행사한 이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세력이 아니었다. 이들은 석탄 기업 출신으로, 오랫동안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정치인들, 규제 기관들과 은밀히 만나서 거래를 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 합의문을 교묘하게 작성하는 법을 알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자들이 배출권 거래제를 주장했다면, 이는 그들이 미국에서 아황산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황산가스가 석탄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녹색 소비 전략의 문제점
현재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지역 단체들이 생활 방식을 바꾸자는 쪽을 선택했다. 이 전략의 첫 번째 문제점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대다수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적어도 모든 주요한 나라에서 인구의 다수가 움직여야만 한다. 그런데 생활 방식을 강조하는 전략은 필연적으로 이 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탄소 에너지에 길든 생활 방식을 바꾸려면 대부분 돈이 들고, 어떤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도 못 꿀 액수의 은행 대출이 필요하다. 자기 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도 있다. 예를 들어 태양발전 시설을 설치하려면, 지금 당장 돈을 투자한 다음에 향후 몇 년에 걸쳐 천천히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장거리 기차 운임이 저가 항공보다 더 비싸다. 내가 일하는 곳까지 70마일[113킬로미터]을 승용차로 운전해서 가는 것이 기차를 타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저렴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사려면 내가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정도로 큰돈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돈을 아끼게 될 것이라고 말해 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얘기다. 미리미리 계획해서 돈을 아끼는 건 상위 20퍼센트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빠듯하다.
사람들에게 생활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전략의 두 번째 문제점은, 그렇게 하면 독선적이거나 우월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때때로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히 거만하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느낀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게 된다. 도덕적 감수성이, 다른 사람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태도, 즉 도덕주의가 된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평가받는 것에 민감하며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을 몹시 싫어할 것이다. 특히, 당신은 생활 방식을 바꿀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하게 될 것이다. 마침 그가 트럭 운전수이고, 지구온난화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 일자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라면 당신에게 느낄 증오심은 엄청날 것이다.
개인에게 생활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평균 소득수준의 사람들을 대부분 배제한다. 또,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얘기다. 아무도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각자 탄소 발자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부분 희생정신을 강요하는 사상이 깔려 있다. 이와 같은 희생의 윤리학은 녹색 소비를 강조하는 실천의 필요 불가결한 일부다. 사회 전반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결국 밑바닥 사람들이 희생당하게 된다. 정부가 주택 단열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결국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난방을 줄이고 추위에 떨어야만 한다. 정부가 나서서 청정에너지 위주로 세계를 재편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가뭄과 흉작을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녹색 소비 위주로] 생활 방식을 바꾸려면 돈을 더 많이 쓰거나 지금 누리고 있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심지어 부유한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희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생활 방식의 변화를 강조하는 주장에는 중요한 정치적 약점이 있다. 그러한 주장은 비록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뭉쳐서 행동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두려움을 처음부터 깔고 있다. 나아가, 생활 방식 변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한 두려움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첫째, 사람들에게 각자 잘하면 된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단적 해결책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되뇌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게 된다. 둘째, 생활 방식 바꾸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사람들은 … ’ 하고 자신의 애초 생각이 맞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제2차세계대전의 경험
기후변화에 맞서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려면 제2차세계대전을 돌아보면 된다. 당시에 모든 주요 국가들은 가능한 많은 인명을 살상하기 위해 자국 경제 전체를 탈바꿈시켰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비슷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당시에 미국 경제의 변화 속도는, 미국이 두 차례에 걸쳐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의 군비 증강 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다. 또한 오늘날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으로 제안되는 정책들에 비해서는 열 배 이상 빨리 추진됐다. 이처럼 미국 정부와 기업들이 빠르게 일을 처리한 것은 그들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세계적 차원에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총합인 50조 달러만큼을 내년에 투자해야 한다.
그 정도의 돈과 계획, 헌신성만 있으면, 우리는 미국이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했던 기간 만에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있다. 미국은 3년 9개월 만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실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그 많은 돈이 다 필요한 것도 아니다. 현재 미국의 국민총생산에 해당하는 13조 달러면 충분하다.
따라서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의지와 추진력이다. 당시에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정부는 정말로 전쟁에서 이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전쟁은 세계경제 지배권을 놓고 벌이는 전쟁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인들과 기업 총수들이 별로 의욕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조치들은 많은 경우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과 상충한다.
그러나 여전히 제2차세계대전의 사례는 실제로 일이 얼마나 거대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또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얼마나 큰 규모로 일이 진행돼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또한 현재 돈이나 기술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그보다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막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을 따름이다.
희생은 대안이 될 수 없다
2003년에 나는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했다. 10만 명의 각국 활동가들이 모인 그 포럼의 슬로건 중 하나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였다. 나는 거기서 말하는 다른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를 토론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온 젊은이들 위주로 스무 명이 그 워크숍에 참석했다. 우리는 온갖 것들에 관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토론했다. 그러던 중 한 캐나다 여성이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사람들이 소비주의의 노예가 되어 물질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갇혀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지구의 자원이 재생되는 것보다 더 빨리 자책감도 없이 써 버리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경제체제는 우리의 탐욕을 정당화합니다. 우리는 성장을 쫓는 것에서 벗어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그녀의 말이 급진적 주장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발언하는 동안, 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이 점차 적대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발언을 마치자 비난이 쏟아졌고,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들은 희생하라는 얘기를 이미 부유한 외국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가장 분노했는데, 우리 워크숍이 열리기 1년 전에 IMF가 강요한 희생이 아르헨티나의 금융 위기를 초래해서 일자리와 저축을 날려 버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 200만 명이 쏟아져 나와 솥과 냄비를 두드리며 밤새 시위를 했다. 시위대는 결국 정부를 갈아 치웠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 들어선 정부와 그다음 정부 역시 갈아 치워 버렸다. 1975년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와 비슷한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2003년 무렵에는 가난한 나라가 됐다. 워크숍에 참가한 젊은이들과 그 부모 세대는 희생을 강요받았고 그것에 맞서 싸웠다. 그들에게는 캐나다 여성이 IMF와 같은 편처럼 느껴진 것이다.
2년 뒤인 2005년 1월에 세계사회포럼이 다시 브라질에서 열렸다. 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모든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발언할 때 많은 라틴아메리카 청중이 관심을 갖고 들어 줬다. 내가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세계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운동이기도 해야 한다고 얘기하자, 갑자기 그들은 박수를 쳤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간단한 진리를 배웠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행동이 희생으로 여겨지는 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